1년 만에 다시 교단에 섰다. 학습연구년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탓이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생각보다 많이 낯설다. 낯선 것뿐만 아니라 논술형 평가,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유예와 미이수의 개념들로 머리가 어지럽다.
무엇보다 낯선 변화는 논술형 평가의 의무화와 반영 비율의 확대다. 그동안 여러 평가 방식 중 하나였던 논술형 평가는 2025년부터 성적의 최소 20% 이상을 반영해야 하는 의무 평가 항목이 되었다. 이 규정에 맞게 학기 초 논술형 평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까지 마쳤다. 출제와 채.까지 모두 마쳤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 내가 시행한 평가가 본래 취지에 맞는 '논술형'이 아니라, 단지 문장이 조금 길어진 '서술형 평가의 확장'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논술형 평가는 학생들의 고등 사고력을 함양하는 데 최적화된 평가 유형이다. 질문에서 출발해 가설을 세우고, 근거를 탐색하여 논리적 결론을 내린 뒤 자기 생각을 보태는 과정속에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신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수업량의 조절과 수업 방법의 개선이다. 하지만 진도에 쫓기는 교실 환경과 과도한 학습량 속에서는 이러한 깊이 있는 배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이러한 현실의 뿌리에는 변하지 않는 입시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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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교사는 정해진 진도와 방대한 학습량을 외면하기 어렵다. 성취기준에 맞춰 수업량을 학기 내에 소화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수업은 지식 전달과 암기 중심으로 흐르고, 학생 주도의 탐구 활동은 위축된다. 결국 깊은 고민과 탐구 과정이 생략된 논술형 평가는, 모범 답안과 핵심 키워드를 외워 적는, 또다른 '암기식 시험'이자, 몇 줄 길어진 서술형 평가로 전락하고 만다.
두 번째 낯섦의 대상은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제이다. 일명 '최성보'는 학업성취율 40% 미만 학생에게 보충 학습을 제공하는 기초학력 보완 제도다. 여기에는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책임교육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현장에서 이 제도를 마주하면 적지 않은 허탈감이 든다. 고교 시기의 기초학력 부족은 초·중학교를 거치며 오랜 시간 누적된 학습 결손의 결과이다. 수년간 쌓인 학습 공백을 대입을 코앞에 둔 고등학교에서, 1학.당 5시간의 보충 지도만으로 메우겠다는 발상은 현실성이 없다. 유급이나 졸업 유예라는 제도 역시 도입되었으나, 해외 사례처럼 과감히 적용하여 배움의 시간과 기회를 확실히 보장해 줄지는 의문이다. 결국 단편적인 보충 지도만으로 책임교육을 구현하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제도의 깊은 간극만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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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맞닥뜨린 난제는 학생부 기재 항목 중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일명 '과세특'이다. 이것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낯섦의 대상이자 학교 현장에서 풀어야 할 난제이다. 과세특의 본래 목적은 학생이 수업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역량을 보여주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런데 교실 현장에서는 이런 내용을 제대로 담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과제형 수행평가마저 금지되면서 개인 탐구든, 모둠 활동이든 모든 과정을 오직 수업 시간 내에서만 진행해야 한다. 진도를 나가는 동시에 제한된 시간 안에 수행평가까지 소화하려다 보니, 교실에서의 학생 활동은 단편적인 수준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결국 활동 범위가 좁은 교실에서는 수행평가의 깊이와 다양성을 담아내기 힘들다. 이것은 교사가 학생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충분히 관찰하고 평가하는 데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교사는 제한된 수업 환경에서 만들어진 학생들의 활동 결과물과 수업 기록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학생 개개인의 교과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해야 한다. 뚜렷한 변별력을 찾기 힘든 비슷한 활동 결과를 두고 문장 표현만 달리해 기록해야 하는 행정적 부담을 안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성실하게 참여함'이라 적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하려는 태도를 보임'이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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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장이 학생의 깊이 있는 성장 과정을 담아낸 것인지, 제한된 조건 속에서 교사가 최선을 다해 포장한 것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교사 자신이다.
좋은 정책이 삶을 바꾸듯, 좋은 교육은 학생의 미래에 힘을 실어준다. 서·논술형 평가, 책임교육, 과세특 기록의 취지 자체는 옳다. 하지만 입시 구조와 진도 부담이라는 본질을 그냥 둔 채 제도만 바꾸어서는 교실의 변화도, 학생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현장의 토양을 바꾸지 못하는 제도는 성장의 동력이 아닌, 또 하나의 행정 부담일 뿐이다.
진정성 있는 교육목표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면 겉치레뿐인 제도의 덧칠을 멈추고 현장의 근본적인 판을 바꿔야 한다. 과도한 학습량을 덜어내어 교실에 질문과 토론의 시간을 되찾아주고, 이를 가로막는 입시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시급하다. 누적된 학습 결손 역시 유예나 유급 등의 실질적인 제도에 대한 용기있는 실행이 필요하다. 학교 현장을 살리는 구조적 결단만이, 제도의 한계를 넘어 학생의 삶과 성장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옛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학기 초의 낯섦은 어느새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현장의 무력감과 의구심은 역설적으로 더욱 짙어만 간다. 화려하게 포장된 교육목표와 이를 둘러싼 쏟아지는 제도들. 이처럼 낯선 것들이 과연 학생들의 미래와 성장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을지 되묻게 된다. 이 묵직한 의구심이 그저 한낱 기우에 그치기를 교실 현장에서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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