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벤처업계가 한 투자금 반환 분쟁으로 떠들썩했다. 특정 인수합병의 성사를 전제로 납입된 투자금이 인수 무산 뒤 소송으로 이어졌고 결국 계약에 이해관계인으로 참여한 창업자 개인의 상환의무가 인정되어 확정되었다. 많은 이가 의아해한 대목은 하나다. 회사 통장에 투자 원금이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왜 회사가 돌려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계약 해석의 시비는 법원의 몫이지만 실무의 눈으로 보면 이 물음 자체에 답할 지.이 따로 있다. 통장에 돈이 있는 것과 그 돈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회사로 돈이 들어오는 길은 크게 둘이다. 빌리면 부채다. 갚기로 한 돈이니 만기에 지급하면 그만이고 법이 나가는 길을 막지 않는다. 그러나 신주를 발행하고 받은 주식납입대금은 다르다. 이 돈은 개념상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 납입되는 순간 자본금이 되어 회사가 존속하는 한 그 안에 머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자본금이 예외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길목마다 엄중한 관문을 세워 두었다. 잔고가 아무리 넉넉해도 그 돈은 이미 갚을 빚이 아니라 지킬 자본이다.
정문은 유상감자 하나뿐인데 그 문이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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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주주총회 특별결의 곧 출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이면서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상법 제438조 제1항, 제434조). 두 당사자가 합의해도 다른 주주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결의 자체가 서지 않는다. 다음은 채권자보호절차다. 1개월 이상의 이의기간을 공고하고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는 따로 최고하며 이의가 나오면 변제하거나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상법 제439조 제2항, 제232조). 특정 주주의 투자금 회수는 회사와 그 주주만의 일이 아니라 다른 주주와 채권자 전체의 일인 것이다.
관문은 더 있다. 특정 투자자의 주식만 골라 소각하는 것은 이른바 차등감자다. 대법원은 주주별로 비율을 달리하는 감자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여 자본금감소 무효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18다283315 판결). 그렇다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으면 되지 않을까? 대법원은 특정 주주에게 투하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약정은 회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태롭게 하므로 주주 전원이 동의하였더라도 회사와 사이에서는 무효라고 못박았다(대법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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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7. 선고 2022다290778 판결). 만장일치로도 열리지 않는 금고인 셈이다.
다만 같은 판결은 주주평등의 원칙이 회사와 주주 사이에 적용될 뿐 주주가 다른 주주나 이사 개인과 맺은 계약에는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투자 실무가 회사 아닌 창업자 개인을 이해관계인으로 계약서에 앉히는 이유가 여기 있고, 서두의 분쟁에서 창업자 개인의 상환의무가 인정된 것도 이 구조다. 결국 조건이 어긋나면 되돌려 주어야 할 돈이라면 처음부터 부채의 옷을 입혀야 한다. 전환사채가 대표적이다. 일이 잘되면 주식으로 갈아타 주주가 되고 어긋나면 만기에 상환받으면 된다. 상환전환우선주라는 길도 있으나 상환은 배당가능이익의 한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은 새겨 두어야 한다. 신주로 받은 뒤 되돌리는 길은 좁은 감자 하나뿐이지만 사채로 받으면 애초에 관문이 없다.
자금은 들어오는 형태를 정하는 순간 그 돈이 나가는 길도 함께 정해진다. 조건이 걸린 투자일수록 구조를 입구가 아니라 출구에서부터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통장 잔고는 어느 관문도 대신 열어 주지 못한다. 들어온 투자금에 쉽게 나가는 문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납입이 이루어지기 전 계약서 안에 미리 내어 둔 문뿐이다.
이은상 대표법무사(바른길합동법무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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