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좋아하던 네 사람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째에 접어든 올여름,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적힌 한 권의 시집을 손에 들었다.
김포와 인천에 거주하는 4명으로 구성된 독서토론회 ‘미라클’이 첫 공동시집 『날것』을 펴내고 지난 7월 30일 김포시 풍무동 팡뮤제에서 ‘우리는 책을 읽었고 그것은 꿈이 되었다’를 주제로 출간기념회와 시낭송회를 열었다.
거창한 출판기념회는 아니었다. 네 사람이 자신들의 책을 들고 한자리에 앉아 직접 시를 읽고 그 시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책을 읽었고 그것은 꿈이 되었다’
시낭송회 사회를 맡은 김윤권 씨는 “우리 모임은 골프로 시작해 독서 모임으로 이어졌고 책을 읽다가 시를 쓰게 됐으며 결국 이렇게 시집까지 내게 됐다”며 “미라클을 설명할 때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설렘’이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떨리는 그 느낌을 좋아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이지요. 저에게 미라클이 바로 그런 설렘입니다.”
미라클은 2024년 3월 13일 결성됐다. 골프를 함께하던 이들이 “두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뜻을 모은 것이 출발이었다. 모임 이름은 김민주 회장이 지었다.
회원은 김민주(51)·김호성(48)·권영지(44)·김윤권(49) 씨 등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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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미용 현장에서 24년째 일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에스테티션부터 기업 회계·세무 담당자, 건설 분야 종사자, 오피스 인테리어 현장소장까지 살아온 길과 직업도 서로 다르지만 권영지(44)씨와 김윤권(49)씨는 부부다.
이들이 그동안 함께 읽은 책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기묘한 미술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 12권이다.
책을 읽다, 어느 순간 ‘나’를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작가와 작품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토론이 거듭될수록 대화는 자연스럽게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각자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12번째 독서를 마치고 다음 책으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말하지 않고 말하기』를 정했을 때 회원들은 색다른 제안을 했다.
“소통에 관한 책을 읽기 전에 우리가 먼저 시를 써보자.”
시를 쓴다는 것 역시 자신의 기억과 사물,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는 ‘또 다른 소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망원경 같던 독서에서 ‘현미경’ 같은 시 쓰기로
회원들은 “지난 12권의 독서가 세상과 인간을 넓게 바라보는 ‘망원경’이었다면 시 쓰기는 자신의 삶과 감정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현미경’이었다”고 말한다.
전문적으로 시를 배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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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첫 시집 제목도 『날것』으로 정했다. 잘 다듬어진 시인처럼 보이기보다 처음 시를 쓰는 자신들의 서툴지만 솔직한 모습을 그대로 담자는 뜻이었다.
각자 10편씩 모두 40편을 실었다. 작품 수를 10편으로 정한 데에도 이들다운 사연이 있다. 책이 너무 얇으면 책등에 제목을 넣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열 편씩 쓰자”고 뜻을 모았다. 그러나 한 편 한 편이 쌓이면서 시 쓰기는 단순한 출판작업을 넘어 서로의 삶을 알아가는 통로가 됐다.
어머니·청춘·바람·김치…평범한 일상이 시가 됐다
김민주 회장은 8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우리 딸 예쁘다」를 썼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기억, 그리고 미처 다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글로 남겼다.
권영지 씨는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젊은 시절 사진을 계기로 「그리운 나의 청춘」을 썼다. 사진 속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마주 보게 한 작품이다.
김윤권 씨는 새벽과 한낮, 퇴근길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바람’을 시에 담았다.
김호성 씨는 갓 담근 김치도, 잘 익은 김치도 저마다의 맛이 있듯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가장 맛있는 김치」에 담았다.
김호성 씨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소중했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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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지 씨도 “평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엇인가를 발표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했다”며 “함께 쓰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끝까지 갈 수 있었고, 내 삶의 일부가 시가 되는 과정을 경험한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김윤권 씨는 “한 줄 한 줄 적다 보니 한 편이 되고 그 시들이 모여 책이 됐다는 것이 큰 감동이었다”며 “내년에는 조금 더 성숙한 시를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주 회장은 『날것』을 이렇게 정리했다. “책은 혼자 읽었지만 시는 함께 써냈고 우리는 한 권의 책보다 더 소중한 서로를 얻었습니다.” 그 말에는 이 모임이 3년째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담겨 있다.
이제 이들의 일상은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출근길에 스쳐가는 바람이 시가 되고, 서랍 속 낡은 사진 한 장이 지나간 청춘을 불러낸다. 길에서 만난 아이에게서 아들을 떠올리고, 오래 마음속에만 남아 있던 어머니의 한마디를 한 편의 시로 남기게 됐다.
다음 책, 김정운의 『말하지 않고 말하기』 독서
그리고 네 사람은 이제 처음 계획했던 다음 책, 김정운의 『말하지 않고 말하기』를 펼칠 계획이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데서 출발해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써본 이들이 이번에는 ‘말하지 않고도 마음을 전하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미라클 회원들은 앞으로도 두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이어가면서 시 쓰기에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첫 공동시집 『날것』은 그렇게 책을 매개로 만난 네 사람이 독서를 넘어 서로의 삶과 생각을 나누게 된 지난 3년의 첫 기록으로 남게 됐다.
밟고 있는 에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