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런 아세모글루 지음┃김승진 옮김┃생각의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신간
자유민주주의 궤적·위기 짚어
성장·공공서비스 성과냈지만
탈산업화로 불평등 문제 부상
엘리트층 집중된 번영의 과실
통제받는다 느낀 노동층 반발
소셜미디어 타고 갈등 확산돼
공동체정신 회복 등 대안 제시
“미국이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평균 지수가 매년 하락 중이며, 현재 세계 인구의 단 7%만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전 세계 민주주의 연구로 공신력을 얻은 스웨덴 예테보리대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올해 내놓은 보고서의 내용은 이처럼 충격적이다. 실제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수호자로 여겨졌던 미국에서조차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법치는 후퇴하며, 권력 분립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헝가리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포퓰리즘, 권위주의 등 반자유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껏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로 평가받았던 자유민주주의에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아세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책에서 바로 이 지.을 문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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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작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에서 국가의 번영을 좌우하는 포용적 제도의 조건을 탐구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이의 토대가 되는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힘을 잃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한동안 자유민주주의의 낙관론이 세계를 호령했던 시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서부터 시작해 공산권 붕괴로 이어지는 흐름은 자유민주주의를 사실상 유일한 정치적 선택지로 만들었다. 저자는 특히 자유민주주의가 서구를 비롯한 세계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건 크게 세 가지 약속을 내걸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공동의 번영을 이루고, 교육과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며,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명하고 정치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후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노동계층의 부상, 공론장의 활성화 등에 힘입어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1970년대 이후 탈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과거의 약속을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이 시기 사무용 컴퓨터 등의 확산은 대학을 졸업한 과학, 기술, 경영 분야 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촉발했다. 이로 인해 4년제 대학 학위를 가진 미국인은 1949년 540만 명에서 오늘날 9300만 명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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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수가 늘어나고, 경제·사회적 지위까지 높아진 대졸자 중심의 엘리트 집단은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반면 기술이 자동화되면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주변부로 밀려났고, 정치적 세력화도 꾀하기 어려워졌다.
이때 민주당을 비롯한 서구 중도좌파 정당은 고학력 전문가와 대졸자 중심 정당으로 재편되기를 ‘선택’했다. 미국에서 1930년대 뉴딜 시기부터 1970년대까지는 민주당이 육체노동자들의 고향이었지만, 이후 거대 유권자 및 후원자 세력으로 거듭난 대졸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당이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고 그 결과 해당 국가에서 대졸자가 좌파 정당에 투표하는 비율도 늘어났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던 정당의 정책이 노동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노동계층 유권자는 중도우파와 우파 포퓰리즘으로 이동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자유민주주의가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도 균형 감각을 잃은 것’으로 본다.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고학력자 정치세력이 추진한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은 노동계층과의 거리를 더욱 벌렸다. 저자가 ‘부드러운 구속복’이라고 표현한 사회공학은 특정 가치관을 사회에 주입 및 확산하려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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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졸자 집단은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는 정치, 경제적 이슈보다는 상대적으로 합의하기 쉬운 문화적 어젠다에 집중하고 이를 사회적 보편 개념으로 만들려 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자유주의가 스스로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빚어졌다. 자신의 가치관과 사고를 통제받는다고 느끼게 된 비대졸 노동계층의 불만은 。。 더 강력한 반발로 나타났고, 반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해 활용됐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등장은 이러한 갈등이 더 빠르고 거세게 번지도록 만들었다.
저자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유민주주의 청사진을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노동계층 자유주의’(working-class liberalism)라고 명명한다. 여기에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세력과 노동계층 간 관계 복원, 그리고 테크놀로지 규제를 통한 공동의 번영 추구,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 핵심적인 가치로 등장한다. 먼저 노동계층의 정치적 목소리와 사회적 존중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들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AI로 세계 경제가 전환。을 맞은 지금, ‘노동친화적 AI’의 발전을 통해 공동의 번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일부 테크업체와 기술관료가 부를 독。하는 것이 아니라, AI로 인한 과실을 골고루 공유하는 토대 위에서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공공서비스의 확대 등 자유주의의 원칙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572쪽, 2만8800원.
있도록 하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