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로 일하면서 즐거운 . 중 하나는 좋아하는 여러 작가와 일할 기회를 얻는다는 .이다. 소설의 세계가 다양한 만큼 작가들의 개성 또한 각양각색인데, 북토크나 사인회 같은 행사를 하다 보면 독자들도 좋아하는 작가에 따라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는 .이 재미있다. 어떤 때는 각자 노트북을 켜고 열심히 필기하는 독자들이 많고, 어떤 때는 작가가 입을 떼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독자들도 있다.
나는 지난 4년간 정보라 소설가와 네 권의 책을 작업하며 이런저런 행사에 함께 다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보라의 강연이나 대담에 참석하는 이들이 공유하는 특징은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독자들이라는 것이다. 서울, 대구, 포항 등 전국 어디에서나 ‘한국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 독자가 있단 말인가’ 싶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정보라의 소설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한국 문학인 동시에, 21세기 세계문학의 다채로운 별자리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놓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그런 소설가 정보라의 신작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를 탐나는 책이라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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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로서 정보라 작가를 독차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 책을 전자책으로 듣다가 강변북로 한복판에서 운전 중에 울어버렸기 때문에, 올해의 ‘나를 울린 책’ 정도로는 불러봐도 괜찮지 않을까.
정보라 단편소설『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표지. / 출처. yes24
이 책은 작가가 쓴 미출간 단편소설집으로 초기작 두 편인 『내 이름을 불러줘』와 『바늘 자국』, 그리고 상대적으로 근작에 해당하는 표제작이 묶였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이라면 여행 가방에 부담 없이 넣어 갈 만한 가벼운 사이즈다). 수식 많은 문장이나 세련된 장면 구성보다는 낯선 세계 위에 거침없이 서사를 전진시키는, 솔직담백한 정보라 소설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었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위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깊이감이 독서의 만족감을 가득 채웠다.
소위 ‘혁명’ 이후 인간의 개별성을 소거하는 전체주의적 통치 시스템 아래에서 보낸 한 여성의 생애를 다룬 『내 이름을 불러줘』는 제목 그대로 ‘이름을 찾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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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처형당한 시체 옆에서 야간 경비를 선 뒤로, “내 이름을 불러줘”라는 말을 반복하는 하얀 얼굴의 환영을 평생 만나게 된 여성. 그녀가 상실한 아이들과 연인,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는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지네 괴물’ 이야기 『바늘 자국』은 두 여성의 곡진한 사랑과 연인을 위한 평생의 복수를 오이디푸스적인 장치와 결합해 통쾌한 서사로 직조했다. 온몸이 따끔거리는 듯한 환상통도 느껴지는 4D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표제작『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는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나쁜 (그러나 유력한) 가능성을 담았다. 서늘하고 무거운 이야기인데도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서 귀엽고 사나운 고양이 ‘귀야옹’ 씨를 위한 응원봉에 불이 켜진다.
사진. ⓒ Tambako The Jaguar/flickr
이름을 잃고, 사랑하는 대상을 잃고, 삶터를 잃는 세계에서 정보라는 언제나 이 상실을 누가 기억하고 불러줄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거대한 혁명보다는 한 사람의 의지를 믿고, 괴물과 로봇에게 복수하면서도 그 뒤에 남겨진 마음을 읽는다. 책을 읽고 나면 사라져 가는 존재, 약한 마음, 스러진 사랑의 기록이 내게도 어딘가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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