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과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기가 송전망을 통해 첨단산업 시설과 도시로 공급되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생성형 AI 제작.
전기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망국적인 ‘탈원전’도 사실은 전기 문제였다. 이번에는 사안이 훨씬 복잡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속도전’보다 더 강력한 ‘전격전’으로 밀어붙이겠다는 ‘3대 메가프로젝트’에 필요한 전기를 어떻게 생산·공급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합리적인 ‘전력 믹스’를 찾아내야 하고 전국적인 ‘송·배전 체계’도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모두 복잡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중대한 사안이다.
현실은 만만치 않다. 당장 기후부가 지난 3월 내놓았던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은 벌써 설득력을 잃었다. 2030년까지 설치하겠다는 100 GW의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전기는 평균적으로 15 GW 수준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인공지능에 필요한 60 GW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작년 연말에 자진해서 강화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탈석탄 동맹’이 모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고압 송전망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전기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전기의 정체와 복잡하게 뒤엉킨 사회적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언론과 인터넷에서 얻는 파편적인 정보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력 수급을 전담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만 한다. 전력 수급은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직결된 현실의 문제라는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다.
● 전기는 ‘에너지 전달 수단’
140년 전에 처음 등장한 전기는 그 자체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연료’가 아니다. 공기 중의 산소와의 연소 반응으로 빛과 열을 만들어내는 장작·숯·석탄·석유·천연가스 같은 연료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사실 전기는 발전소에서 물리적·화학적으로 생산한 에너지를 소비자에게 전해주는 ‘에너지 전달 수단’으로 개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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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기에는 반드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필요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는 ‘송·배전 선로’를 통해 발전소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실시간’으로 소비하는 것이 원칙이다. 연탄이나 석유처럼 소비자가 개인적으로 저장해 놓은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전기를 편리하고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것도 전기가 에너지 전달 수단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는 연료를 구입하고 저장하는 성가신 일은 물론이고 에너지가 필요할 때마다 불을 피워야 하는 위험한 일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사실 연료를 연소시키는 일은 상당한 오염과 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다. 거의 모든 도시가 끔찍한 대(大)화재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 환경성도 중요하지만 경제성은 더 중요하다
물론 전기가 공짜일 수는 없다. 발전소와 송배전 설비의 건설·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전부 소비자가 감당해야 한다.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당연히 전기의 편익을 누릴 수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1965년부터 농어촌전화사업을 시작했고 1980년대 초에는 전 국민이 전기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이제 전기는 전 국민이 당연히 누리는 국가의 기본적인 서비스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최대한 저렴하게 유지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전기의 생산과 송배전에서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탈원전이 비현실적이었던 이유도 전기 생산의 경제성을 섣부르게 무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 경제 발전으로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무엇이든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기는 더욱 그렇다. 더욱이 이제 전기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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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기요금이 올라가면 국민 부담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전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산업도 전기요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대 산업의 경쟁력은 전기요금이 좌우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가정용보다 높게 책정된 현재의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는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기업주가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기업의 전기요금은 궁극적으로 제품의 생산원가에 포함되어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기의 경제성을 확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전기의 생산과 소비의 분리’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 벗어난 곳에 대형 발전소를 건설하면 오염과 사고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발전소를 대형화해 ‘규모의 경제’도 추구할 수 있다.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대도시 근처에 발전소를 설치하면 오염 해소 등에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한다. 물론 발전소와 송전선로 때문에 불편을 겪는 주민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 오늘날 송전탑과 변전소에 대한 주민 반발은 우리가 그런 보상을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송전탑과 변전소를 수용하는 지역에 대한 확실한 지원 제도를 서둘러야 한다.
● 지산지소에 대한 왜곡된 인식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에 대한 비뚤어진 관심도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본래 지산지소는 농산물의 ‘지역 생산·지역 소비’에서 시작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분산형 전원 정책으로 확산된 일본의 행정 용어다.
우리도 2002년 제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부터 ‘분산형 전원’의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기후부가 우리의 노력을 외면하고 굳이 일본의 낯선 행정 용어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지산지소가 태양광·풍력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제주와 전남 지역에는 태양광·풍력 설비가 넘쳐나서 골치를 앓고 있는 형편이다. 오히려 햇빛과 바람이 공짜라는 어설픈 구호로 우후죽순처럼 세워 놓은 태양광·풍력 설비가 지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현실을 절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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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풍력은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은 ‘미래 기술’이다. 수명이 20년인 태양광·풍력 설비의 재활용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더욱이 태양광·풍력 설비에도 송전선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다만 규모가 작아 낮은 전압의 소규모 송전선로를 사용한다는 。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전국 2만 곳이 넘는 태양광·풍력 설비를 위해 거미줄처럼 깔아야 하는 ‘에너지 국도·지방도’의 구축 비용도 적지 않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37.1 GW의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 중 23%에 해당하는 8.9 GW가 계통 접속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고압 송전선로와 변압 설비에 대한 ‘전자파 괴담’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전자파 괴담은 2023년에 사망한 폴 브로더라는 미국의 무책임한 기자가 1987년에 만들어낸 것으로, 1992년 어느 재미동포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다.
60헤르츠의 교류에서 초저주파(ELF)가 방출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압 송전선로와 가정 내 전선에서 방출되는 ELF의 인체 유해 가능성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일본은 물론 우리나라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확인한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송전선로 구축을 재정적으로 바닥을 드러낸 한전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에너지 ‘고속도로’도 필요하지만, 소규모의 ‘국도·지방도’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송전선로의 효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제주도에서 태양광 전기가 남는 것은 봄·가을의 하루 2시간뿐이다. 그런 전기를 육지로 보내겠다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직류송전선을 설치할 이유가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전력 믹스와 송·배전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수도 있다. 과학적 합리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필자 소개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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