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리갈대밭 가는 길 좌우의, 옛날에 배가 드나들었다는 드넓은 신성리들_소실.께에 금강이 흐르고 거기 갈대밭이 있다. 구름에 싸인 야산들은 '지리적 금남정맥'을 이루는 전라북도 익산?군산의 함라산, 봉화산, 어래산 줄기다.
한산면사무소에 거의 붙어있고 묘역이 능처럼 넓어 한산을 식읍(食邑)으로 가졌을 것 같은 호족(豪族)의 권세가 풍겨난다. 바로 옆의, 기단이 사라져 앉은뱅이 같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지현리 3층석탑'이 망주석처럼 여겨질 정도니 그 위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고려 말 이 가문을 빛낸 목은(牧隱) 이색과 아버지 이곡을 모신 문헌서원(文獻書院)을 찾아가본다. 건지산 서쪽 산자락 남향받이에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서원이라는 것이, 중앙 정계에서 물러난 사대부가 시골에 묻혀 "성현을 제사지내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사설 교육기관"으로 원래는 가문의 사우(祠宇)에서 출발했다더니 딱 그 짝이다.
애초에는 이곡과 이색만 모셨다가 중간에 이종학, 이자, 사육신 이개, 이종덕을 추가해 지 금은 모두 여섯 분을 배향하고 있단다.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지금의 대안학교라 할 서원이 탈세의 온상이었으며 시키지도 않은, 풍속 교화의 기능까지 가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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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 편액을 내리는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많아지면서 특권화한 결과였는데 스스로 향약을 만들어 강제하고 효자나 열녀를 표창했다 하니 시골?여기저기 종종 보이는 효자각이나 열녀비를 다시 살펴야겠다.
한산이씨의 근대 인물 이상재 선생 생가로 가며 <위키백과>를 뒤져본다. 그런데 첫 문장이 "대한제국 의정부 총무국장을 지낸 정치가"다. 오잉, 사회운동가 아니었어?
18세 때인 1867년 과거에 낙방한 후 승지 박정양의 개인비서가 되어 1881년 일본을 시찰, 개화사상을 접하였다. 그리고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관직을 사퇴했다가 1887년 미국 전권 대사 박정양을 따라 공사관 2등서기관으로 부임하였으며 귀국 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부터는 윤치호와 함께 YMCA를 이끌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1920년 7월에 창립된 조선체육회의 첫번째 행사 전조선야구대회 개회식에서 두루마기를 입고 시구를 하는 사진이 지금도 전한다. 1922년에는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 회장이 되었으며 1924 년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1927년 2월 15일에 결성된 신간회 회장으로 추대되자 병석에서 수락하였으나 3월 29일 사망, 거족적인 사회장이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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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세 연하인 감옥동기 이승만의 정치적 스승으로 일컬어진다.
내가 알고있는 이상재와 많이 다르다. 고졸한 맛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금방 지은 듯한 초가집과 기념관을 건성으로 둘러 보고 나온다.
한산향교는 한산읍성의 서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폭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찾았는데 입구의 느티나무가 <삼국지> 유비 동네의 '일산(日傘) 같은 뽕나무'처럼 향교 전체를 덮고 있다. 고려 충렬왕(1274~1298) 때 처음 세웠다는 관립학교로 재실이 동쪽에만 있어 의아했는데 안내판을 보니 명륜당 서쪽의 집사청(執事廳) 같은 것이 서재(西齋)란다.
부엌이 딸려있어 일꾼들도 왔다갔다 했을 듯한바 옆에 화장실도 있으며 삼문을 안 통하고 밖으로 나갈 수?있도록 한 실용적인 구조다. 외삼문은 또 문 위에 홍살이 없어 이웃 대갓집처럼 친숙한 느낌을 준다.
머지 않은 데 있는 한산모시관을 가서 보니 어렸을 때 보았던 베 짜는 과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첫번째는 모시를 베어 흐르는 물에 담갔다 건졌다 하면서 수수깡 같은 속을 제거한 뒤 모시칼로 겉껍질을 벗겨내 섬유질만 남기는 태모시 만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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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모시올 하나하나를 앞니로 갈라 가늘게 만드는 모시째기, 두 개의 대나무 기둥 '쩐지'에 모시 타래를 걸쳐놓은 뒤 한 올, 한 올 침을 발라 이은 모시올을 체에 또아리 모양으로 안치는 모시삼기, 이렇게 만든 '모시굿' 560개(7乘布 기준)로 날실을 만들어 바디에 끼우는 모시날기, 날실 560줄에 왕겨불을 피우면서 매기솔로 콩풀을 먹이는 모시매기, 씨실용 '모시굿'을 실꾸리에 감는 꾸리감기, 실 꾸리를 북에 넣고 베틀을 조립하여 베짜기… 이 모든 것을 낱낱이 보여주던 어머니가 그립다.
이 한산은 이른바 저산팔읍(苧山八邑)?정산, 부여, 홍산, 임천, 한 산, 서천, 비인, 남포의 대표 고을로 1967년 한산모시짜기가 무형 문화재 14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저마(苧麻)라고도 하는 모시의 품질은 날실 80줄 단위의 '몇 승(乘)'으로 이야기하는바 5승포는 일반적으로 상복(喪服), 6~7승포는 일상복, 8승포는 관복을 지을 때 썼다고 한다. 12승포 이상을 세모시라고 했는데 길이는 36자, 21.6m가 한 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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