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동쪽 끝 작은 마을 세화리에는 카카오 볶는 고소한 냄새가 퍼지는 거리가 있다. 과테말라산 카카오를 직접 들여와 로스팅하고 가공하는 제주 로컬기업 ‘카카오패밀리’의 카카오 전문 브랜드 ‘코코하’ 매장에서 풍겨 나오는 향이다. 제주와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카카오가 이제는 세화리를 상징하는 로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이를 경험하려는 관광객이 전국에서 몰리고 해외 방문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김정아 카카오패밀리 대표는 25일 제주 구좌읍 세화리 코코하 매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제주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단순히 고향이어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카카오를 재배하면서도 가난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원주민들을 보며 제주 농촌을 떠올렸다”며 “카카오를 활용하면 제주 농촌의 상권을 살릴 새로운 콘텐츠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카카오를 접한 것은 2000년대 후반이다. 시댁 식구가 과테말라에 정착하면서 2007년께 가족과 함께 현지로 향했다. 이후 김 대표는 멕시코로 이동해 중·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고 남편은 컴퓨터를 가르쳤다. 부부의 관심사는 비즈니스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살아갈 기반을 만드는 일이었다. 김 대표는 과테말라에서 마야인 방식으로 초콜릿을 만들어 먹으면서 카카오에 눈을 떴다.
2011년 출산을 위해 제주로 돌아온 김 대표는 과테말라로 돌아가는 대신 세화리에 정착했다. 김 대표에게 과테말라 농촌과 제주 농촌은 꽤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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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테말라에서 카카오는 보물 같은 자원이었지만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살기 어려워 자녀들을 외지로 보냈다”며 “제주에서도 어릴 때 ‘공부 안 하면 물질하고 당근 농사짓는다’는 말을 들었고, 자연스레 젊은 사람들은 모두 빨리 떠나고 싶어 했던 것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코코하는 과테말라산 카카오로 카카오 캐러멜과 밀크티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지난해 수입량은 약 7톤, 올해 목표는 20톤이다. 국내 최대 카카오 수입 기업인 롯데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카카오패밀리는 매출의 약 70%가 자사몰 등 온라인 판매에서 나온다. 대표 제품인 ‘카카오카라멜’이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16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연간 목표는 30억 원이다. 지난해 초부터는 흑자로 돌아섰다.
김 대표는 카카오패밀리만의 성장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주변 상인들과 함께 세화리 상권 전체를 키우는 것이 회사가 추구하는 또 다른 방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시작한 ‘세화리 세계여행’이다.
세화리 세계여행 프로그램에는 현재 16곳 안팎의 가게가 참여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카이막, 독일식 샤퀴테리, 프랑스 디저트, 일본 이자카야, 한국 전통 자개 체험, 미국식 피자·패션까지 각 가게의 특성에 맞춰 국가별 콘텐츠로 엮었다. 김 대표는 “일반 식당에 가면 음식을 먹고 끝나지만 세계여행에서는 사장님이 왜 이런 음식을 만들게 됐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듣는다”며 “가게가 아니라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고, 결국 세화리에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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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기업과의 협업도 세화리 전체로 넓히고 있다. 오뚜기(007310)와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오뚜기가 운영하는 식음료 매장의 셰프들은 세화리 13개 가게의 제품을 활용해 메뉴를 개발했고 세화리 상인들은 오뚜기 제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상품을 내놓았다. 코코하는 ‘진라면 카라멜’과 ‘카레 카라멜’을 만들었고, 세화리의 한 향수 업체는 오뚜기의 청귤잼과 한라봉잼을 활용해 향을 개발했다. 자개 공방은 오뚜기 로고를 활용한 키링을 선보였다.
카카오패밀리와 오뚜기가 협업해 개발한 ‘오뚜기 진라면 카라멜’과 ‘오뚜기 카레 카라멜’. 사진 제공=카카오패밀리
올해 제주에 처음 매장을 연 무인양품의 첫 팝업에도 세화리팀이 참여했다. 네이버 해피빈을 통한 공동 펀딩에는 마을 19개 가게가 참여해 25일 만에 약 1억 2500만 원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판매 경험이 없던 상。들이 스마트스토어를 구축하고 제품 디자인과 브랜딩을 새롭게 정비했다.
세계여행 프로그램의 성과를 세화리 전체 상권의 매출로 연결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카카오패밀리와 세화리 상인들은 9월 말 각 가게의 이야기를 담은 초콜릿 6종을 출시할 예정이다. 피자가게 ‘레드로켓’과 협업한 초콜릿, 오트밀 비건 커피를 만드는 ‘카페 빈광덕’의 이야기를 담은 초콜릿, ‘샤퀴테리도감’과 함께 개발한 잠봉 초콜릿 등이 준비되고 있다. 각각의 매장에서 해당 초콜릿을 판매하는 구조다. 김 대표는 “초콜릿은 세화리의 이야기를 관광객들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콘텐츠 상품”이라며 “동시에 자체 상품을 개발하기 어려운 소상공인들에게 새로운 매출원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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