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현대건설 ‘올라이프 케어 하우스’. 제로에너지를 실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곳 모델하우스에 들어서자 거실 한쪽 벽면에 가득 들어찬 인테리어 타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 용도로 보였던 이 타일들의 정체는 개당 3W(와트)짜리 차세대 배터리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내장한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였다. 베란다·옥상 등 건물 태양광에서 생산된 전기를 집 안에 저장한 뒤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설비가 급증하자 주택 맞춤형 ESS까지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LFP(리튬·인산·철)나 삼원계 배터리 등과 달리 불에 타지 않고 폭발 위험이 없는 수계 전해액 및 불연 소재만으로 구성돼 있어 집에도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게 최대 장。이다. 배터리 간 이격거리도 좁아 도심 내 작은 공간에 설치하기도 안성맞춤이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개발한 스탠다드에너지 관계자는 26일 “2028년부터는 일반 가정에 ESS가 설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이 전기차를 넘어 로봇·드론·ESS 등으로 가파르게 확장하고 있다. 일명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이 나타난 후 국내 배터리 산업이 일부 위축되기는 했으나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드론, 전력망 등 넘쳐나는 수요를 감안하면 반도체보다 더 큰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모바일 손오공릴게임예시
. 현재는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려 고전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지원을 늘려서라도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나라 전체의 리소스(자원)가 반도체로 지나치게 쏠려 있다”며 “한해 수백조 원을 벌어들이는 반도체도 중요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2등 산업인 배터리에 대한 더 큰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ESS를 비롯한 배터리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총 1732억 5000만 달러(약 240조 원) 규모였던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2034년 4222억 7000만 달러(약 585조 원)로 연평균 10.4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때 산업계에서는 그동안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해왔던 삼원계 시장은 기술 우위를 지키는 전략을 가져가되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LFP나 나트륨·바나듐 이온,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 대해서는 재정을 집중 투입하고 국내시장을 먼저 형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 역시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3배가량 더 비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기계
배터리 업계 고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의 활용도와 필요성이 커지면서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차세대 배터리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신기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 가격을 낮출 만한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시장을 먼저 주도적으로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산 ESS와 전기차 등을 상대로 고관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호재다. 현재 미국이 중국산 ESS에 부과하는 관세는 무역법 301조 등을 합산해 4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 등 각종 제조원가에서 중국이 우리를 앞서고 있지만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경쟁력을 더 키워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배터리 산업 발전에 따른 체계적 지원 대책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보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배터리 응용 시장이 ESS·로봇 등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에너지밀도뿐만 아니라 파워 밀도, 안전성, 수명, 공급망 안정화 등 용도별로 차별화된 성능 요건이 주요 경쟁 요소로 제시되고 있다”며 “배터리 수요 산업이 다변화되고 있는 만큼 생산 능력 확대 중심의 산업정책뿐만 아니라 시장별 수요 특성과 요구 성능을 반영한 기술 개발 실증 및 수요 창출 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수요 산업별 맞춤형 정책을 통해 글로벌 경제 안보 기조 강화 속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탈(脫)중국 움직임을 한국 배터리 산업의 기회 요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경제산업성은 탈중국 흐름 속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6월 초 ‘배터리산업전략’을 개정한 ‘배터리 및 전원 산업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color: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