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트로이의 목마가 나오는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트로이의 목마를 모를 수 없다. 정상적인 프로그램인 척 침입해 컴퓨터를 파괴한다는 악성 코드 트로이의 목마를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그 악성 코드의 이름이 ‘트로이의 목마’라서 더 공포스러웠다. 트로이인들이 잠들었을 때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정예 부대가 쏟아져 나와 트로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트로이의 목마’라는 이름에 심겨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트로이의 목마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개봉 첫날에 보았던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영화에 나오는 이름과 이야기에는 문명의 토대가 된 비유와 상징이 가득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의 뒷배가 되는 텍스트라고도 해야겠다.
영화 ‘오디세이’의 원작은 ‘오뒷세이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7세기쯤에 썼다고 전해지는 쌍을 이루는 두 편의 서사시 중 하나다. 다른 하나인 ‘일리아스’가 영웅들의 전쟁 막바지 며칠을 다뤘다면, ‘오뒷세이아’는 10년간의 전쟁에서 이기고도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는 10년간의 이야기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라서 ‘오뒷세이아’다. 그리고 이 그리스어에서 ‘여정’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오디세이(Odyssey)’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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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라는 그리스 영웅의 이름이 2000년 넘게 살아남아 ‘사연 있는 긴 여정’을 뜻하는 일반명사 속에 살아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디세이는 책과 영화 제목에도 쓰이고, 게임 제목에도 붙고, 장대한 귀환형 서사의 단골 비유로도 쓰인다. 1922년 제임스 조이스가 낸 소설 ‘율리시스’는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이름이고, 주인공(레오폴드 블룸)의 하루 동안의 ‘오디세이’다. 오디세이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것이다.
세이렌이 출몰하는 바다를 지날 때,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한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하게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지만 자신은 노랫소리를 듣겠다는 거다. 몸부림치면 더 세게 묶으라는 말을 했기에, 부하들은 끈을 풀고 세이렌에게 가고 싶어 하는 오디세우스를 더 꽁꽁 묶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를 떠올렸다. 눈보라를 경험하기 위해 돛대에 4시간 동안 묶였었다는 그의 행동은 오디세우스를 모방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퍼뜩 스쳤던 것이다. 눈보라가 치는 날을 골라 항구로 간 터너는 증기선에 올라 자신을 돛대에 묶어 달라고 선원들에게 부탁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갑판에 있다가 선실로 피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터너의 나이는 67세. 1842년 작 ‘눈보라 속의 증기선’은 그렇게 나왔다.
윌리엄 터너 작 '눈보라 속의 증기선' /위키피디아
터너가 오디세우스의 기행을 모방했을 거라는 심증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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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집을 뒤지다가 물증을 찾았으니, 1829년에 그린 ‘폴리페모스를 조롱하는 오디세우스’다. 오디세우스가 불에 달군 부지깽이로 눈을 찌른 외눈박이 거인이 폴리페모스. 산과 바다를 진동시키며 포효하는 거인의 분노를 피해 배로 피신한 오디세우스 일당의 도주가 터너의 저 그림에 담겼다. 황급히 도망치느라 돛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 배의 상단에 ‘오디세우스’라는 글자가 있다. ‘눈보라 속의 증기선’을 그리던 1842년, 터너는 충분히 명성 있는 화가였으나 사진의 등장으로 엄청난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사진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그림이란 세상을 재현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그걸로는 안 됐다. 그림이 어떻게 사진과 다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터너는 오디세우스를 떠올렸고, 67세임에도 돛대에 묶였을 것이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 터너의 동기였다면 오디세우스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일단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대체 뭐라고 하길래 뱃사람들이 홀려서 죽음에 이르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키르케가 오직 나만이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키르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대 자신은 원한다면 들으세요”라고 했을 뿐. 오디세우스는 열렬히 원했던 사람이다. 듣고 싶었던 사람이다. 당신이 오디세우스의 후예라면 키르케의 저 말에 현혹되어 돛대에 묶이기를 선택할 것이다. ‘돛대’ ‘세이렌’ ‘키르케’ ‘오디세우스’… 모두 상징이고 비유다. 당신이 원한다면, 이 상징과 비유가 당신 오디세이의 뒷배가 되어줄 것이다.
‘눈보라 속의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