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비 내리는 오후는 모든 색채를 수묵화처럼 낮게 가라앉게 만든다.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유독 아끼던 그릇 하나가 깨졌다. 알만한 명품은 아니었으나, 그릇의 선과 질감이 내 손과 친근해졌던 물건이었다. 타향살이의 고단함 속에서 그 그릇에 소박한 음식을 담아낼 때마다 삶이 조금 더 정갈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찰나의 실수로 그 그릇은 거실 바닥 위에서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낯선 이국땅에서 나를 지탱해주던 작지만 소중한 것을 잃고 나니 상실감은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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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되살리고 싶어 마트로 달려가 강력하다는 순간접착제를 사 왔다.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숨을 죽이며 파편들을 이어 붙였다. 하지만 무심한 본드는 그릇의 상처를 순순히 받아주지 않았다. 붙여 놓으면 이내 툭 떨어지고, 억지로 버티게 하면 접착제가 흉하게 새어 나오며 각도는 곧 어긋나기 일쑤였다. 깨진 단면들이 서로를 완강히 밀어내는 그 서글픈 광경을 보며, 나는 어쩌면 우리가 삶의 위기와 관계를 대하는 방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상처를 없었던 일로 하려는 조급한 시도, 깨진 틈을 억지로 메우려는 강제적인 노력은 결국 본질을 훼손하고 더 큰 관계의 어긋남만을 남길 뿐이었다.
가만히 부서진 파편들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웠던 그 온전한 그릇은 일종의 ‘완벽함(Perfection)’, 즉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이데아(Idea)의 환상이었다는 것을. 형태를 가진 세상의 모든 것은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파괴될 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영원할 것 같던 무결.의 상태는 현실 속에서 결국 부딪히고, 깨어지며, 필연적으로 불균형한 파편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완벽함이 산산조각 나는 바로 그 균열의 순간부터 그 대상은 진정한 ‘나의 것’으로 태어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우리는 우리가 부서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We are stronger in the places that we've been broken)”라고 썼듯, 상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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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의 모조품에 불과했던 차가운 공산품은 나의 실수로 인한 상처를 입고 부서짐으로써, 비로소 나의 땀과 체온이 스민 ‘나의 기억’임을 알게 되고, 아프지만 선명한 ‘나의 추억’이 되며, 궁극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전설’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킨츠기(Kintsugi): 깨진 틈에서 피어나는 황금빛 서사
이 부서진 전설을 어떻게 다시 안아 올릴 수 있을까. 그릇을 고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 헤매다, 운명처럼 내 시선을 멈춰 세운 단어가 있었다. 바로 ‘킨츠기(金?ぎ)’였다.
킨츠기는 깨진 도자기 파편을 옻칠로 잇고, 그 갈라진 선을 따라 황금 가루를 뿌려 마무리하는 일본의 전통 수리 기법이다. 이 기법의 정수는 수리가 ‘상처를 감추고 원래의 완벽함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찬란하게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데 있다.
일본의 전통 수리 기법 '킨츠기' / 출처. Millennium Gallery JP 사이트
장인은 그릇이 깨졌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깨짐의 궤적을 황금빛 선으로 대담하게 강조하며, 그릇이 겪은 시련과 파괴의 시간을 하나의 훈장으로 격상시켜낸다. 수리가 끝난 그릇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늬를 가진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상처가 곧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 그 그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릇의 파편들은 지금도 내 방 한구석, 작은 나무 상자 안에 담겨 있다. 다만 날카로운 파편들과 작은 조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상자를 열 때마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다림’의 시간을 만난다.
언젠가 때가 되어 그 파편들이 황금빛 선으로 다시 이어질 날을 꿈꾸며, 나는 그 ‘부재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 깨진 상태로 머물러 있는 그 그릇은 완벽히 복원된 물건보다 내게 더 깊은 위로를 준다. "아직 아물지 않아도 괜찮다, 그 부서진 파편들조차 이미 너의 고유한 시간과 역사다"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Taku Nakano, Kintsugi Cup 'Vermilion Crackle' 02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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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不在)의 디자인: 보이지 않기에 더 선명한 것들
디자인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은 때로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서 나온다. 나는 이것을 ‘부재의 디자인’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그가 내 곁에 있을 때보다, 그가 떠난 뒤의 빈자리가 숨 막히게 크게 느껴질 때다. ‘그가 없다’는 물리적 사실이 오히려 ‘그가 내게 누구였는가’를 가장 아프고도 선명하게 가르쳐준다. 킨츠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단순히 황금 가루가 화려해서가 아니다. 그 찬란한 황금 아래 숨겨진 ‘깨짐’이라는 부재와 상실의 흔적을 우리가 본능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문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음악에서의 쉼표는 소리를 없애는 정지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앞선 선율의 여운을 마음속에서 깊게 울리게 만드는 공명의 시간이다. 나아가 일본의 소리 없는 연극 노(能)는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아우성을 전달한다. 건축에서의 정원은 건물을 비워둔 죽은 공간이 아니라, 하늘의 빛과 계절을 집 안으로 모셔 오는 열린 무대다. 동양화와 디자인에서의 여백 역시 정보를 칠하다 만 곳이 아니라, 감상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 상상력을 채워 넣어 화면 속을 거닐 수 있도록 작가가 만들어둔 특별한 자리다.
현대 사회에서 편리함은 돈으로 살 수 있고 최첨단 기술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 깊이 남는 ‘그리움’은 결코 인위적으로 대체할 수 없다. 부재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바로 그 대체 불가능한 그리움의 자리를, 인간의 숨결이 머물 수 있는 틈을 만드는 일이다. 세상은 여전히 화려한 상징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우리는 그 상징에 무비판적으로 끌려가지 않아야 한다. 상징을 읽되 매이지 않고, 경쟁을 이해하되 경쟁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 것. 대신 결핍과 부재의 틈이 있는 나만의 시스템, 나만의 人Sight를 구축해야 한다.
데카르트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존재의 주권을 회복했듯, 칸트가 우리의 인식 구조로 세계를 새롭게 구성했듯, 우리 역시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다시 번역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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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브랜드와 압도적인 공간은 결코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인 공백과 결핍을 두어 우리가 스스로 상상하고 개입하게 만든다. 부재의 디자인은 바로 그 틈, 인간의 마음이 자발적으로 닻을 내리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다시, 자비로 잉태된 인간이라는 가치로
이제 우리는 이 긴 여정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다. "인간은 자비로 태어난 존재다."
디자인은 단순히 시장에 잘 팔리는 세련된 유행을 조립하는 기능적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약하고, 서툴고, 때로는 처참하게 부서진 본성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숭고한 일이다. 0과 1로 이루어진 인공지능의 차가운 바다 위에서 완벽함을 강요받으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깨진 틈은 당신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마침내 당신의 내면으로 빛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인 온기로 전하는 일이다.
그러니 당신 삶의 결핍을 억지로 메우려 너무 애쓰지 마라. 그 결핍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감싸 안았으면 한다. 당신의 작은 나무 상자 안에 담긴 그 깨진 파편들을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그 날카로운 파편들이야말로 당신만의 독특한 ‘人Sight’가 탄생하는 발원지이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신화(Mythology)가 시작되는 멋진 자리다.
“Timeless Magic,” 2023 Taisho era (1912-1926) black Raku ware, urushi lacquer, 24K gold, and resin. / 출처. Portland Japanese Garden 사이트
세상이 당신에게 "더 완벽해지라, 더 매끄러워지라, 약.을 감추라"고 다그칠 때, 세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人Sight를 가진 당신은 대답해야 한다.
"나는 나의 깨진 틈을 황금으로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상처야말로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가장 진실한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세상을 보는 자, ‘人Sight ? The Person Who Sees’가 도달하게 될 진정한 풍경이다. 당신은 더 이상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남이 만든 상징을 좇는 단순한 팔로워가 아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가치와 상징의 거대한 원천이 될 것이다.
제이슨 김 브랜드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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