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희 논설위원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도입부에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구체적 사건은 일부 다르게 각색되었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당시 특별수사본부는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지령을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육 여사와 합창단원 장봉화양이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결론 내렸다. <암살자(들)>은 정부의 공식 발표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따져보면 몇몇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출입증도 없는 문세광이 어떻게 총을 들고 행사장에 들어갔을까. 수거된 탄두와 총성 숫자는 왜 맞지 않을까. 실제로 조총련이 암살을 지시하고 지원했는가. 이것이 ‘그날’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이다. 이런 의혹들은 그간 꾸준히 제기됐고, 한국과 일본의 수사 결과도 달랐다. 1989년 수사에 참여했던 이건우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이 한 인터뷰에서 “육 여사는 문세광의 총탄에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양심선언을 하기도 했다. 영화는 이 의혹들의 틈새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허술한 경호 체계, 문태광의 의문투성이 행적, 흔쾌히 동의할 수 없는 정권의 수사 통제는 상상력을 발휘할 근거로 충분하다. 영화 속 형사 박철구(유해진), 신문사 사회부장 김재환(박해일), 기자 한영일(이민호)이 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추적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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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 사건이 알고 보니 ‘정권의 국면 전환용’이라는 가설하에 그 배후가 중앙정보부일 수 있음을 추론한다. 야권과 보수 진영에서 욕을 먹고 역사 왜곡이란 논란이 시작되는 지。은 여기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가능성을 진짜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영화는 의혹 틈새를 상상력으로 채워
야권의 역사 왜곡 공세는 도를 넘어
고의로 왜곡해 만든 영화라긴 무리
민주사회라면 이런 상상력 검증해야
공과가 뚜렷한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르고, 어디까지 영화적 상상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놓고도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의 공세는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주진우 의원은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라며 형사처벌과 수익 환수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진숙 의원은 상영 중단을 촉구했고,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암살자(들)>에서 다룬 의혹은 시사·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다룬 바 있다. 과연 영화는 이들이 우려할만큼 역사 왜곡인 걸까. 무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막상 영화는 그 사건을 파헤쳐가는 형사와 기자의 이야기가 더 많다. 큰 범주에서 보면 권력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려 했던 언론 영화로 보인다. 당시는 언론을 검열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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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환이 ‘자유 언론 실천 선언문’을 낭독하는 장면은 왈칵 가슴을 때린다. 하지만 영화가 미스터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언론의 책무로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설정은 아쉽다. 그렇다 해도 고의로 역사 왜곡 의도를 가지고 만든 영화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암살자(들)>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를 소환시킨다. 이 영화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배후에 미 중앙정보국(CIA)이 있다는 의혹을 파헤치는 한 검사의 노력을 그렸다. 뉴스 영상을 짜깁기해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만든 장면 대부분은 ‘허구’다. 영화 개봉 후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대한 음모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미 의회가 ‘JFK 기록 공개 특별법’을 제정한 。이 우리와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영화적 상상력이 국가 기밀문서를 공개하는 키가 된 것이다.
사실과 허구가 섞인 영화에서 허구가 문제가 되는 상황은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을 때다. 누군가는 허구에 주목해 영화의 저의를 의심한다. 여기에 고질적인 ‘편가르기’까지 가세했으니 더 시끌시끌해질밖에. 그러나 성숙한 민주사회라면 영화의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내 검증해야 마땅하다. 정보와 기록을 공개해 국민이 직접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말만은 가슴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한 회장(정우성)에게 재환은 “어떤 게 득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라며 진실에 무게를 둔다. 그렇다면 허구의 창작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지 않은가.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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