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에서 경찰 박철구(유해진 분·왼쪽)가 서울경찰청 감식계장 이건우(박지환 분)와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에 모종의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대화하는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암살자(들)’은 청와대 경호실을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둘러싼 흑막 중 하나로 그려낸다. 경호실이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문세광을 행사장에 들여보냈고, 공범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는 증거들을 수거·인멸한 것처럼 묘사한다. 경비에 실패했다고 면직된 경찰 박철구(유해진 분)는 청와대 경호계장을 찾아가 “(저격 사건을) 누가 지시한 겁니까. 사실을 말해 주십시오” 하고 읍소하지만 폭행을 당하고 쫓겨난다. 청와대 경호실이 뭔가 숨겨야 할 비밀을 갖고 있는 것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1974년 한국은 최빈곤국은 벗어났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 수준으로 여전히 저소득 개발도상국이었다. 당시 국가·사회 시스템은 4만달러를 바라보는 현재의 관.에서 보면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건 영상을 보면 국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에 대한 경호조차 어설펐다. 본지는 1974년 8월 21일자에 ‘저격은 어떻게 가능했나-허술한 삼엄을 진단해본다’는 제목으로 경호의 문제。을 하나하나 짚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청와대 경호실의 교육·훈련 부족, 안일한 근무, 주먹구구식 병력 운영 등에 따른 ‘총체적 경호 실패’로 규정하고 사례 연구를 내놓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평생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김대중 청와대에서 만든 자료에서조차 경호실이 의도적으로 부실한 경호를 하고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식의 발상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 있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 경호실 교리발전부가 1998~1999년 연구·작성한 ‘8·15 사건 사례 연구’ 문서는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경호원·경찰·국립극장 담당자 등을 면담하고 수사·재판 기록, 경호·경비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경호의 허。을 보완하기 위해 작성된 문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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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건은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대표적 경호 실패 사례”이자 “경호실 역사상 치욕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영화 ‘암살자(들)’에서 묘사된 사건 직전 문세광과 행사장 모습. /하이브미디어코프
◇정문, 현관... 문세광 못 막은 경호실
영화에서 문세광은 출입 비표가 없어 경찰에 의해 출입이 제지된다. 하지만 그때 청와대 경호계장이 등장해 “경호 지침이 바뀌었다”며 문세광을 들여보내도록 한다. 현장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국가 행사에 경호 지침이 갑자기 바뀐 것에 의문을 표한다. 영화 ‘암살자(들)’의 도입부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날 경호가 느슨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사건 전날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은 “비표에 의한 철저한 출입 통제를 실시하되, 내빈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친절성을 결하지 말도록 유의할 것”이라고 지침을 내렸다. 보고서는 과잉 경호에 대한 문책이 사건 당일 경호 위축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앞서 5개월 전 3·1절 기념식에서 경호실은 행사장에 들어오는 대사 부인들의 핸드백까지 예외 없이 맡기도록 했다가 항의가 들어오며 담당 경호과장이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후 외국인에 대한 검색이 느슨해졌다는 다수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이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다. 중후한 신사복을 입고 외제차 뒷좌석에서 내려 고위층 행세를 하며 일본어로 일본 대사와 약속이 있다고 말한 문세광이 그 덕에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문세광을 태웠던 기사는 당시 본지에 “그(문세광)의 차림이 큰 사업을 하는 신사로 보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DB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 중 문세광이 총탄을 발사한 직후의 상황. 박정희 대통령은 연설대 뒤로 몸을 피한 상태에서 경호관들이 그곳을 둘러싸고 있고, 오른쪽엔 문세광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육영수 여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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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임희순 기자의 특종 사진이다.
◇교육·훈련 없는 총체적 경호 실패
경호 실패는 의도적이었던 게 아니고 당시 형편없던 경호 역량이 부른 참사였다. 문세광은 극장 좌석에서 초탄을 오발한 후 6초 동안 11.85m를 이동해 2탄을 대통령 연단을 향해 발사했다. 하지만 현장 경호 인력은 이 최초 총성을 인지하지 못해 총을 들고 통로를 달리는 문세광에게 아무런 조치도, 무선 또는 육성으로 상황에 대한 전파도 하지 못했다.
보고서는 박종규 경호실장을 비롯해 단상 근무자들이 사건 발생 당시 대통령에 대한 방호·대피보다 문세광 대적에 더 치중한 것도 경호 실패의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교육 훈련 부족으로 방호를 위한 즉각적인 반사 행동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호 관계자는 “평시 교육이 우발 상황에 대한 교육 조치보다 사격·무도에 집중되었다”고 증언했다.
대통령 지근거리의 경호 인력도 부족했다. 문세광의 발포로 현장이 혼란스러워지자 뒤늦게 추가 경호 인력이 단상에 붙었다. 달리던 문세광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것도 경호원이나 경찰이 아니라 일반 참석자였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경호실의 주먹구구식 인력 운영
영화에선 행사 도중 청와대 경호실 직원 상당수가 모종의 이유로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나온다. 이를 의도적 경호 실패의 수단처럼 묘사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이날 현장을 담당했던 ‘경호 2과’는 오히려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 일각에서 다음 행사인 서울 지하철 개통식으로 경호 인력이 빠졌다는 주장이 있지만, 지하철 개통식은 ‘경호 1과’ 담당 업무였다. 총 3과로 구성된 경호실은 본관 근무·휴무·대기 순으로 돌아가는데, 광복절과 지하철 개통식이 겹치면서 행사 대기 중이었던 경호 1과가 지하철 개통식에 투입되고 원래 휴무에 들어갈 예정이던 경호 2과가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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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광은 오전 8시 50분쯤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이날 현장 담당 경호 2과는 오전 8시 30분부터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해 오전 9시에야 다 모였다. 보고서는 “과 서무(작전 담당)에 의한 주먹구구식 경호 인력 운영이었다”고 지적한다. 행사 경호를 위해 경호 2과의 오전 본관 근무를 단축시켰어야 하는데 평소 근무 루틴대로 그냥 투입 운용했다는 것이다. 이날 기념식에 서울시 행사 요원·종사자는 오전 7시 40분부터 입장했고 경찰은 오전 7시 50분에 병력 배치를 완료했다. 보고서는 “경찰보다 수십 분 늦은 시간에 (경호 인력이) 배치되어 경찰에게 정확한 업무 협조나 지시를 할 수 없었다”면서 “행사 시작까지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행사장을 답사한 후 취약.을 파악하고 자신의 근무 위치까지 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이동 경로에만 경호 인력을 집중 배치해 경호보다 의전 위주로 운용한 것도 경호에 약。을 초래했다.
◇현재 경호 시스템 도입 계기 돼
보고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 경호에 큰 진전이 있었다고 말한다. 현재까지도 적용되고 있는 경호 규칙이 이 사건 이후 만들어졌다. 오늘날 요인들의 안전은 육영수 여사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행사장을 안전 구역·경비 구역·경계 구역으로 단계적으로 구분해 통제하게 됐다. 경호 인력 정원도 늘리고 직제도 개선됐다. 행사장에 문형 금속 탐지기를 설치, 운용했다. 기념식이 자주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에는 역조명 장치가 설치돼 유사시 단상 조준 사격이 불가능하도록 했다. 피경호인 탁자 등도 방탄으로 제작하게 했다.
이 보고서는 공개돼 있는 자료여서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여러 의혹을 제기한 허진호 감독은 본지 인터뷰에서 “진실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미명으로 어설픈 의혹을 제기하기에 앞서 조금만 진지한 자세로 자료 조사를 했더라면 비극의 역사까지 비틀어 영화 흥행의 소재로 삼는 무책임한 행동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장 관계자들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