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종종 교회에서 “교회와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조금 불편해져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라거나 잘못했을 때 회개하라거나 어려울 때 기도하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데 충성하라는 표현은 왠지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군대나 조직도 아닌데 꼭 충성이라는 말을 써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A : 요즘은 군대에서도 충성이라는 단어는 경례할 때 외에는 사라져가는 개념이라고 들었어. 충성이라는 단어에는 자신의 의지와 판단을 내려놓고 조직이나 대상에게 복종한다는 어감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이 말이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서는 충성을 중요한 신앙의 태도로 이야기하지.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향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말씀하셨고 목회자들이 교회를 대할 때 가져야 할 마음 역시 충성이야.(골 1:7,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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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상상해 보자. 네가 네 애인이 친구와 하는 통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네 애인이 “결혼까지는 좀 그렇고 잘 모르겠어”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회사를 다니는데 팀장이 너를 두고 “올해까지만 일하도록 하고 내보내려고” 하는 말을 들었다면 어떨까. 두 경우 모두 서운할 거야. 왜 그럴까.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향해 충성해주기를, 신실하게 대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사실 우리의 삶도 그런 충성 위에 세워져 있어. 부모가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준 충성, 교회 공동체가 한결같이 품어준 신실함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신앙을 이어온 경우도 많아. 따라서 우리는 충성하기는 싫지만 충성을 간절히 바라는 모순된 마음을 갖고 있는 거지.
충성은 내가 ‘나보다 더 큰’ 무언가를 발견할 때 생기는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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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인이 “국가는 나보다 더 크고 위대하다”고 느낀다면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고 한 아버지가 갓 태어난 딸을 바라보며 “이 아이의 생명은 내 생명보다 더 귀하다”고 느낀다면 자기 목숨까지 내어줄 마음이 생기겠지. 결국 충성이란, 필요하다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지키고 섬기고 싶은 대상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오는 마음이야. 반대로 그런 대상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 무엇에도 열정을 가질 수 없단다.
우리 구주를 생각해 보자고. 성경은 그분을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계 1:5)라고 소개하고 있어. 왜 그분을 충성되다고 묘사하는 걸까. 그분에게 성부 하나님의 명령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했어. 그래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실 수 있었어. 그 결과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셨지.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주실 무언가가 있었어. 우리도 그럴 위대한 분이 계시고. 그분께 우리는 충성을 다해야 해.
이정규 목사(시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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