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섬 제공
“한 달에 하루를 달력에 표시해 두고 축제를 기다리듯 봉사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대학 입시 재수를 하면서 홀로 서울에서 지내던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김민준(가명·21)씨에게 매달 첫째 주 토요일은 특별한 날이다. (재)나섬(이사장 국명호 여의도침례교회 목사)의 ‘청년 일상친구(1379) 프로젝트’ 모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23년부터 참여했지만 매번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니었다. 지난달 장애영아원 아이들과 함께한 물놀이 봉사 날, 김씨는 아침 일찍 버스에 오르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도움은 못 되더라도 폐는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막상 아이들을 만나자 불안은 금세 사라졌다. 뜻밖의 순간은 봉사가 끝난 뒤 뒷정리를 하며 찾아왔다.
김씨는 30일 국민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장애를 기준으로 그들과 우리를 구분해 생각했던 제 모습을 발견했다”며 “저 역시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왔고 지금도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그 차이를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자연스럽게 회복했다. 매달 봉사를 매개로 만나는 또래들은 그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김씨는 “보는 사람이 없어도, 큰일이 아니어도 봉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누군가의 울타리를 함께 세우다
김씨 곁에는 함께 땀 흘린 청년 봉사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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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섬봉사단으로 활동하는 직장인 박소연(30)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저도 누군가의 울타리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친구 소개로 2025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엔 자립준비청년들이 아직 어려 누군가를 챙길 여력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1년여를 함께한 지금은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박씨는 “이미 누군가를 사랑하고 챙길 준비가 된 친구들이었다. 봉사에 책임감 있게 참여하고 기부로도 다른 사람을 돕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선한 도전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난해 6월 참여했던 쪽방촌 도배 봉사였다. 냉방도 환기도 잘 안 되는 좁은 방에 네 명이 들어가 도배를 시작했다. 도배 경험이 없던 박씨는 더위와 벌레 때문에 천장을 바를 즈음엔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함께한 자립준비청년들은 그런 박씨를 탓하지 않았다. 각자 맡은 부분을 묵묵히 책임지며 물건 하나하나의 모양에 맞춰 도배지를 잘라냈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박씨는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에서 제가 많이 배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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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받는 이들’로 두지 않기
나섬은 자립준비청년과 일반 청년들을 이어주고 있다. 2022년 9월 창립한 기관은 아동부터 노인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1379 프로젝트는 이듬해인 2023년 시작해 올해로 4년 차를 맞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자립준비청년 10여명과 나섬봉사단 청년 10여명이 매달 첫째 주 토요일 모여 봉사와 문화 활동을 함께한다. 매년 3월 심리전문가와 함께하는 관계 형성 프로그램을 시작해 총 10회 모임을 이어가며 12월 송년회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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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4개 회기 동안 76명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갔다.
프로젝트의 출발.은 사람이었다. 백상일 나섬 사무국장은 최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경제적·제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명 ‘일상친구(1379)’는 청년들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친구가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봉사를 중심에 둔 것은 자립준비청년을 단순히 도움을 받는 존재로만 두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다. 그 결과는 현장의 직원들도 체감한다. 서지우 나섬 사원은 “처음 만났을 때 많이 위축되고 소심한 모습이었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며 사회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씩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김다영 사원도 “청년들이 봉사를 통해 받았던 도움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나누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다.
‘혼자 서기’ 아닌 손 내밀 줄 아는 용기
활동이 끝난 뒤 “다음에도 와서 봉사할 수 있느냐”고 먼저 묻는 청년도 있었다. 백 사무국장은 “현장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자립은 ‘혼자 서는 것’과 다르다. 백 사무국장은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오히려 건강한 자립에 가깝다”고 역설했다.
나섬은 이 프로젝트가 더 많은 청년들에게 확산되기를 바란다. 백 사무국장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고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경험을 전하고 싶다”며 “나아가 청년들이 자신이 받은 관심과 나눔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하며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체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아니어도 봉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