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를 한입 베어 물었다가 눈물·콧물 쏙 뺀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젊은 층에서 인기 있는 매운 떡볶이를 먹다가 비슷한 일을 겪었을 수도 있다.
입안이 따갑고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느낌은 모두 같은 성분에서 비롯된다. 고추에 들어 있는 화학적 자극 물질인 캡사이신이다.
너무 매울 때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은 물이다. 하지만 물을 아무리 들이켜도 입안의 불이 좀처럼 꺼지지 않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유가 있다. 캡사이신은 물과 잘 섞이지 않는 소수성(hydrophobic) 분자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물과 기름의 관계와 비슷하다. 기름이 물에 잘 녹지 않듯 캡사이신도 물과 잘 섞이지 않아 물만으로 효과적으로 씻어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매운맛을 빨리 가라앉히려면 무엇을 먹거나 마셔야 할까.
2019년 매운맛을 가라앉히는 데 어떤 음료가 효과적인지 비교한 연구가 있다. 연구진은 무지방우유, 전지우유, 탄산수, 설탕이 든 과일향 음료인 쿨에이드, 무알코올 맥주, 탄산음료, 물 등 7가지 음료를 시험했다.
그 결과 물과 비교해 눈에 띄는 효과를 보인 것은 무지방 우유와 전지우유 그리고 쿨에이드였다.
물 대신 우유를 마셨을 때 화끈거리던 입안이 진정되는 이유는 뭘까.
호주 스윈번기술대학교의 화학자 대니얼 엘드리지 박사는 비영리 학술 매체 더컨버세이션 기고에서 우유의 지방을 한 가지 이유로 꼽았다. 캡사이신은 물보다 지방에 더 잘 녹기 때문에 우유 속 지방이 입안에서 캡사이신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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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방만으로 우유의 효과를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2019년 실험에서는 전지우유와 무지방우유가 매운맛을 줄이는 효과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지방 함량이 높은 전지우유가 특별히 더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다른 핵심은 우유 단백질 카제인(casein)이다.
캡사이신은 입안 。막의 감각신경에 있는 ‘TRPV1’이라는 수용체를 자극한다. 이 수용체는 원래 뜨거운 열이나 유해한 자극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캡사이신이 TRPV1을 활성화하면 실제로 입안이 데인 것은 아니지만 뇌는 뜨겁고 화끈거리는 통증으로 받아들인다.
카제인은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도록 돕는 유화제 역할을 하며 캡사이신과도 강한 친화성을 갖는다. 캡사인신 분자를 둘러싸고 포획해 입안에서 제거되는 것을 도 수 있다. 그만큼 TRPV1을 자극하는 캡사이신이 줄어들면서 화끈거림이 완화될 수 있다.
반면 아몬드 음료나 귀리 음료 같은 식물성 대체유에는 동물성 우유의 카제인이 들어 있지 않아 같은 원리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유가 없거나 마시는 데 거부감이 있다면 아이스크림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카제인뿐만 아니라 소수성인 지방도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단맛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당분이 들어 있다고 모든 음료가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2019년 연구에서는 약 10% 자당(포도당과 과당이 결합한 일반 설탕의 주성분)이 들어간 과일향 음료인 쿨에이드가 물보다 화끈거림을 더 많이 줄인 반면, 당이 든 탄산음료에서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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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진은 탄산이 입안에 추가적인 자극을 일으켜 당분의 매운맛 완화 효과를 상쇄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우유나 단 음료가 없다면 각설탕을 입에서 천천히 녹여 먹는 것도 화끈거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차가운 맥주는 어떨까.
매운맛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흔히 거론되며 얼핏 보면 과학적으로도 그럴듯하다. 캡사이신은 알코올에 잘 녹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반적인 맥주의 알코올 함량이 약 4~6%에 불과하다는 。이다. 맥주의 대부분은 물이고, 물은 친수성(물과 잘 섞이는 성질)이어서 캡사이신을 효과적으로 씻어내지 못한다. 소량의 알코올 덕분에 물보다 약간 나을 가능성이 있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론적으로는 알코올 농도가 훨씬 높아야 캡사이신을 녹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고도주 자체가 입안과 위장에 자극을 줄 수 있고 과도한 알코올 섭취에 따른 건강 위험도 있어 매운맛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권할 만하지 않다.
매운 음식을 먹고 입안의 화끈거림이 심하다면 물보다는 우유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아이스크림이나 당분이 든 음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맥주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물이 완전히 무용지물인 것은 아니다. 캡사이신을 잘 녹이지는 못하지만 물리적으로 입안에 남은 캡사이신 성분을 씻어낼 수 있고, 특히 차가운 물은 마시는 동안 일시적으로 화끈거림을 줄여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고 우유에 비해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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