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만큼이나 여러 이슈로 뜨거웠던 8월, 경향신문의 저널리즘은 어떤 성과를 거뒀을까. 경향신문 독자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2일 서울 정동 본사에서 정례회의를 했다. 이날 회의는 새로 독자위원장을 맡은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특임교수가 주재했다. 김용(한국교원대 교수), 김예희(다인세무회계사무소 대표회계사), 김희진(돌고래 출판사 대표), 오용석(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조윤희(법무법인 이채 변호사), 최정묵(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장), 허윤철(한국인터넷신문협회 사무총장) 위원이 각 담당분야를 대표해 의견을 냈다.
형소법 허。 보도 탁월…후속 기대
최정묵=으뜸 기사로 <형소법에 숨은 ‘피해자 입틀막’ 조항…언론제보 처벌받을 수 있어>(8월12일자)를 꼽겠다. 오는 10월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에 신설된 ‘수사기록 열람·등사(복사)’ 관련 처벌 규정이 피해자의 문제제기나 언론제보를 위축시킬 수 있음을 잘 정리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놓치고 지나갔을 수 있는 이슈를 기자가 날카롭게 포착했다. 후속보도를 기대한다.
조윤희=동의한다. 경찰이 수사를 독.할 경우 사건이 암장되면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지만, 피해자가 언론에 제보하면 된다고 정치인들이 공공연하게 얘기한 바 있다. 그런데 뜯어보니 피해자가 공론화했을 때 형사처벌 부담을 진다는 것 아닌가. 사건기록 열람 및 등사가 불허되는 경우에 대한 불복 절차도 형소법에 마련돼 있지 않다. 결국 사법경찰관이 판사와 같이 궁극적 처분을 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는 우려도 있다. <“수사 공백, 재판부가 메우나” 판사도 비상>(8월14일자) 기사는 결국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이 비용을 어디에서 치러야 할지 법원의 우려가 크다는 내용이다. 형사재판은 엄격한 증명에 의해 판결해야 한다. 증거 확보가 안 됐다면 무죄 선고해야 하는데 피해가 중대한 사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법원에서도 고심이 많다. 시행령 정비, 기관 설립 과정에서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앞으로 좋은 보도가 기다려진다.
최정묵=<‘샤이 정청래’ vs ‘대세 김민석’…호남권 권리당원 투표 시작>은 통계자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고전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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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언론조사기관의 ‘호남권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 167명을 대상으로 실시·발표한 당대표 지지도 조사’를 인용하면서 표본오차를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라고 적었다. 그런데 이 오차범위는 전체 모수 약 2000명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응답 결과가 먼저 설명되어야 오해를 피할 수 있다. 통계적으로 엄밀하게 볼 때, <이 대통령 국정 운영 ‘부정 평가’가 ‘긍정’ 처음 앞섰다>(8월6일자) 기사는 부정 평가가 48.7%로 긍정 평가 46.6%를 앞질렀다는 내용인데, 오차범위 안에 있다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심석태=통계의 엄밀성과 저널리즘적 수요 사이에 적정한 균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국정 지지율이 데드크로스인지 골든크로스인지 언론에서는 주요한 뉴스로 다룬다. 여론조사 결과를 자극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현실적으로는 말씀하신 만큼 엄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므로 고민이 필요하다.
조윤희=<‘삭제’만으론 막을 수 없었다…정부, 불법촬영물 유통망 뿌리 뽑는다>(8월21일)는 ‘N번방 사건’ 때부터 수년간 발표된 많은 정책 가운데 그나마 실효성을 보완한 ‘불법사이트 통합 대응 방안’ 확정을 전했다. 실효성 있게 집행되는지 후속보도를 관심 갖고 해주시길 당부드리고 싶다.
자료 인용 보도, 발신자 의도 따져봐야
김용=<전국 과학고 내년 신입생 역대 최대 선발…의대 쏠림 꺾이나>(8월17일) 온라인 기사는 한 사설 입시학원이 자료를 제공했다. 같은 기사는 지면에 <1858명, 내년 과학고 ‘역대 최대’ 선발>(8월18일자)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독자들은 ‘과학고가 선발인원을 늘렸으니 우리 아이도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사교육비 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과학고 2차 시험이다. 기사에는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학원의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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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지역의사제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전달했다고 본다. 이해관계가 있는 기관발 자료는 기사화에 앞서 여러 검토를 해야 한다. <‘피해 몰입’ 벗어나 ‘인권 교육’으로…위안부 수업이 달라졌다>(8월17일자)는 내용은 좋다. 그런데 ‘16일 교육계에 따르면’이라는 문구만 있고 기사 내 사례와 교사들을 어떻게 취재했는지 모호하다. 교육계는 무엇인지, 16일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인지 기사 작성 자체에 의문이 든다. <지방국립대 신입생 등록금 ‘한 푼도 안 낸다’…반수·자퇴 땐 장학금 환수>(8월29일자)는 보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제목에서 균형감이 아쉽다. 한 푼도 안 낸다는 표현은 ‘푼돈도 내지 않는 무임승차자’라는 부정적인 맥락을 전달할 수 있다. <교육감 공약이 학교선 ‘일 부담’으로…교사들 “새 정책에 업무 영향 검토를”>(8월20일자) 기사는 교사노조라고 하는 단체의 주장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공약을 이행하려는 것은 공무원에게는 업무 부담이겠지만 유권자들에게는 편익 증가일 수 있다. 조금 다른 관。에서 볼 수 있도록 열어둬야 하는데 지나치게 주최 단체의 입장만을 보도했다.
심석태=출처를 밝히기 어려운 기사들에서 ‘~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불가피하게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 따르면’이라고 뭉뚱그려서 적는 사례 등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육계’도 그 범위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학원발 기사를 무조건 써서는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기관에서 자료를 낼 때는 이익과 결부된 내용인 경우가 보통이다. 주의가 필요하다.
세제개편·연금, 결과보다 과정 다뤄야
김예희=첫 번째 주제는 세제개편이다. 세제개편안은 내년 1월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에 확정되는 것인데, 보도에서는 마치 ‘안’이 확정된 내용처럼 오인될 여지들이 발견된다. <지난해 종부세 대상 1주택자 82%는 세금 오히려 줄어>(8월13일자)는 세제안이 실제로 확정된다는 가정하에 납세자들의 세금 변화를 짚은 좋은 기사이지만, 단정적인 제목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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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 연구 결과는 1주택자가 100% 실거주하는 것을 가정했는데, 정확한 전망치를 내기 위해서는 실제의 실거주 비율에 바탕을 뒀어야 한다고 본다. <세제개편안 이후 하락폭 커지는 강남·서초 아파트…서울 전체는 소폭 상승>(8월21일자) 기사는 개편안 발표와 집값 하락을 인과관계처럼 다뤘는데 시기적으로도 불과 며칠 만의 가격 변동이 개편안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세제개편안이 유일한 원인인지 좀 더 엄밀히 할 필요가 있다. 추가로 제안하면, 세무사 업계에는 ‘양도세 포기한 세무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양도세가 지나치게 복잡하다. 소급적용에다 대출규제까지 첩첩산중이다. 세법에 대한 신뢰와 안정성을 지나치게 훼손하는 변화를 막는 제도적 장치는 없을까 하는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기획기사를 기대한다. 둘째는 국민연금 관련 보도다. <‘불장’에 홀려 리밸런싱 미룬 국민연금…수익도 시장 안정도 모두 놓쳤다>(8월12일자) 기사는 리밸런싱과 자산배분 원칙을 깊이 있게 설명한 좋은 기획이다. 다만 제목만 떼어놓고 보면 시장 안정이 국민연금의 주요 목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아쉽다. <국민연금 상반기 수익률 27.2%…국내 주식서 107% 수익률>(8월28일) 기사는 수익 냈다고 보도했는데 수익을 놓쳤다는 앞의 기사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국민연금 관련 보도는 결과가 아닌 의사결정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바닥 받치고 환율 방어? 완전히 틀렸다…목적은 국민 노후 보장 딱 하나뿐”>은 연기금 운용경력이 있는 금융권 인사 인터뷰다. 국민연금에 우리가 기대할 것이 무엇인지 문제의식을 짚어준 .이 좋았다.
오용석=<.선면: 세계의 지붕, 누가 무너뜨리나>(8월28일)는 네팔 대홍수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당일 국회에서 통과된 탄소중립기본법을 연결해 인상적이었다. “후발국으로서 지나치게 이렇게 앞서가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냐 하는 생각하고…”라는 국회의원 어록을 굵은 글씨로 편집해 낮은 문제의식을 부각한 .도 좋았다. 시민사회가 요구한 ‘오목형 감축’과 국회에서 채택한 ‘선형 감축’에 대한 추가 설명이 있었다면 이해가 더 쉬웠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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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메가’에 원전 19기 맞먹는 전력 더 필요”…발전원 논의 본격화할 듯>(8월21일자) 기사는 추가로 필요한 연중 최대 전력 규모인 26GW(기가와트)를 직관적으로 와닿는 숫자로 전달했다. 열흘 뒤 <‘3대 메가’ 사업 규모 불확실한데…발전 계획부터 세운 정부>(8월31일) 보도에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에 대한 기업들의 사업전망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도 잘 짚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데는 수치자료만큼이나 생활밀착형 사례 보도가 유용하다. <멈추면 굶고, 달리면 탈진…‘40도 폭염’ 배송 노동의 딜레마>(8월12일자)는 폭염에 쓰러지고도 일해야 한다며 119 구급대원의 이송마저 거부한 노동자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전력 남는데 아파트 정전, 이유 따로 있었다>(8월20일)는 폭염 상황에서 기존의 변압기를 비롯한 설비가 전력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를 다뤘다. <‘정비 필요 없어’ 전기차 늘자 사라지는 ‘동네 카센터’…제주 차 정비업계 판도 변화>(8월31일)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노동자 보호에 대한 최근의 논의와 연결시켜볼 수 있는 보도였다.
지면 ‘맛’을 살린 1면 편집 신선
김희진=예술인 지원제도와 관련한 <예술이 노동이 되기 위해> 2회 분량의 전면기획 보도는 최근 문화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예술인 복지 문제를 깊이와 균형감 있게 다뤘다. <“예술 하려면 집에 돈 많아야 하나요?”…프랑스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8월13일자)은 프랑스 현지 취재를 통해 해외에서는 예술인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지를 잘 정리했다. <“단 일주일 일하더라도 정식 계약서 작성…몸이 자산인 예술인들 위한 안전망”>은 현지에서 예술인을 고용하는 예술단 대표 인터뷰를 통해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제시했다. <가장 힘들 때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예술가들…‘증명’ 대신 ‘등록’ 목소리>(8월20일자)는 예술활동증명 심의 절차를 그래픽을 포함해 잘 정리하면서 예술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현실을 담아냈다.
허윤철=재치 있는 1면 편집들이 눈에 띈 8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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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기록한 날 ‘42.5 대핫민국’ 붉은색 활자로 표현한 제목(8월3일자)이 재밌었다. 역대 가장 더운 입추 때 가을 추(秋)의 불 화(火)를 붉은 글씨로 표시한 8일자도 흥미로웠다. 정성 가득한 재기발랄한 작업물이 담긴 종이신문을 아침에 받아들면서 기분이 좋았다. 저는 인터넷신문협회 소속이지만, 독자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종이신문의 장.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이 같은 편집이 온라인에서는 잘 구현되지 않아 안타깝다.
김용=칭찬 릴레이 시간인 듯하다(웃음). 아동학대와 교부금을 다룬 뉴스 깊이보기 연재 2건은 우수한 온라인 기사였다. 현안에 대한 다양한 관.과 경과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단편적인 기사만 보면 맥락 잡기 어려운데, 이 코너는 현안 이해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획이다.
심석태=기자들이 힘낼 수 있도록 칭찬할 보도를 찾아 제대로 칭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저는 오늘 첫 회의를 준비하면서 경향신문 사설들을 주의 깊게 읽어봤다. 요즘은 오피니언 지면의 열독률도 높고 영향도 크다. 매우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을 어떤 관.에서 봐야 할까 고민될 때 신문의 오피니언면은 시야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너무 단박에 결론을 내면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용산공원 논란과 대법관 임명 관련 사설 2건을 보면, 쟁.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사설에서는 방향을 딱 잡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경향에서 어떤 내부 논의를 거쳐서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궁금했다. 큰 지면을 하나 털어서라도 깊이 다뤘어야 할 정도의 사안임에도, 대법관 임명은 대통령이 알아서 하는 것인데 부분적인 권한을 갖는 대법원장이 개입한다는 기조였다. 많은 제도적 논의를 생략한 채 결론으로 달려가버린 느낌이었다. 신문의 무게가 영향받지 않을지 우려된다.
김희진=덧붙여서,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가 지난 7월 경향신문 주최로 열렸는데 축구협회의 운영 실수로 18강 토너먼트 대진을 재추첨하고 이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한 팀이 몰수패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경향에서는 이 사안을 언급조차 하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최민영=오늘 위원들의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해 지면에 반영될 수 있도록 편집국 구성원들과 함께 노력하겠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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