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용도 코딩으로 완성되는가?
2019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극장. 영국 현대무용의 거장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의 무용수들이 낯선 동작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무대 옆 대형 화면이 실시간으로 새로운 동작을 제안하고 있었다. 화면 뒤에는 맥그리거가 지난 25년간 축적한 100시간 분량의 안무 영상, 약 50만 개의 신체 움직임을 학습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맥그리거가 이 작업에 붙인 이름이다. 그는 이를 "나 자신과의 대화"라 불렀다. 알고리즘이 화면에 띄운 움직임은 결국 그가 지난 25년간 고뇌하며 새겨 넣은 창작의 궤적이다. 과거의 자신이 축적한 몸의 기억이 인공지능의 연산을 거쳐 현재의 자신에게 춤으로 말을 건넨 셈이다.
2025년 10월 영국 런던 서머싯 하우스 전시에서 연구팀은 이 알고리즘을 '아이소마(AISOMA)'라는 공개 플랫폼으로 확장해 선보였다. 영상에서 추출한 신체 데이터만 약 400만 개에 달했다. 다만, 개발진의 시선은 냉정했다. 창작의 최종 판단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며, 안무의 미학적 성패까지 스스로 판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사진 1] 몸이 무수한 입자로 흩어지는 이미지에 'AI 시대의 안무'라는 부제가 붙었다. 2025년 10월 개막한 서머싯 하우스 전시 〈웨인 맥그리거: 인피니트 보디스〉의 공식 포스터.
무용은 태생적으로 다른 예술과 결이 다르다. 그림은 캔버스에 남고 시는 활자로 박히지만, 춤은 오직 살아 숨 쉬는 몸 안에서만 머문다. 음악이 멈추고 조명이 꺼지면 춤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그 소멸의 운명을 붙잡으려고 무용가들은 오랜 세월 춤을 기호화하려 분투해 왔다.
알라딘꽁머니
1928년 루돌프 라반(Rudolf Laban)이 펴낸 무보집 『슈리프트탄츠(Schrifttanz)』가 대표적이다. 신체의 움직임을 오선지 악보처럼 기호로 기록한 이 표기법은 훗날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이라 불렸다. 움직임의 방향과 높이, 지속 시간을 좌표로 옮겨 찰나의 춤을 지면에 박제하려는 시도였다. 신체를 코드로 환원하려는 욕망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시작된 것이다.
[사진 2] 라반의 무보(舞譜)에서 인간의 몸은 세로 칸으로 잘게 분절된다. 팔다리의 궤적과 무게 이동은 저마다 칸을 얻었지만, 정작 생명의 근원인 '호흡'이 들어갈 칸은 어디에도 없다.
컴퓨터가 그 바통을 이어받은 시.도 생각보다 빨랐다. 1989년, 일흔을 넘긴 현대무용의 전설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은 '라이프폼스(Life Forms)'라는 3D 인체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앞에 앉았다. 화면 속 디지털 마네킹의 관절을 일일이 조작하며 동작을 설계해 나갔다.
화면 속 모델은 실제 인간의 뼈마디로는 버텨낼 수 없는 비현실적인 각도로 꺾이곤 했다. 스크린 위의 불가능한 형태를 살아 있는 무용수의 몸으로 번역해내는 작업은 노년의 거장에게 벅찬 도전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 『트래커스(Trackers)』는 1991년 3월 뉴욕 무대에 올랐다. 컴퓨터로 안무 된 역사상 최초의 공연이었다.
[사진 3]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1991년 뉴욕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안무한 기념비적 작품 〈트래커스〉를 초연했다.
한국 무용계 역시 이 거대한 기술적 파고에서 빗겨서 있지 않다.
모바일 인터넷야마토릴게임
국립현대무용단은 일찍이 기술과 무용의 융합을 모색해 왔고, 2025년 10월에는 생성형 AI를 창작 과정에 전면 도입한 쇼케이스 〈Ai-iA〉를 무대에 올렸다.
안무가 황수현의 디렉팅 아래 네 명의 무용수가 각자 생성형 AI와 짝을 이뤄 작업했다. 안무가의 지시를 몸으로 구현하는 무용수와, 인간의 프롬프트 입력을 기다려 텍스트를 뱉어내는 언어모델은 '명령을 받아 작동한다'는 .에서 기묘하게 닮았다. 무용수와 기계 사이의 수동성을 탐구한 〈수동의 자리〉, AI의 텍스트 응답을 역추적해 몸짓으로 재구성한 〈디스토피아 박스〉, 안무를 가상현실(VR) 시뮬레이션으로 전환한 〈코레오 엔진〉 등이 나란히 펼쳐졌다.
현장에서 무용수들이 털어놓은 후기는 기술과 인간의 긴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 무용수는 AI와 함께 작성한 대본을 두고 "내 말도, 기계의 말도 아닌 붕 뜬 상태"라고 토로했고, 또 다른 무용수는 "AI와 협업할수록 내 안의 사고가 특정 패턴에 갇히는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 솔직한 고백은 AI 창작이 마주한 근본적인 한계를 찌른다. 기존 아카이브를 학습한 알고리즘은 필연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몸짓의 통계적 재조합'에 머문다. 이는 익숙하고 안전하지만, 창작자에게는 편안함이라는 이름의 함정이 된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진 뒤 인간이 도로의 지형을 기억하지 못하듯, 안무가가 직관과 신체적 탐색을 인공지능의 연산에 맡기는 순간 몸의 감각을 벼리는 야생의 능력은 서서히 마모된다. 한번 무뎌진 신체 지각을 되살리는 데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춤에는 기계의 연산이 끝내 가닿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라반의 기호도, 커닝햄의 가상 모델도, 맥그리거의 400만 개 데이터도 기록 가능한 신체의 외형만 포착했을 뿐이다
온라인 손오공 게임
. 동일한 안무를 주고 같은 동작을 지시해도 무용수마다 전혀 다른 아우라를 뿜어내는 이유는, 결코 기호화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여백 때문이다.
한국 전통춤의 정수라 불리는 '정중동(靜中動)'이 이를 웅변한다. 겉으로는 고요히 멈춰 선 찰나에도 살갗 아래에서는 미세한 근육의 떨림과 긴장이 파도처럼 이어진다. 그 보이지 않는 내면의 흐름을 우리는 '호흡'이라 부른다. 스승의 숨결을 곁에서 지켜보며 온몸으로 체득하는 도제식 전승의 시간, 한 인간이 살아온 굴곡진 생애가 신체에 새겨 넣은 고유한 호흡의 결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데이터화할 수 없다.
[사진 4] 흰 수건이 허공에 멎는 찰나의 순간,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 완성된다. 400만 개의 움직임 데이터를 그러모아도 포착할 수 없는 것은 동작과 동작 사이를 채우는 창작자의 고유한 '호흡'이다.
2026년 6월, 국내 무대에는 이처럼 '기록될 수 없는 몸'에 집중한 작업들이 잇달아 올랐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안무가 김보라의 〈내가 물에서 본 것〉을 통해 몸을 완결된 부호가 아니라 타인과 환경, 음향과 부딪치며 끊임없이 일렁이는 접촉의 감각으로 풀어냈다.
같은 달 대학로에서 선보인 안무가 박호빈의 〈오지랖 OZ_Rap 2.0〉은 또 다른 해답을 내놓았다. 효율과 최적화의 정반대 편에 서서, 과장되고 엉키며 불필요하게 넘쳐흐르는 원초적 몸짓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AI가 학습하기 가장 까다로운 '정돈되지 않은 생체적 충동'을 무대 위에 던져 기계의 매끄러움에 균열을 냈다.
어쩌면 춤은 무대 위에서 피어났다 흔적 없이 사라지기에 그토록 눈부신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신체 좌표가 데이터로 박제되고 언제든 손쉽게 재생되는 시대, 지워지지 않는 춤 앞에서 우리는 과연 찰나의 숨결이 건네던 그 묵직한 전율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
안무가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