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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와의 인터뷰에서 ‘말과 글 비서관’이라는 직책 이름에 대해 들었다.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에서 대변인·제1부속실장·연설기획비서관을 역임한 윤태영 작가가 2016년 〈대통령의 말하기〉를 출간한 뒤 인터뷰였다. 대통령의 말을 기록하는 일을 전담하게 되면서 연설기획비서관 직책을 따로 만들었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그 직책명을 ‘말과 글 비서관’이라고 짓자고 제안했다. 윤태영 작가가 반대해 연설기획비서관으로 정해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연설기획비서관보다 ‘말과 글 비서관’이라는 표현이 사물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사람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전달되는 용어였다. 나처럼 괜히 멋있게 보이려 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분이었다’고 설명할 때 그 당시 일을 예로 들곤 한다.”
의 저자 윤태영 작가. ⓒ김흥구"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24/sisain/17468ouaj.jpg" data-org-width="1280" dmcf-mid="FAQPWn5TRA"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24/sisain/17468ouaj.jpg" width="658">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만난 <노무현 평전>의 저자 윤태영 작가. ⓒ김흥구
윤태영 작가는 ‘대통령의 필사’였다. 1988년, 국회 보좌관으로 일할 때 ‘마흔둘의 초선의원 노무현’을 만났다. 1992년 정치권을 떠나 출판사 편집자로 잠시 일했다. 소설 읽기를 좋아했고, ‘주말이면 내 글(단편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이직했다. 그 출판사에서 ‘청문회 스타’ 노무현의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를 내게 됐다. 편집자 윤태영이 구술을 받고 초고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다. 정치인 노무현에게 ‘글을 쓰는 사람 윤태영’으로 각인된 것이 그때쯤이었으리라고 그는 추측한다. 그 뒤로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의 마지막 집필팀 활동까지 20여 년 동안 인연을 이었다.
최근 윤태영 작가가 〈노무현 평전〉을 펴냈다. 928쪽 분량으로 어린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 시간까지를 연대기순으로 따라간다. 노무현재단의 첫 공식 평전이자 노무현 탄생 80주년 기념작으로 출간됐다. 대통령의 구술·연설문, 지은이가 청와대 참모로 일하며 기록해둔 600여 권의 포켓수첩과 1000여 개의 파일, 참여정부 참모들의 메모·녹취록·비망록 등 160여 개 비공개 자료, 봉하마을에서의 영상 365편 등을 바탕으로 노무현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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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상부터 집필까지 10년이 걸렸다.
윤태영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이 친구가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체력이 허락하는 한 모든 자리에 배석해도 좋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기록해둘 게 있으면 일부러 불러서 ‘지금 이 시。에 내 생각은 이렇다’고 들려주곤 했다. 퇴임이 가까울 무렵, 비서관 윤태영이 ‘그동안의 기록을 토대로 글을 쓰겠다’고 보고했다. ‘어떤 형식으로 어떤 글을 쓰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바로 답을 주었다. “고민할 것 없네. 자네가 본 대로 들은 대로만 쓰게. 과장할 것도 없고 일부러 빼놓을 것도 없네.” 정작 작가 자신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라고 말하지만 다들 윤태영 작가가 〈노무현 평전〉을 쓸 적임자라고 봤다. 9월9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노무현 평전〉을 앞에 두고 윤태영 작가를 만났다(기사 중 직함은 작가의 말 그대로 표기했다).
윤태영 작가는 1988년 ‘마흔둘의 초선의원 노무현’을 만난 이후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의 마지막 집필팀 활동까지 20여 년 동안 인연을 이었다. ⓒ김흥구
2016년부터 이 책을 구상했다는데.
‘노무현 평전’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당시 노무현재단에서도 평전을 써달라고 요청해 작업을 시작했다.
왜 노무현 평전을 쓰고 싶었나?
일단 자료도 많고, 근처에 있었으니까. ‘마음만 먹고 쓰면 잘 쓰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오산이었다. ‘평전’이라는 무게에 많이 짓눌렸다. 다른 평전들을 보니 단순한 일대기가 아니라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대해 일종의 철학을 갖고 설명하더라. 5년가량 지나고 나니 저자의 역량이 굉장히 필요한 작업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글 쓰는 게 힘들어졌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비망록이나 연대기 형식으로 쓰는 선에서 타협적으로 썼다. 지난해 9·10월쯤 얼개가 완성돼 ‘중간 원고’라고 재단과 출판사에 보냈다. 돌아가신 지 20년 되는 2029년 출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고를 본 재단 측이 2026년 탄생 80주년에 맞추자고 했다. 2년가량 원고를 더 써도 내가 느낀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러자고 했다. 약간 홀가분한 마음도 들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책 출간 이후에 ‘표정이 홀가분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마음의 부담은 덜었나’ 싶은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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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일할 때 쓴 포켓수첩 600여 권을 다 보관하고 있었나?
청와대 전에 기록한 수첩도 다 갖고 있다. 임기 후반부에 연설기획비서관 할 때는 대통령 옆에서 타이핑을 했다. 글을 쓰려 했을 때, 수첩을 디지털로 변환했다. 노무현재단에서도 그 디지털 자료를 요청해 모두 ‘납품’했다. 2011년부터 2년 동안 비망록 형식으로 참여정부 때 일을 3000장가량 써놓은 게 있었다. 임기 중의 일을 ‘소프트하게’, 읽기 편하게 써두었다. 까먹기 전에 정리해두자는 마음으로 썼다. 책으로 낼까 말까 하다가 안 냈다. 그때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의 워딩을 세상에 내놓는 걸 주저하게 되더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다룬) 〈기록〉(2014년)과 〈바보, 산을 옮기다〉(2015년)에 부분적으로 원고를 사용했다. 그때 써둔 원고가 있어서 〈노무현 평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참여정부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윤태영 당시 대변인(오른쪽에서 두 번째). ⓒ노무현재단 제공
지금 책의 구성은 처음 계획대로 나왔나?
처음에는 어린 시절을 빼려고 했다. 고향 봉하에 가서 취재하고 관련된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게 부담스러웠다. 또 어린 시절을 쓰다가 영웅담으로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어린 시절을 빼면 평전이 되냐’ 해서 넣었다. 재임 중에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구술한 자료가 있었다. 대통령 이전 정치인 시절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에 대통령께서 손철주 학고재 주간에게 구술할 때 옆에서 기록한 자료가 있어 그걸 토대로 삼았다. 재임 중 이야기는 비망록 형태로 써놓은 원고를 활용했는데,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에피소드를 넣자니 사건이 부각되지 않더라. 3~4개월 안에 마무리된 사건이면 상관없는데, 꽤 오래 관통한 일들은 3월에 나오다가 7월에 나오다가 또 한참 지나가다 나오는 식이라 잘 엮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슈별로 정리하고, 자잘한 일화들은 과감히 뺐다. 리더십 스타일이나 말과 글은 따로 떼어내 소화했다.
어느 대목이 쓰기 어려웠나?
재임 기간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정책이 어렵고, 민감하기도 해서. 대통령님 말씀 위주로 기록했지만 제가 정책실장급의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니어서, 정책 이야기가 힘들었다. 정무 파트는 다른 분야에 비해 쉬웠고, 경제 파트가 제일 어려웠다. 단어 하나하나 맞는 용어인지 확인해야 했다. 또 대립되는 지.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이정우 정책실장이 쓴 책도 보고, 김현종 본부장이 쓴 책도 읽어 비교해봤다. 두 입장이 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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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 평전평가위원회가 초고를 먼저 읽었다고?
노무현재단에서 참여정부 출신 비서실장, 홍보수석 등을 소집해 구성했다. 그분들이 읽고, 저도 참여정부에서 일한 분들에게 보여드렸다. 그때는 좀 거친 원고였는데, ‘인물 편’이 따로 있었다. 문재인, 이해찬, 한명숙, 정동영, 김근태, 유시민 등 중요 인물 이야기를 넣었더니, 1000쪽이 훨씬 넘었다. 대통령 동선을 따라서 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인물 편 원고는 뺐다. (퇴임을 1년 앞둔 2007년 초에 정부 부처의 기자실을 개편하려 했던)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경우는 빼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대로 두었다. 평가위원들이 보기에 그 방안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소란도 많았고,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원.으로 돌아갔으니 빼도 무방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것이어서 ‘그래도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책에 실었다.
평전을 읽으며 감정이 배제된 문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기록〉과 〈바보, 산을 옮기다〉에 대해서도 그런 평을 한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 담담하게 썼다고. 평전을 쓴다고 하니 유시민 작가가 ‘좀 더 떨어져서 써야겠네’라고 말한 적 있다. 떨어져서 써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걸까? 나에게 계속 맴돌던 의문이었다. 문체는 담담한데 피사체에 대한 애정은 간직한 문장이 나오는 것 아닌가. 나로서는 담담하게 썼다고 생각하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정한 문장에 긴 글이 잘 읽힌다.
예전에 학생운동하던 시절에 글을 쓸 때는 문학청년이어서, 다른 글 흉내 내느라 수사가 굉장히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글이 바뀌었다. 노 대통령님이 수사가 많은 글을 싫어했다. 과장하지 말고, 간단하게 쓰라고. 또 ‘자네 생각을 왜 써? 내 생각을 써야지’ 했다. ‘자네(가 쓰는) 형용사’도 쓰지 말고. 저는 만연체에 수사가 늘어진 문장을 썼는데, 대통령님 관련 글을 쓸 때마다 가급적 문장을 짧고 압축적으로 쓰자고 연습을 많이 했다.
인터뷰에 참고하려고 2023년 출간한 〈어제를 버리는 중입니다〉를 읽었는데, ‘한 줄에 한 문장’ 단문으로 썼더라.
짧게 써도 충분히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써보자고 도전한 수필이다. 문재인 대통령 연설문을 정리할 때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썼는데, 그때 짧은 한 문장이 갖는 힘이 굉장하다고 느꼈다. 그 생각에 꽂혀서 수필을 썼는데, 이제는 문장을 길게 쓸 힘이 없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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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득권을 버리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흥구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2003년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할 때다. 호주 총리를 상대로 한국의 자동차를 좀 더 사달라고 호소해야 할 상황이었다는데,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고. “호주에서는 아주 품질이 좋은 철광석도 생산됩니다. 우리는 그 철광석을 수입해서 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철을 가지고 아주 단단한 자동차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자동차를 생산해놓고 보니··· 자동차들이 자신의 고향인 호주로 가고 싶어 합니다.” 그 말에 호주 총리의 얼굴에 웃음기가 피어났다고, 그런 말들이 깊은 연구와 탐구에서 나왔다고 썼다.
제가 배석해 현장에서 들었을 때 그 말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진짜 순발력이 좋으시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런 회담을 할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그 사람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까 계속 연구를 하시더라. 정말로 깊이 연구해 나온 말이구나 싶었다.
말과 글에 대한 관심이 컸던 대통령과 오래 일을 같이했다. ‘노무현의 말과 글을 정리하는 역할은 일정한 스트레스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썼는데.
홍보물을 보면, 깨알 같은 디테일에 대해 굉장히 잔소리 많이 하시는 편이니까(웃음). 어떤 분이 ‘이 책을 대통령님에게 갖다드리면 어떨 것 같냐’고 묻더라. 한 자 한 자 같이 뜯어고치자고 하셨을 거 같다. 제가 보기에는 100%다(웃음).
말·글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는데, 역설적으로 재임기에 말과 어투 때문에 설화가 많았다. ‘자신의 말, 어투 때문에 생기는 마찰에 대해서 항상 강하고 당당하게 반론을 펴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 움츠러드는 구석이 있었다’라고 썼다.
참모로서는 답답한 마음에 ‘가급적 말을 안 하시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상처가 되고,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많이 주었으니까. 처음에는 그런 말을 쓰는 게 서민 대통령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신 측면이 있다. 그런데 여전히 대다수는 ‘대통령은 말에 관한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그 벽을 넘지 못한 듯하다. 임기 말로 갈수록 말 때문에 지지도가 떨어진 것에 대해 굉장히 후회스럽다고 얘기하시곤 했다. 그런 말이나 말투가 최소한 언론 기사의 제목으로 뽑힐 거라는 생각은 안 하셨던 거 같다.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서 손녀와 자전거를 타는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재단 제공
〈노무현 평전〉을 젊은 세대가 많이 읽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젊은 세대가 읽고 노무현에 대해 자세히 알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다. 그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배경 설명을 많이 해 책이 더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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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임 중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이슈가 꽤 많다. 파병, 부동산, 개헌, 균형발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현재까지 진행되는 문제가 그때는 어떤 이유로 제기되었는지 견주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른 인터뷰에서 ‘초선의원 노무현’을 다루는 영화 작업을 한다고 했다.
〈바보, 산을 옮기다〉를 쓰면서 텍스트로 노무현을 알게 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고 느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소프트한 방식으로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게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초선의원’을 다룬 영화 작업을 돕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가 대본을 거의 완성했고, 영화감독을 찾는 중이다. 〈여보, 나 좀 도와줘〉가 바탕이 된 시나리오라 제가 원작을 제공한 셈이다. 자문할 일도 좀 있고. 앞으로 책을 쓰는 것보다 노무현의 인간적 측면이나 철학을 영화에 녹여내는 걸 옆에서 돕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2019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선출직 공직에 대해 닫아두지 않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7년이 지났는데, 이제 닫은 것인가?
그때 바로 닫았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첫 총선이고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정부인데,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가만히 있는 게 당신만을 위한 거 아니냐’ 그런 얘기들이 꽤 있었다. 고민을 약간 했는데, 생각해봐도 저는 아니더라. 잘할 것 같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 할 때도 많이 느꼈다. 저는 대변인 하는 게 힘들었다. 말 한마디 하고도 잘한 것인가, 전달이 잘되었나, 내 발언이 대통령님에게 누를 끼치는 거 아닌가, 이런 고민을 했다. 정치하려면 대범하고 틀도 크고 해야 하는데.
‘개인 윤태영’에게 노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정말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을 안 만났다면 제가 이 정도까지 왔을까.
윤태영이 본 노무현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도전하는 사람. 기득권이 된 것을 버리고, 새로운 일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인생. 돈 잘 버는 변호사였다가 포기하고 인권변호사가 됐고, 국회의원이 되고서 3당 합당 때 따라갔으면 더 편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 낙선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측근 비리가 나오니까 재신임을 묻고 ‘대통령 안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큰 ‘숙제’를 마쳤는데, 다음 계획은?
대통령의 책이니 써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썼다. 그다음은, 생각 안 했는데··· 일단 영화 작업을 돕고. 능력 여부를 떠나 영화를 보면 ‘저 장면 참 감동적인데,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지’ 하는 마음이 든다. 나도 그렇게 창의적인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그것이 글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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