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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아 나선 진주의 여정은 혈연을 넘어 식민과 전쟁, 가난을 통과한 여성들의 ‘기억의 계보’로 확장된다. 김명집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2/weeklykh/17894rxsv.jpg" data-org-width="1200" dmcf-mid="BtcTvzEoW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2/weeklykh/17894rxsv.jpg" width="658">
연극 <푸른 。의 진주>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아 나선 진주의 여정은 혈연을 넘어 식민과 전쟁, 가난을 통과한 여성들의 ‘기억의 계보’로 확장된다. 김명집 제공
옥쇄(玉碎)는 기개(氣槪)로 포장된 처절함이다. 명예를 지키며 깨끗이 죽는다는 의미지만 현실의 옥쇄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해직노동자들의 77일간 공장.거 파업, 그중 인화 물질이 가득한 도장공장을 마지막 보루로 삼은 ‘옥쇄파업’으로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이를 모티브로 파업 이후를 다룬 영화 <가능한 사랑>(이창동 감독, 이창동·오정미 각본)에서 호석(설경구 분)은 매사에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신체적 훼손을 경험했으나 ‘망가진 사람’으로 전시되지 않는다. 별장에서 예지(조여정 분)와 인터뷰하며 당시 폭력을 처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눌러두었던 고통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새벽 바닷가 수풀 속에서 막대기로 허공을 난타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시퀀스는 거대한 응어리가 흩어지는 또 다른 옥쇄로 와닿는다.
2026년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 수상 직후 개봉한 <가능한 사랑>은 옥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파업은 끝났지만 몸에서는 끝나지 않은, 심신이 훼손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유독 9월의 공연장에 많이 등장한 것도 이 영화가 다시 환기한 시대의 감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쟁의는 시대 반영하는 거울
산업재해와 파업, 여러 형태의 노동쟁의는 동시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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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문화회관의 기획 연극 <스미레 미용실>(정의신 작·연출, 이태섭 무대, 김태진 조명, 김철환 작곡)은 1960년대 일본 규슈 탄광촌 아리랑고개의 탄광 폭발사고에서 시작된다. 살아남은 광부들에게 두통과 경련, 기억상실과 인지장애가 남으면서 쟁의는 장기화한다.
재일한국인 1세대 아버지가 물려준 이발소를 운영하는 수미(최지연 분)는 .。 변해가는 남편 나루히로(서동갑 분)를 돌본다. 동생 하루미(송영주 분)의 남편 쇼헤이(김문식 분) 역시 빠르게 신체가 굳어간다. 큰언니 하츠미(전국향 분)와 친정아버지 홍길(전무송 분)은 이들의 고통을 묵도할 수밖에 없다. 희생자 지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의미한 미봉책뿐이다. 치료비가 생활비를 잠식하며, 가족의 삶을 갈아넣으며 간신히 버티는 일상이다.
훼손된 신체는 두산아트센터 연극 <갱更>(본주 작·연출, 박다솔 드라마터그, 남경식 무대, 신동선 조명, 카입 사운드)에서 더 강렬하게 등장한다. 80대 천태(조하석 분)는 도축장에서 일하다 왼팔을 잃고 산재소송 끝에 거액의 보상금을 받는다. 장애인의 딸로 사는 고통을 안겨주지 않으려고 버린 딸 금옥(김은희 분)과 해후하지만 문제는 첩첩산중이다. 금옥은 인지증 초기인 아버지가 딸 피영(공상아 분)의 조리실에서 일하도록 중재한다. 인지증이 악화해 믹서에 손을 갈 뻔한 천태의 사고로 직원들이 사표를 낸다. 피영은 원망했던 외조부의 보상금을 써야 할 처지에 이르고, 죄책감이 들어서인지 천태의 왼팔을 요리해 삼키는 망상에 빠진다. 현실에서 피영에게 쏟아지는 것은 돌봐야 할 외조부다. 고용 불안과 격무로 조기 갱년기를 맞은 피영은 파업 중인 자신의 자궁을 달래며 외조부의 보상금을 삼킨다. 외조부의 늙은 몸과 돌봄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삼대에 이은 신체 훼손과 노동의 역사는 국립극단 창작 희곡 공모 대상작 <역행기>(김주희 작, 신재훈 연출, 박동우 무대, 김효민 조명, 유미양 의상, 장경숙 분장, 남혜연 소품, 김희경 영상, 이승호 음악·음향, 이호영 라반 움직임)에도 등장한다.
철거를 앞둔 집에서 8년째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인안나(박수진 분)는 죽음을 결심하던 중 집 아래로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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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을 알 수 없는 지하에서 언니 핑크(박은호 분), 어머니 에레쉬(김시영 분), 외할머니 주머니(박옥출 분)의 시간을 기괴한 반복 움직임과 함께 접한다. 주머니의 어머니, 즉 인안나의 외증조모는 일제강.기 성폭력의 위험을 피해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광복 후 주머니는 양장 기술을 배워 좁은 작업장에서 무릎을 꿇은 채 막차 직전까지 옷을 만든다. 딸 에레쉬는 임금노동자가 됐지만 고장 난 절단기에 팔을 잃는다. <갱>에서 천태의 잘린 팔이 보상금으로 남아 후대의 돌봄으로 이어졌다면, <역행기>에서 주머니는 바늘과 실로 에레쉬의 잘린 팔에 날개를 달고 그 날개는 인안나를 다시 지상으로 올려보낸다. 선대 여성의 노동 도구가 후대의 탈출을 돕는 도구로 전용된다.
은 탄광촌 이발소 일상과 일산화탄소(CO) 중독 피해자들의 투쟁을 한 무대에 담아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2/weeklykh/19293hpjn.jpg" data-org-width="1200" dmcf-mid="bVrHG9sAW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2/weeklykh/19293hpjn.jpg" width="658">
연극 <스미레 미용실>은 탄광촌 이발소 일상과 일산화탄소(CO) 중독 피해자들의 투쟁을 한 무대에 담아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집단 반의 30주년 기념 연극 <푸른 。의 진주>(이가을 작, 박장렬 연출, 배선애 드라마터그, 박진규 음악, 김종석 무대, 김철희 조명)는 모녀의 계보를 혈연 밖으로 넓힌다. 20년째 계약직으로 일하는 47세 오진주(김지은 분)는 실종된 엄마를 찾아 1979년으로, 다시 해방 전후로 역행한다. 공창제 폐지 뒤 생존의 벼랑으로 밀려난 성노동 여성들, 한국전쟁 이후 기지촌 여성들 사이에 진주의 엄마도 있다. 살기 위해 그 길에 들어섰고 딸에게 집 한칸이라도 물려주기 위해 노년에도 ‘박카스 할머니’가 된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았던 여성 노동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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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세월을 견딘 이들이 팔뚝에 공유한 푸른 。은 서로를 향한 응원이자 위로다. 진주는 누대에 이른 연대의 염원인 푸른.(정성호 분)의 안내를 통해 시대를 역행하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 <역행기>와 <푸른 .의 진주>에서 후대로 이어지는 것은 혈연만이 아니다. 이 땅에서 노동했고, 식민과 전쟁, 가난과 성적 낙인을 견뎌 낸 여성들은 후대 여성들의 역사적 선대가 된다.
비슷한 시기에 상연된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윤혜정 예술감독·안무, 기무간·최태헌·박정훈 조안무, 이하느리 음악, 장철수 미디어아트, 김율희 소리)는 그래서 더욱 유의미하다. ‘무감서기’란 굿을 의뢰한 사람이 무녀의 옷을 입고 직접 춤추며 자신과 주변의 복을 비는 행위다. 오프닝 영상에서 빌딩 숲을 떠돌던 무녀는 공연장 객석 뒤에서 관모와 오방색 옷을 겹겹이 걸친 조상신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치유는 다시 먹고 걷고 일하는 것
아우성인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옷을 한겹씩 벗어 덮어주면서 여러 색깔의 고통과 난국이 칼군무로 펼쳐진다. 방울과 부채를 활용한 댄스가 살풀이를 거쳐 위무의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마지막은 무당의 옷을 입은 이들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즉흥 퍼포먼스, 진짜 ‘무감서기’다.
필자는 마지막 장면을 관객들과 온전히 감각하고 싶어 공연을 거듭 찾았다. 수미와 피영, 인안나와 진주를 불러내 위무하는 제례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탄광의 산업재해와 도축장의 절단 사고, 여성 노동자의 생존과 성착취, 해고노동자가 겪은 국가폭력을 하나의 ‘상처’로 묶을 수는 없다. 타인의 옷을 잠시 걸칠 수는 있어도 그 타인이 될 수는 없다. 한바탕 춤춘 뒤 무복을 벗는 몸짓은 타인의 희로애락을 대신 짊어지는 일이 아니다. 각기 다른 폭력이 남긴 몸과 시간을 불러내고, 그것이 더는 개인과 가족에게만 떠넘겨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치유와 비움으로 승화하는, 고통의 씻김굿 같은 과정이다.
<가능한 사랑>의 엔딩은 한결 홀가분해진 호석과 아내 미옥(전도연 분)이 달무리를 바라보며 소주 한병을 나눠마시는 장면이다. <무감서기> 역시 굿이 끝나면 오방색 옷을 벗고 자기 몸으로 돌아간다. 커튼콜 뒤 펼쳐지는 에필로그 영상 속 여성은 정갈한 아침을 만들어 먹고 빌딩 숲, 대중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큰 굿의 끝은 다시 일상의 노동 현장이다. 현실 속 치유는 결손을 지닌 채 다시 먹고 걷고 일하는 것이다. 공연은 다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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