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황금빛 들판마다 가을이 출렁였다. 지난 9월 29일, 서산의 한 목장카페 야외 정원에서는 다섯 사람의 특별한 촬영이 열렸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봉사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참여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를 손질하고 메이크업을 했다. 촬영할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카메라 앞에 설 사람도, 그 모습을 준비하는 사람도 함께 들떠 있었다.
▲ ?지난 9월 29일, ‘FUN FUN한 하루 인증샷 브라보’ 촬영을 앞두고 봉사자들이 참여자의 메이크업을 돕고 있다.
ⓒ 김은혜
사단법인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아래 내봄눈, 대표 김은혜)와 서산시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시설장 권인자)이 마련한 'FUN FUN한 하루 인증샷 브라보'는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보도록 기획됐다.
신청한 다섯 명은 입고 싶은 옷과 촬영 콘셉트를 직접 골랐다. 한복과 웨딩 차림, 정장까지 선택은 저마다 달랐다. 핑크뮬리가 피고 조형물이 놓인 정원에서 자신이 선택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어릴 때 남기지 못한 한복 사진
▲ ?한복 촬영을 선택한 이경훈씨(50대)가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지환
한복 촬영을 선택한 이경훈(50대)씨는 어릴 때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보지 못한 일이 아쉬웠다고 했다. 주변 경치를 즐기던 그는 "추억 담아주셔서 고마워요"라며 촬영 소감을 전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신감이 생기고 모델이 된 느낌이 들었어요."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진을 누구와 보고 싶은지 묻자 함께 사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어릴 적 남기지 못했던 한복 사진을 이제 부모님과 함께 보며 추억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웨딩 촬영을 선택한 정난희(30대)씨의 소감은 긴 문장으로 들을 수 없었다. 담당 선생님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질문에 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한 봉사자는 난희씨가 즐겁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자신이 고른 웨딩 차림으로 촬영하는 그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 보였다.
▲ ?웨딩 촬영을 선택한 정난희씨(30대)가 목장카페 야외 정원에서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김은혜
정장 차림의 이승민(20대)씨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지만 촬영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가볍고 흥겹게 뛰는 모습과 자연스럽고 밝은 표정이 사진에 담겼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말로 길게 남긴 소감 대신, 촬영을 즐기는 순간이 기록됐다.
▲ ?정장 촬영을 선택한 이승민씨(20대)가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모자 챙에 손을 얹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은혜
권인자 시설장은 참여자들이 옷과 촬영 콘셉트를 직접 선택하는 과정에 의미를 뒀다.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즐거운 경험이 앞으로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집에 사진 걸어두고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 ?이해만씨(40대)가 정원의 꽃들 사이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미소 짓고 있다. 그는 촬영한 사진을 집에 걸어두고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이지환
정장 촬영에 나선 이해만(40대)씨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묻자 강아지를 키우던 시간을 떠올렸다.
"애기 강아지가 어른 강아지가 됐을 때 제일 행복하고, 엄청 평안하고 좋았어요."
어린 강아지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던 날들을 그는 '평안'이라는 말로 기억했다. 이날 찍은 사진을 먼 훗날 다시 보면서도 그 마음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집에 사진 걸어두고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해만씨는 평소 블록을 조립하고 로봇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이날의 기분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조립할 때처럼 즐겁다고 표현했다.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은 사진에는 오늘의 기쁨이 오래 남기를 바랐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진을 찍는 일이 한 사람의 미래에 작은 위안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받는 기분으로 찍은 사진
▲ ?오민석씨(30대)가 직접 고른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코디와 포즈, 촬영 장소까지 스스로 정하며 촬영을 즐겼다.
ⓒ 김은혜
오민석(30대)씨는 어린 시절 사랑을 많이 받고 싶었지만 많이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이날 촬영을 통해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머리를 손질하고 옷차림을 살피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함께 준비하는 시간을 그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에게 건넨 인사에는 다른 이들의 행복을 비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가족과 활동보조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마음도 전했다. 평소 노래를 좋아하고 유튜브 활동도 하는 민석씨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노래를 선물해 달라는 요청에 '무조건'을 직접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이어졌다.
▲ ‘FUN FUN한 하루 인증샷 브라보’에 참여한 이승민씨(20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 촬영에 이어 노래로도 이날의 추억을 남겼다. ⓒ 최현
촬영이 끝날 무렵에는 선글라스를 직접 고르고 코디와 포즈, 촬영 장소까지 스스로 정했다. 마지막까지 밝은 미소로 촬영을 즐기는 민석씨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시간을 모아 만든 하루
▲ ?‘FUN FUN한 하루 인증샷 브라보’ 참여자들과 봉사자들이 서산목장카페 야외 정원에서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김은혜
참여자들이 촬영을 즐기는 동안 봉사자들의 손길도 분주했다. 주벨듀미용학원 박승희 원장과 실장, 학생들이 헤어와 메이크업을 맡았다. 중간고사 기간에도 참여한 학생들, 야근을 마치고 잠 한숨 못 잔 채 촬영장으로 뛰어 온 사진가, 바쁜 일정 중에 짬을 내거나 휴가를 내고 참석한 회원들이 손을 보탰다.
김은혜 대표는 "평일이라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회원들에게도 "오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신 우리 회원님들께서도 미안해하지 마셔요"라고 전했다. 함께한 사람에게는 고마움을, 함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을 건넸다.
촬영한 사진은 액자로 제작해 조만간 내봄눈 관계자들이 시설을 직접 방문해 전달할 예정이다. 경훈씨는 부모님과 사진을 보고 싶다고 했고, 해만씨는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아름답게 담긴 사진을 함께 보고 싶은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있었다.
액자를 받아 든 뒤에도 이날의 기록은 남는다. 입고 싶은 옷을 고르고, 원하는 모습을 정하고. 그들은 이날 카메라 앞에서 자신감을 느꼈던 하루다. 훗날 사진을 꺼내 보는 순간에도 그 기분이 되살아나기를, 해만씨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먼 훗날 찍어주신 사진 보면서도 바람대로 평안했으면 좋겠어요."
▲ ?승민씨와 민석씨가 초승달 조형물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은혜
▲ ?웨딩 차림의 정난희씨(왼쪽·30대)와 정장 차림의 오민석씨(30대)가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벤치에 나란히 앉아 촬영하고 있다.
ⓒ 김은혜
▲ ?이승민씨(왼쪽·20대)와 이해만씨(40대)가 목장카페 야외 정원의 바위에 나란히 앉아 촬영하고 있다.
ⓒ 김은혜
▲ ?이경훈씨(50대)가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목장카페의 말 조형물 앞에서 팔짱을 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지환
▲ ?정난희씨(30대)가 챙이 넓은 모자와 꽃무늬 의상을 입고, 꽃다발을 든 채 야외 정원에서 촬영하고 있다.
ⓒ 김은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t-we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