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로건레이크의 주택가.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 주택 주변의 나무와 가연성 물질을 제거하고 건물과 산림 사이에 방어 공간을 확보하는 ‘파이어스마트(FireSmart)’가 적용돼 있다. 안수정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 촬영
대형 산불이 반복되면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에서는 산불에 맞서는 주체도 넓어졌다. 진화기관의 대응만으로는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경험이 대학과 마을, 주민 참여로 이어졌다. 대학은 달라진 산불 환경에 맞춰 연구와 교육을 바꾸고, 주민과 지방정부는 집과 마을 주변의 가연물을 줄인다. 산불관리기관은 위험 지역을 예측해 진화인력과 장비를 미리 배치한다. 현장 진화와 지역사회 예방·대비가 함께 작동하는 체계다. 산림과 생활권이 맞닿아 있고 강풍을 동반한 대형 산불 위험이 큰 강원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캐나다 캔모어 지역의 주택가. 산림이 주택 가까이까지 이어져 있어 방어 공간을 확보한 로건레이크의 주택가와 대비된다.
■기후변화 반영해 교육도 바꾼다…진화 넘어 대비·회복까지
톰슨리버스대학(TRU)의 산불 교육은 ‘불을 끄는 법’에 머물지 않는다. 산불 예방과 대응부터 피해 이후 회복까지 다룬다. 교육 대상도 전문 진화인력뿐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까지 아우른다. 대형 산불에 대응하려면 현장 인력의 전문성과 주민 대비 역량을 함께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달라진 산불 환경이 있다. 기후변화로 고온·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강풍까지 겹치면 진화자원을 투입해도 불길을 잡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마이크 플래니건 TRU 교수는 “나무와 낙엽 등이 바싹 마른 상태에서 고온·건조한 강풍까지 불면 항공기를 몇 대 보유하고 있든 진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TRU는 2017~2018년 대형 산불 이후 BC주와 협력을 확대하며 산불 연구 성과를 교육에 반영해 왔다. 기후변화와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내용을 바꾸고, 참가자들의 의견과 교육 전후 인식 변화를 반영해 다음 과정을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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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경험과 지식에 연구 성과와 교육 현장의 피드백을 더해 달라진 산불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캐나다 톰슨리버스대학(TRU)의 연구·재난관리 시설
퀸튼 넬슨 TRU 교육·훈련 매니저는 “기존 교육내용이 만들어졌을 당시와 산불 환경이 달라진 만큼 교육과정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을 전달하는 체계도 정비하고 있다. BC주와 함께 지역별로 운영되던 산불 교육과 강사 양성과정을 표준화하고, 교육생과 강사 이력을 관리하는 인증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산불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교육과정도 운영한다.
지역사회로 교육 대상을 넓힌 건 주민들이 겪는 산불 피해와도 맞닿아 있다. 생활권 가까이에서 산불이 반복되면서 주민들은 대피하거나 연기에 노출된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른 지역사회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배우려는 수요가 커졌다는 게 TRU 측 설명이다.
대학은 이러한 수요를 연구와 교육으로 뒷받침한다. BC산불관리청이 진화와 산불 억제 등 현장 대응을 맡는다면, TRU는 주민들이 산불의 특성을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발라 니쿠 TRU 교수는 “지역사회가 중심에 있어야 하고 우리는 과학과 연구, 교육을 통해 그들이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산불이 무엇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퀸튼 넬슨 톰슨리버스대학(TRU) 교육·훈련 매니저가 산불 진화 및 대응 트레이닝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집 주변 가연물 치우고 숲 솎고…20년간 이어온 ‘파이어스마트’
지난 6월 찾은 로건레이크의 파이어스마트 참여 마을은 주택 주변부터 달랐다. 집 가까이 있던 나무와 관목을 걷어내 공간이 훤히 트여 있었고, 낙엽 등 가연물도 치워져 있었다. 캔모어 등 다른 지역에서 키 큰 나무가 주택 바로 옆까지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모습과 대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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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정부와 주민들이 약 20년간 함께 ‘파이어스마트’를 실천해 온 결과다.
파이어스마트는 산불이 집과 마을로 옮겨붙을 위험을 줄이는 지역사회 예방체계다.
집 주변의 낙엽과 장작을 치우고, 마을 인근 숲에서는 나무 사이의 간격을 넓힌다. 불길이 나무 위로 번지는 것을 줄이고, 바람에 날아온 불티가 주택에 불을 붙일 가능성을 낮추는 조치다.
물론 주민들이 처음부터 이 같은 조치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숲에서 살기 위해 이주한 주민들에게 집 주변의 나무를 없애는 일은 거부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인식이 달라진 계기는 2021년 대형 산불이었다. 불길이 마을 가까이까지 접근하면서 주택 인근 가연물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생활 공간의 변화는 마을 주변 숲을 관리하는 연구로도 이어졌다. 질 하비 TRU 산불생태학 교수는 “BC주 내륙의 일부 산림에서 오랜 기간 산불을 진압하면서 숲이 빽빽해지고 연료가 축적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로건레이크 주변에 나무를 솎아내는 정도와 연료 처리 방법을 달리한 시험구를 조성했다. 라이다와 산불행동모델 등을 활용해 각 방법의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산림연료를 줄이기 위해 계획적으로 불을 놓는 ‘처방화’, 원주민 공동체가 전통 지식에 따라 불을 활용해 숲을 관리하는 ‘문화적 불놓기’도 연구 대상이다.
TRU 교수·연구진인 디니야르 미노처 산불 대응·관리 책임자, 퀸튼 넬슨 교육·훈련 매니저, 마이크 플래니건 교수, 차드 케이시 연구원, 인리케이 시스네로프프로젝트 매니저, 발라 니쿠 교수, 질 하비 교수
■산불 위험 미리 읽고 진화대 배치…전국 단위 자원공유
지역사회가 마을 주변의 위험을 줄인다면 산불관리기관은 위험을 미리 읽고 대비한다. 기상과 산림연료 상태를 분석해 인력과 장비를 배치하는 것이다. 그 판단의 기반은 캐나다 산불위험평가시스템(CFFDRS)이다. 마이크 워튼 토론토대학 산림·보전연구소 부교수는 이를 전국 산불관리 인력이 사용하는 ‘공통 언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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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FDRS의 산불기상지수(FWI)는 기온과 상대습도, 바람, 강수량 등을 토대로 산림연료의 건조 정도와 산불 위험을 판단한다.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진화인력과 장비의 경계 수준을 높이고 위험지역에 자원을 미리 배치한다.
산불이 발생한 뒤에는 산불행동예측시스템(FBP)을 활용한다. 산림 유형과 기상조건을 분석해 산불의 강도와 확산 속도를 예측한다. 현장에서는 주민 거주지역과 기반시설의 위험을 판단하고, 진화대원과 항공기 조종사의 안전을 확보하는 자료로 쓴다.
예측 결과는 진화자원 배치에도 반영된다. 산불이 일정 강도를 넘어서면 직접 진화가 어려워지는 만큼 새로운 불에 초기에 투입할 인력과 장비를 확보해 두는 방식이다. 워튼 교수는 “효과적인 진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산불이 발견됐을 때 대응할 자원을 준비해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워튼 부교수
한 지역의 인력과 장비로 감당하기 어려운 산불에는 다른 주와 북부 준주가 힘을 보탠다. 각 주와 준주가 1차 대응을 맡고, 캐나다산불관리기관협의체(CIFFC)가 지역 간 지원을 조정한다. 진화대와 항공기뿐 아니라 현장지휘팀도 지원 대상이다. 어느 지역이든 대형 산불 앞에서는 외부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는 공감대와 40년 넘게 이어진 기관 간 협력이 이 체계를 뒷받침한다.
강원도가 참고할 지。도 이러한 역할 분담과 협력에 있다. 주민과 지방정부는 평소 집과 마을 주변의 가연물을 줄이고, 대학은 연구와 교육으로 지역사회의 대비를 돕는다. 산불관리기관은 위험 예측에 따라 인력과 장비를 미리 배치하고, 지역의 대응능력을 넘어서는 상황에는 기관 간 지원을 가동한다. 진화 역량을 높이는 것과 함께 지역사회가 위험을 줄이고 부족한 자원을 서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워튼 교수는 강원도를 비롯한 한국의 대형 산불 대응에 대한 조언으로 “산불관리기관만으로는 산불 문제를 해결하거나 없앨 수 없다”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피해를 줄이는 데 참여하고, 지역사회와 기반시설도 산불에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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