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외제차를 처분하고 마련한 교회 승합차에 현지 아이들과 성도들을 가득 태운 채 환하게 웃고 있는 호이가(왼쪽) 전도사. DMN 제공
서울 강남의 대형 안과에서 외국인 환자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30대 몽골인 오리한씨는 지난 8월 사직서를 내고 고국으로 떠났다. 일곱 살 때 남의 이름으로 한국에 들어와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자란 그가 서강대와 연세대 대학원을 거쳐 오른 자리였다. 고소득을 올리던 그는 지금 은행 일조차 낯선 몽골에서 섬길 교회 모델을 찾아 곳곳을 돌고 있다.
한국에서 성공을 좇다 고국의 낮은 곳으로 돌아간 몽골 청년은 오리한씨만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의 몽골 현지 촬영을 도맡으며 BMW를 몰던 호이가 전도사는 울란바토르에서 교인 40~50명의 교회를 이끈다. 일당 수십만원을 받던 무대 설치 팀장 에르덴(가명)씨는 울란바토르 외곽 쓰레기 매립지 옆 게르(몽골 전통가옥)에 교회를 세우고 입양한 두 아이를 포함해 네 아이를 키운다. 한국에서 신앙을 키운 이주민이 사역자가 돼 고국으로 돌아가는 ‘역파송(逆派送)’이다. 세 사람이 그 길에 서기까지는 코리안 드림이 남긴 ‘돈독(毒)’을 빼는 시간이 필요했다.
6일 디아스포라몽골네트워크(DMN) 상임대표 이해동 목사에 따르면 인구 350만여명인 몽골에서 온 국내 체류자는 6만명이 넘는다. 2000년부터 국내 몽골 이주민과 함께해 온 이 목사가 보여준 재한몽골인 이삿짐 일자리 알선 SNS 그룹 회원만 23만명이다. 한국을 오가며 법을 넘나들며 이사철이나 농번기에 단기간 일하고 돌아가는 이들도 많다는 방증이다. 이삿짐 일당은 20만원, 이사가 몰리는 2월 말엔 30만원까지 오른다고 한다. 3일만 일하면 몽골 평균 월급(85여만원)을 타는 셈이다. 최근 서울 동대문구 다하나국제교회에서 만난 이 목사는 세 사람의 지난 시간을 전하면서 “돈 벌러, 성공하러 온 친구들이라 돈독, 성공독이 오르기 쉽다”고 했다. 그는 “그 독을 해독시키는 게 이주민 사역”이라고 말했다.
성공독에 취했던 시절
세 사람 모두 방황의 시간을 거쳤다. 오리한씨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이길 수 있는 길은 공부뿐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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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초청장학생으로 서강대에 들어가 매달 장학금을 받게 되자 한때 교회를 찾지 않았지만, 비자 갱신 과정에서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되는 큰 위기를 겪고서 신앙을 되찾았다. 연세대 대학원(석사)을 마친 그는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노량진교회에서 3년간 전도사로 일했다. 그러나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육아 문제로 사역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후 강남 대형 병원에 취업해 고수입이 보장되는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삶의 안정을 찾았다. “3~4년간 매일 묵상과 기도를 이어갔지만 성공 지향적인 마음을 내려놓게 해달라는 기도 제목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고 이 목사는 전했다.
오리한씨 부부 자녀의 유아 세례식에서 이해동 목사가 아이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DMN 제공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호이가 전도사는 한국어를 몰라 수업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교회 방과후교실에서 한국어를 익혔지만 고교 시절엔 방황했다. 소명을 받았다며 장신대 기독교교육과에 진학했고 이 목사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했다. 2018~2019년쯤 호주 힐송 칼리지의 찬양 사역 과정 유학을 준비하러 몽골로 돌아간 그는 비자에 필요하다며 이 목사에게 3만 달러를 빌렸다. 하지만 그는 비자를 신청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 드라마와 사극의 몽골 현지 촬영을 도맡았다. 사극 촬영 땐 말 200마리와 현지 군인 200명을 섭외해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빌린 돈의 절반은 중고 BMW 구입 등에 썼다. 성공과 허세에 취해 도덕적 과오까지 저질렀다.
몽골에서 직원 30~40명을 둔 통신망 공사업체를 운영하던 에르덴씨는 회사가 부도나자 야반도주하듯 한국에 왔다. 이 목사의 토요 유학생 모임에서 리더를 맡을 만큼 신앙이 자랐지만 일당 수십만원을 받는 무대 설치 팀장이 되면서 달라졌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설치 일로 예배를 빠지기 시작했다. 몇 달 만에 1000만원을 모은 뒤 유흥을 좇던 그는 술에 취해 행인을 다치게 해 옥살이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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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옥바라지를 한 건 이 목사였다.
바닥에서 배운 ‘자기 부인’
호이가 전도사는 2020년 초 예배 중 공개적으로 수찬정지(성찬 참여 금지) 3개월의 치리를 받았다. 몽골을 찾은 이 목사가 내린 징계였다. 이 목사는 그 자리에서 “영어로 찬양하게 하고 멋있게 보이고 싶었던 내 안의 거품이 그에게 넘어갔다”며 교인들 앞에서 함께 회개했다. 빌려준 돈은 통장에 남은 1만5000달러만 돌려받았다. 찬양을 인도하던 자리에서 물러난 호이가 전도사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석 달을 버텼다. 그리고 이 목사에게 “목사님이 늘 말하던 자기 부인이 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했다. 이 목사는 “호주에 갔다면 큰 교회 영어예배 찬양 인도자가 됐을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찬양학교에 보내려 했는데 하나님은 거품을 빼는 광야학교로 보내셨다”고 말했다.
에르덴씨는 형기 절반을 채운 뒤 외국인인 사정에 따라 몽골 이송을 택했다. 옥바라지를 해 온 이 목사가 며칠 뒤 따라와 “남은 절반의 시간으로 신학교 가”라고 권유했다. 에르덴씨에게는 한국에 있을 때 강릉 바다에서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려주시면 헌신하겠다”고 기도한 기억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현지 신학교(UBTC)에 들어갔다.
역파송되어 몽골 현지에서 사역 중인 호이가 전도사(왼쪽)와 에르덴씨(오른쪽). 가운데는 이해동 목사. DMN 제공
오리한씨의 전환.은 남편에게서 왔다. 올해 1월 ‘공의’를 주제로 한 설교를 들은 남편은 오래 미뤄 온 체류 문제를 바로잡기로 하고 2월 말 몽골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오려던 남편의 비자 신청은 두 번 모두 거절됐다. 다른 방법을 궁리하던 오리한씨는 노량진교회 전도사 시절 “몽골에 교회를 개척하고 짓겠다”고 한 서원을 떠올렸다. 성공을 향하던 길에서 돌아서기로 한 것이다. 결심하고도 한 달을 흔들렸다. 사표를 내자 회사가 붙잡았다. 광복절 연휴를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보낸 그는 연휴 마지막 날 이 목사를 찾아 한 시간 동안 망설임을 털어놨다. 이 목사의 답은 “가라”였다. 오리한씨는 “갈게요”라고 답하고 헤어진 뒤 한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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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는 “작은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는 같이 손 잡고 기도할 뿐”이라며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걸 현실의 문제 속에서 두세 번 넘어가 본 친구들이 리더가 되더라”고 말했다.
독 뺀 자리에 들어선 사명
호이가 전도사는 2012년 한국에서 대학을 마친 몽골인 평신도 3명이 세운 울란바토르 은혜의이슬교회를 맡고 있다. 교인들을 제자로 세우려고 반년 동안 교회에서 함께 살기도 했다. 이 목사가 치리 때 처음 만난 그의 아내는 당시 ‘교회’와 ‘목사’라는 말도 몰랐다. 매일 저녁 남편과 성경을 읽고 기도한 지 5~6년, 지금은 사모로 교회를 섬긴다. 그가 타던 BMW는 처분돼 교회 승합차로 바뀌었다.
신학교를 마친 에르덴씨는 은혜의이슬교회가 예배를 드려 온 울란바토르 외곽 톨고이트의 대형 쓰레기 매립지 마을로 향했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아파트를 떠나 매립지 옆 게르로 거처를 옮겼다. 2022년 그곳에 교회를 세웠고, 울타리 안 게르 2~3채에서 빈곤과 중독에 노출된 이웃들과 함께 산다. 세상을 떠난 첫 성도가 남긴 어린 두 자녀를 입양해 친자녀까지 네 아이를 키운다.
청년 시절 예배 현장에서 손을 들고 찬양을 드리고 있는 호이가 전도사. DMN 제공
현지 관공서 추천으로 교회에 거두게 된 부모 없는 삼형제 중 한 소년은 처음엔 교회를 거부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를 만나게 해주시면 믿겠다”고 기도했던 소년은 몇 주 만에 어머니와 연락이 닿은 뒤 청소년부 리더가 됐다. 올여름 몽골을 찾은 이 목사에게 그는 “고아원에 맡겨진 장애인 여동생을 직접 입양하기 위해 서류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오리한씨는 한두 달 몽골의 교회를 돌아본 뒤 자신이 섬길 곳을 정할 계획이다. 딸의 성공을 바라던 어머니와의 화해도 또다른 숙제다. 이 목사는 고향 사역지로 떠난 오리한씨를 두고 “6개월에서 1년은 낮아지는 삶을 경험하면서 더 성장하길 바란다”고 했다. 오리한씨가 염두에 둔 사역지 후보 중 하나는 쓰레기 매립지 옆 에르덴씨의 교회다. 그 교회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 풍성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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