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사려고 대전 여행 왔어요.”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달 28일 오후 2시 대전시 은행동 성심당 본. 앞. 경기도에서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20대 김모씨는 “저렴하고 맛있어서 가족들과 먹을 생각으로 빵을 많이 샀다”고 했다. 대전을 전국적인 ‘빵의 성지’로 올려놓은 성심당. 인근 상가에 빵 저장소까지 생겨날 정도로 ‘전국구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성심당은 대전의 ‘대표 산업’ 대접은 받지 못하고 있다. 7일 대전산업단지에 따르면 성심당은 최근 몇 년 새 빵 수요가 폭등하자 대전산업단지에 새 공장 부지를 물색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발목을 잡은 건 10년 전 만들어진 황당한 규제 때문이다.
1969년 첫 삽을 뜬 대전산업단지 재생을 위해 대전시는 2016년 새 운영 방안을 만들었다. 이른바 ‘업종 제한’이다.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식료품과 음료, 섬유, 화학제품, 1차 금속 등 제조업은 더는 입주할 수 없도록 했다. 이후 세부 규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식품 중에서도 떡 공장은 되고, 빵 공장은 못 들어가는 규제가 생겨났다.
박원하 대전산업단지 본부장은 “(빵과) 같은 곡물 원료를 반죽하고, 가열하는 공정이 들어가는 떡 공장은 입주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오염물질 배출에 대한 명확한 근거 없이 대전의 상징인 성심당 빵 공장은 산업단지에 입주하지 못하는 규정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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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울산에 대한민국 1호 국가산업단지가 태동한 이래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조성된 산업단지가 낡은 규제로 되레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국내에 조성된 산업단지는 올 2분기 기준 국가산업단지·일반산업단지 등을 포함해 총 1364곳(입주 기업 13만2420개)이다. 대전산업단지 역시 이 가운데 하나로 모두 1119개 기업이 가동 중이다.
하지만 업종 제한 규제로 유예기간이 끝나는 5년 뒤인 2031년에 이곳을 떠나야 하는 기업이 68곳이나 된다. 홍차 분말 음료인 ‘립톤’을 만들어 수출하는 스윗티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 최윤호 대표는 “제조 과정에서 물을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는데도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산단에서 나가라고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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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 공실인데…AI기업, 입주 원해도 업종제한 퇴짜
이곳에서 12년째 공장을 운영해 온 그가 이런 규제 조항을 알게 된 것은 수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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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선인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공장을 증설해 보자는 제안을 받고 공장 인근의 산단 부지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차류 가공업은 신규 투자가 불가능하며 제한 업종으로 산업단지에서 이전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최 대표는 “대규모 투자 유치가 공중분해된 것도 속 타는 일이지만, 법적으로 산단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분말 커피를 가공하는 회사 역시 처지는 마찬가지다. 최 대표는 “오염물질 배출 우려가 있으니 무조건 안 된다는 주홍글씨를 찍지 말고, 오염물질 배출 데이터를 퇴출 여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창원산업단지에 입주한 A기업도 ‘대못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곳에선 물건을 쌓을 창고를 지을 수가 없다. 물류창고업을 제한해서다. 이 기업은 공장에서 약 18~26㎞ 떨어진 곳에 창고 7곳을 세웠다. 산업단지를 벗어난 곳에 자재를 보관하다 보니 운송비 부담에다 도로 혼잡까지 벌어져 골머리를 썩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도 골칫거리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바이오 같은 신산업이 기존의 표준산업분류(KSIC)에 들어가지 않아 산업단지 입주가 어려운 곳이 속출하고 있다. 충청 지역의 한 지방자치단체는 직접 산업통상부에 규제 완화를 건의했지만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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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단지 공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AI·자율주행 기업을 입주시키려고 해도 업종 제한 때문에 기업 유치 길이 막힌 상태다. 이 지자체 관계자는 “입주 협의를 해도 현행 절차상으로는 6개월에서 12개월이 걸려 투자 골든타임을 놓치게 돼, 결국 기업들이 해외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자연보전권역에 있는 산업단지에선 ‘대기업 차별’이 빚어지기도 한다. 환경 보전이 목적이지만 중소기업은 공장을 더 지을 수 있도록 했지만, 대기업(건설자재업)은 면적(1000㎡) 제한이 있어 산단 내에서조차 신규 투자가 어렵다.
명칭 몇 글자 차이로 규제 온도 차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일반물류단지나 도시첨단산업단지에는 ‘공공 기여’ 의무가 없지만, 도시첨단물류산업단지는 토지 가액의 40% 범위에서 기업이 해당 지자체에 기여금을 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성장본부장은 “산업단지를 무대로 한 산업 고도화가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국가 성장의 토대가 됐지만 이제는 AI 시대로 ‘얼마나 빨리 실험하고 적용하느냐’에 경쟁력이 달렸다”며 “노후 산단을 중심으로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관훈(한국중견기업학회장) 선문대 교수는 “일률적인 기업 규제는 미래 산업을 키우는 데 덫이 될 수밖에 없다”며 “미래 지향적으로 정부가 규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못 들어가는 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