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면 아이가 8살이 된다. 육아휴직을 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나는 1년을 무급인 상태로 있어야 한다. 그러니 내게 남은 투자의 시간은 사실상 1년이다. 여기에 변수가 하나 더 있다. 이사다. 지난 1년 주식판을 들여다보느라 놓치고 있던 사이, 부동산 시장의 온도도 급변해 있었다. 전세·월세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매물은 없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집을 옮겨야 하는데, 그 시간도 1~2년 남짓이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인' 불균형을 택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투자금을 불리기 위한 성장주 집중 포트폴리오. 주식이 급등하던 시절, 퇴근 후 남편과 나는 자주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수익률 200%만 되면 원하는 곳으로 이사 갈 수도 있겠는데." 그러나 올해 5월 이후 반도체 중심의 성장주들은 급락했고, 이제 우리는 아주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때 팔 걸. 더 욕심내다가, 지금은 대출금만 늘게 생겼네."
응시와 이해와 결론 사이
▲ ?시계가 흐르는 속도는 같지만,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은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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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의 급등락 장을 지나며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시장을 예측하려 들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투자금과 방법을 고르라는 것.
그런데 그 선택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모두에게 절대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상대적이다. 1억을 투자해도 당장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같은 1억이 몇 년 안에 집이 되어야 하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다. 시계가 흐르는 속도는 같지만,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은 완전히 다르니까.
라캉은 '논리적 시간'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시계가 흐르는 방식이 아니라, 확신에 이르는 방식으로서의 시간이다. 그는 이 시간을 세 단계로 나눴다. 응시의 순간, 이해의 순간, 결론의 순간.
그가 예로 든 것은 '죄수의 게임'이다. 세 명의 죄수 등에 흰색 원반 3개와 검은색 원반 2개 중 하나씩을 붙이고, 자기 등의 색을 먼저 맞힌 사람을 내보내준다. 자기 등은 볼 수 없고 남의 등만 보인다(응시). 내가 본 두 사람이 모두 검은색이라면 답은 쉽다. 검은 원반은 2개뿐이니 내 것은 흰색일 수밖에 없고(이해), 곧장 방을 나서면 된다(결론).
문제는 두 사람 다 흰색으로 보일 때다. 이때 나는 기다리며 따져봐야 한다. '내가 검은색이라면 저 사람은 진작 답을 알아채고 나갔어야 하는데, 왜 안 나가지?' 이렇게 남과 나 사이의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과정이 바로 '이해'의 순간이고, 이걸 거쳐야만 죄수는 자기 등의 색을 확신하고 방을 탈출한다.
'시간의 논리'는 주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금리, 환율, 전쟁 같은 뉴스를 보고(응시), 내 종목의 매수가와 현재 가격, 그리고 내가 이 돈을 얼마나 오래 보유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이해) 과정을 거쳐야, 매수·매도·관망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모두가 추천하는 좋은 종목도 내가 어떤 가격에 샀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보유할 수 있는지 경우에 따라 전혀 다른 투자가 되므로.
그런데 이 중간 단계가 자주 생략된다.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으니까. 그래서 진짜로 이해하지 않은 채 결론에 도달하거나, 남이 한 말을 듣고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이해의 과정이 생략되면, 생활비로 써야 하는 돈과 몇 년 동안 없어도 되는 돈이 같은 하락률 앞에서 전혀 다른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더 오랜 시간을 잃을 수도 있다.
육아휴직 생활비, 내집마련 자금처럼 특정 시.에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돈은 이미 시간을 이길 수 있는 투자가 못 된다. 시간을 이겨야만 하는 투자가 되어버린다. 미국 피셔 인베스트먼트 창립자 켄 피셔는 2018년 USA Today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타이밍을 이긴다 ? 거의 항상."
(Time in the market beats timing the market ? almost always.)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문장을 뒤집어 보면,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는 걸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다. 그러니 피셔의 원칙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문장을 하나 바꿔야 한다.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이긴다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이긴다.
시간을 이기는 투자란
▲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애프터마켓이 개장되어 있다. 한국거래소(KRX)는 이날부터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대상으로 애프터마켓을 운영한다. 2026.9.14
이걸 요즘 시장에 대입해보면 레버리지가 보인다. 레버리지는 흔히 돈의 배율로 이해되지만, 그 속성을 뜯어보면 사실 시간의 가배속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레버리지에 손을 대는 이유는 더 많이 벌고 싶어서뿐만이 아니다. 더 빨리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속도로는 내게 남은 시간 안에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돈의 배율을 높이는 것으로 시간을 단축하려 한다.
9월 14일부터 한국거래소의 정규장 종료 후 시간외 거래인 '애프터마켓'이 오후 8시까지로 확대됐다. 기존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10분 단위로 가격을 모아 한 번에 체결하는 단일가 방식이었다. 이제는 사려는 값과 팔려는 값이 만나는 즉시 거래가 이뤄진다. 다만 정규장과 달리 시장가 주문은 할 수 없고, 가격을 직접 정하는 지정가 주문만 가능하다. 현재 코스피·코스닥 상장 종목은 2766개인데, 그중 2700여 개 종목이 거래 된다.
시장에 머무를 수 있는 제도적 시간이 늘어났다고 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시장에 머무는 시간은 시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진 돈의 목적과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심리적 여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산책길에 밤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아직 연둣빛 그대로였다. 밤나무는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열매를 달면, 다 익히지 못할 것부터 먼저 떨어뜨린다고 한다. 저 밤은 일찍 땅에 닿았으니 결실을 이룬 걸까. 아니다. 제대로 익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제 시간을 너무 빨리 태워버린 것이다.
나도 그랬다. 빨리 시간을 태워서라도 결론에 먼저 도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앞당긴 자리에 남는 건 설익은 결과뿐이다. 시간을 이기는 투자란, 어쩌면 끝까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투자인지도 모른다.
▲ 너무 빨리 떨어진 밤송이?너무 빨리 떨어진 밤송이
ⓒ 안유림
덧붙이는 글 | - 참고자료 김석, <에크리 :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살림, 2007) - 이 기사는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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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이 개장되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