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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오 묘역과 이슬람 흔적, 근대 거리와 현대 건물 공존
● 피라미드 세워지고 3000여 년 뒤 카이로 건설
● 로마 시대 요새 흔적과 오래된 교회 모인 ‘콥트 카이로’
● 도시 역사가 눈앞에 펼쳐지는 ‘알 무이즈’ 거리
● ‘헬리오폴리스’는 애초에 사막에 건설된 계획도시
카이로라는 이름을 들으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파라오와 미라, 투탕카멘과 클레오파트라가 먼저 떠오른다. 익숙한 이름이지만 이들은 같은 시대, 같은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세워졌을 때 카이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고대 이집트'라는 이름으로 함께 떠올리는 장면들은 실제로는 수천 년의 시간차가 존재하고, 서로 다른 장소에 흩어진 이미지다.
그러나 오늘날 여행자들은 그 시간을 하나의 도시 카이로를 여행하며 만난다. 아침에는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고, 오후에는 파티마 왕조 때 세워진 역사 도시의 골목을 걷고, 저녁에는 나일강과 현대 도시의 불빛을 바라볼 수 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한때 멀리 떨어져 있던 장소들이 하나의 생활권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카이로는 처음부터 완성된 도시가 아니었다. 여러 시대의 도시와 길이 덧붙으며 커졌다. 전기회로의 여러 장치가 선으로 이어져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듯, 카이로도 새로운 공간을 더해 가며 거대한 도시권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오래전부터 나일강이 있었다.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요지에 위치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전통과 첨단기술,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도시다. Gettyimage
클레오파트라에게도 피라미드는 오래된 유적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쿠푸 왕을 위해 세워졌으며 원래 높이는 약 146~147m에 이르렀다. 4500여 년 전에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원래 피라미드는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세워진 돌산이 아니었다. 당시 이집트의 중심이었던 멤피스와 관계된 왕실 묘역의 일부였고, 기자에서 남쪽의 사카라와 다슈르까지 나일강 서쪽에는 여러 시대의 피라미드와 무덤이 이어져 있다.
멤피스는 나일강 삼각주와 가까워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잇기 좋은 위치에 있었다. 강은 사람과 곡물, 건축재료를 옮기는 중요한 길이었고 외장용 고급 석회암 등 일부 석재는 나일강과 수로를 통해 운반됐다. 오늘날 도로와 철도가 물류를 움직인다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그 역할을 맡았다.
스핑크스도 이 거대한 묘역의 일부다.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한 석상 뒤로는 이제 도로와 주택, 식당과 현대적 건물이 가까이 이어진다. 관광 사진만 보면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듯하지만 실제 풍경은 다르다. 고대의 묘역이 도시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카이로와 기자의 시가지가 오랜 시간 그 앞까지 다가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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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앞에 서면 사막의 모랫빛 너머로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 뒤로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천 년 전의 돌과 오늘의 도시가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데서 온 생경함은 카이로에서 처음 느껴본 낯선 감정이다.
이집트의 긴 시간을 실감하려면 클레오파트라와 피라미드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 보면 된다. 클레오파트라 7세가 살았던 것은 기원전 1세기지만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그녀가 살던 시대보다 약 2500년 앞서 세워졌다. 우리에게 클레오파트라가 고대의 인물이듯, 그녀에게도 피라미드는 이미 먼 옛사람들이 남긴 건축물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로스대왕 이후 이집트를 지배한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였다. Gettyimage
클레오파트라가 통치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중심도 카이로가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알렉산드리아였다. 그녀는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토착 왕조가 아니라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이집트를 지배한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우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래 성장한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와 이집트 문화가 만나는 도시였다. 파라오와 피라미드, 스핑크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모두 하나의 '고대 이집트'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사이에는 긴 시간과 서로 다른 도시가 놓여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카이로는 언제 시작됐을까. 피라미드가 세워진 시대에서 3000년 이상을 건너가야 비로소 그 이름의 출발.을 만나게 된다.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한 스핑크스. Gettyimage
시대마다 공간이 덧붙여져 탄생한 도시
641~642년 아랍군이 이집트를 정복한 뒤, 나일강 동쪽 강변에 푸스타트가 세워졌다. 이후 알아스카르와 알카타이 같은 새로운 중심지가 주변에 들어섰고, 969년 파티마 왕조의 장군 자우하르 알시킬리는 푸스타트 북동쪽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이후 '알카히라'로 불리게 됐고, 오늘날 카이로라는 이름의 출발.이 됐다.
성벽 안에는 궁전과 모스크, 남북을 잇는 중심 도로가 들어섰다. 그 길은 오늘날 알무이즈 거리로 이어지고, 같은 시기에 세워진 알아즈하르 모스크는 이후 학문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새로운 도시가 생겨도 이전의 공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푸스타트와 주변 지역은 차츰 하나의 생활권을 이뤘고, 살라딘 시대에는 성벽과 성채가 더해지며 도시의 범위도 넓어졌다.
이 지역에는 이슬람의 흔적만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옛 푸스타트 일대의 콥트 카이로에는 로마 시대 요새의 흔적과 오래된 교회들이 가까이 모여 있다. 대표적 '행잉 처치'는 로마 시대 바빌론 요새의 두 탑 위에 걸쳐 세워져 '매달린 교회'라는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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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 안에서 로마와 초기 기독교, 이슬람 시대의 흔적을 차례로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카이로는 처음부터 완성된 하나의 도시라기보다 시대마다 새로운 공간이 덧붙으며 만들어진 도시에 가깝다. 이전 도시를 지우기보다 그 곁에 새로운 공간을 더했고, 그 흔적이 오늘의 거리 곳곳에 남아 있다.
알무이즈 거리에 들어서면 도시의 역사가 눈앞에 풍경처럼 펼쳐진다. 오래된 돌벽과 목조창 사이로 모스크의 돔과 첨탑이 보이고, 금속등과 천, 향수와 장신구를 파는 가게가 이어진다. 그 사이로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상인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수백 년 된 거리에서 오늘의 생활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이 거리에는 파티마와 아이유브, 맘루크와 오스만 시대의 건축물이 겹쳐 남아 있다. 특히 맘루크 시대에는 모스크와 학교, 병원, 숙박시설과 급수시설이 들어섰다. 지금은 역사 유산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배우고 쉬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시시설이었다.
조금 더 걸어 칸 엘 칼릴리 시장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한층 활기를 띤다. 좁은 골목에는 황동등과 은제품, 향수병과 천, 향신료와 장신구가 빼곡하고 상인의 목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이 뒤섞인다. 물건을 고르는 사람 곁에서는 차를 마시는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색과 냄새가 달라진다. 골목 안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머리 위로 들어오는 햇빛은 가늘어지고, 황동등과 천의 색은 더 짙어진다. 향신료 냄새와 차 향, 가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겹치는 순간에는 오래된 시장을 구경한다기보다 그 안에 잠시 섞여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든다. 피라미드가 왕과 사후 세계의 문명을 보여준다면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살아온 도시의 문명을 만날 수 있다. 금속을 두드리고 천을 짜고 향신료를 다루는 기술도 오랫동안 시장과 작업장을 통해 이어져 왔다.
넓적한 이집트식 빵인 ‘아이시 발라디’. Gettyimage
카이로의 식탁은 소박하고 든든하다. 넓적한 이집트식 빵인 '아이시 발라디'에 누에콩을 익힌 '풀 메담메스'를 곁들이고, 누에콩을 갈아 향신료와 함께 튀긴 '타아미야'를 빵과 채소와 함께 먹는다. 거리에서는 쌀과 파스타, 렌틸콩과 병아리콩에 토마토소스와 튀긴 양파를 얹은 '코샤리'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화려한 유적에서 한 걸음 벗어나 골목과 시장으로 들어가면 문명은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무엇을 먹고 만들었는지, 어디에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된 건축과 장인의 손길, 시장의 소리와 한 끼의 음식도 카이로를 만들어온 시간의 일부다.
카이로 카페에 앉으면 시간의 속도가 느려진다
카이로의 거리는 빠르다. 자동차 경적이 그치지 않고 사람과 차가 쉼 없이 움직이지만 골목의 카페에 앉으면 시간이 조금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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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달고 진한 차나 커피를 앞에 두고 거리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작은 의자에 앉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여행자도 잠시 카이로의 일상 속에 섞여든다.
카이로의 전통적인 커피하우스는 오래전부터 도시의 소식이 모이는 장소였다. 시장의 상인들이 쉬어 가고 이웃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음악과 이야기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 하루의 시간을 나누는 생활공간이었다.
오늘날에는 오래된 카페 곁에 현대적인 커피전문。이 들어서고 젊은 사람들은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펼쳐놓는다. 달라진 것은 도구와 공간의 형태이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이야기하고 쉬어 가는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이로의 밤은 이런 공간에서 늦게까지 이어진다. 낮의 더위가 누그러지면 거리로 사람들이 나오고 식당과 카페의 자리가 채워진다. 낮에는 빠르게 지나쳤던 골목도 밤이 되면 조명과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서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19세기 후반 카이로의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케디브 이스마일 통치기에는 오래된 도시 서쪽으로 넓은 도로와 광장, 정원과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근대적인 시가지가 조성됐다. 오늘날 다운타운 카이로에 남아 있는 유럽풍 건물과 넓은 가로도 이 시기의 변화와 이어져 있다.
지금은 도심 깊숙이 들어온 헬리오폴리스도 한때는 사막에 계획된 새로운 도시였다. Gettyimage
도시의 변화는 건물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19세기 말 전기가 도시 생활에 들어오고 1896년 전기 트램이 운행을 시작하면서 밤의 풍경과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식도 달라졌다. 도시의 크기는 면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거리라도 더 빨리 이동할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도시의 범위는 넓어진다.
이런 변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 곳이 20세기 초 만들어진 헬리오폴리스였다. 당시 카이로 동쪽의 사막이었던 지역에 벨기에 사업가 에두아르 앙팽은 새로운 도시를 계획했다. 주택과 정원, 학교와 호텔을 갖춘 신도시를 만들고 이를 기존 카이로와 잇기 위해 전차 노선을 만들었다. 1910년 헬리오폴리스와 카이로를 잇는 전차 노선이 운행을 시작했다.
지금은 도심 깊숙이 들어온 헬리오폴리스가 한때는 사막에 계획된 새로운 도시였다는 사실은 카이로의 성장 방식을 잘 보여준다. 교통망을 먼저 놓고 그 주변으로 주거와 상업 공간을 확장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신도시 개발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헬리오폴리스의 바론 앙팽 궁전 역시 이런 시대의 흔적이다. 인도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외관을 가진 궁전은 유럽의 기술과 자본, 이집트의 도시 확장이 만나던 20세기 초 카이로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고대의 피라미드와 중세의 모스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하나의 카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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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는 자동차와 도로가 도시의 범위를 더욱 넓혔고, 1987년에는 아프리카 최초의 도시 지하철이 카이로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나일강의 배와 전차, 자동차와 지하철로 이동수단이 바뀔 때마다 카이로 사람들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도시의 범위도 달라졌다.
오늘의 카이로는 먼저 그 규모와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끊이지 않고 고가도로와 다리가 교차하며 지하철역과 정류장에서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아파트와 상업지구도 멀리까지 이어져 도시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카이로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도시를 만난다
다운타운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건물들이 넓은 거리와 광장을 둘러싸고, 오래된 발코니 아래에는 서.과 음식., 카페와 상。이 들어서 있다. 밤이 되면 간판과 창문에 불이 켜지며 거리는 다시 활기를 띤다.
나일강 쪽으로 가면 도시의 표정이 다시 바뀐다. 코르니슈를 따라 자동차 불빛이 흐르고 강 위에는 유람선과 작은 배가 오간다. 돛을 단 전통 배 펠루카도 여전히 나일강에서 볼 수 있다. 거대한 엔진 없이 바람을 받아 움직이는 작은 배에 앉아 있으면 복잡한 도로와 고층건물이 조금 멀어지고 강의 흐름이 가까워진다. 바람을 받아 천천히 움직이는 펠루카 위에서는 조금 전까지 들리던 자동차 경적도 멀어지고, 눈앞에는 물과 하늘, 강변의 불빛만 남는다.
강 가운데 자리한 자말렉으로 건너가면 나무가 늘어선 거리와 오래된 주택, 대사관과 갤러리, 카페와 식당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같은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몇 분만 이동해도 도시의 속도가 달라진다.
동쪽으로는 헬리오폴리스와 나스르시티가 이어지고, 그 너머로 뉴카이로의 주거지와 상업지구가 사막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서쪽으로는 기자와 새로운 도시들이 펼쳐진다. 오래된 골목과 나일강변의 호텔, 20세기 초의 계획도시와 현대적인 쇼핑몰이 모두 하나의 카이로 안에 있다.
그래서 카이로를 한 장의 사진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엇이 옛 카이로이고 무엇이 새 카이로인지 선을 긋기보다, 시대마다 만들어진 서로 다른 도시의 표정을 하나씩 찾아보는 편이 이곳을 이해하기 쉽다.
카이로의 현재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지하철이다. 직장인과 학생, 장을 보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같은 열차를 타고 넓은 도시를 오간다. 지상에서 보면 끝없이 펼쳐진 것 같은 도시가 지하철 노선 위에서는 역과 역 사이의 거리로 바뀐다.
피라미드 인근의 대이집트박물관은 2025년 11월 정식 개관했다. 동아DB
기자 지역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고대와 현재가 만난다. 피라미드 인근의 대이집트박물관은 2025년 11월 정식 개관했다. 현대적인 전시 공간에서 투탕카멘의 유물과 쿠푸 왕의 배를 비롯한 고대 이집트의 유산을 만날 수 있다.
4500여 년 전 피라미드를 바라보는 곳에 거대한 현대 박물관을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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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라미드가 고대인이 남긴 유산이라면 박물관은 오늘의 사람들이 그 유산을 어떻게 연구하고 보존하며 보여주는지를 드러낸다. 고대문명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빠르게 커지는 카이로에는 오래된 공간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는 과제도 남아 있다. 이슬람 카이로에는 지금도 주민과 상인, 장인들이 살아간다. 오래된 모스크와 건물을 복원하는 것만으로 도시가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작은 가게와 골목의 집, 카페와 작업장도 이 도시의 역사다. 건축물을 아름답게 남겨도 그곳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활이 사라지면 거리는 다른 성격의 공간이 된다. 반대로 도시를 과거의 모습 그대로 멈춰 세울 수도 없다. 사람들에게는 안전한 주택과 교통, 학교와 상업시설이 필요하다. 역사 도시를 지켜내는 어려움은 결국 오랜 기억과 오늘의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데 있다.
오랜 시간과 오늘의 하루가 계속 만나는 도시
카이로에서 그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고대 이집트 유적부터 로마와 콥트의 흔적, 중세 이슬람 건축과 근대의 거리까지 보존해야 할 시간의 층이 두껍기 때문이다. 카이로를 지킨다는 것은 어느 한 시대의 모습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대가 만들어놓은 도시의 흔적과 그 안의 생활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일이다.
해가 지면 나일강 위로 저녁 빛이 번지고 강변과 다리에는 하나둘 불이 켜진다. 자동차는 여전히 끊임없이 지나가지만 강 위에서는 작은 배와 펠루카가 천천히 움직인다. 사람들은 강가에 앉거나 배에 올라 저녁의 카이로를 바라본다.
아침에 본 피라미드를 생각하면 같은 하루 안에서 지나온 도시의 시간이 새삼스럽다. 거대한 왕의 무덤에서 시작해 콥트 교회와 이슬람의 골목을 지나고, 근대의 거리와 지하철을 거쳐 다시 나일강 앞에 서게 된다.
언젠가 이곳을 찾는다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만 보고 카이로 여행을 끝내지 않아도 좋다. 콥트 카이로의 오래된 교회를 둘러보고, 알무이즈 거리의 돌벽을 따라 걸으며 칸 엘 칼릴리의 향신료 냄새를 맡아보자. 작은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헬리오폴리스의 넓은 거리까지 가보면 카이로가 피라미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된다. 아마 그때쯤이면 처음에는 피라미드를 보러 왔던 여행자가 어느새 카이로라는 도시 자체를 더 오래 걷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저녁에는 나일강에 떠 있는 배에 앉아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아도 좋다. 수천 년 동안 사람과 도시의 모습은 끊임없이 달라졌지만 강은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그 물길 곁에서 오랜 시간과 오늘의 하루가 계속 만나는 도시, 카이로는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권성열
●1968년 경북 영주 출생
●경북대 전기공학과 박사
●프랑스 리모주대 박사 후 과정
●2016 Companion of Honour 서훈
●現 국립부경대 전기공학과 교수
권성열 부경대 전기공학과 교수
제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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