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목사가 시무하던 행복교회의 어느 겨울날 전경.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당시 외국인 사역을 하며 체득한 것이 하나 있다. 우리 교회를 스쳐 간 외국인은 많았지만 복음 전도자의 삶을 끝까지 지키며 열매로 남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공통.이 있었다. 나와 한집에서 부대끼며 공동체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이다. 함께 먹고 자며 한 가족처럼 지내는 과정에서 영적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만들어졌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아버지와 아들처럼 깊은 신앙적 유대로 맺어진 사람들이 열매로 남았다.
그 시절 외국인들과 한방에서 함께 생활했던 두 아들도 지금은 목사가 돼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나는 이것 자체가 우리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였다고 생각한다. 가족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두 아들은 내 인생의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맺게 하신 가장 귀한 열매라고 여긴다. 지금은 두 형제가 일산 기쁨이있는교회(JoyfulChurch)를 함께 섬기며 선교에 힘쓰고 있다.
오래전 경기도 고양 원당 시절 우리와 잠시 함께 살았던 친척 조카들도 어느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큰 조카는 목사가 돼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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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며느리도 목사다. 아들과 장신대 신대원에서 만나 결혼했고 예장통합 평양노회에서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신앙 문제로 나와 갈등을 겪은 뒤 일본으로 떠났던 전처도 변화됐다. 일본교회에서 여전도회장을 맡을 만큼 신앙생활에 열심인 권사가 됐고 지금은 한국에 나와 두 아들 목사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어머니’가 됐다. 과거를 생각하면 내게 미움과 원망이 남아 있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두 아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한 것을 두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가 지나온 관계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내게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 가정에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천국이 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의 계획과 간섭하심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오랜 역경을 지나 사랑의 열매로 맺힌 가족사를 바라보는 마음은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듯했다. 언젠가는 모두 이 땅이 아닌 하늘 가족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온 가족의 구원을 보며 ‘신앙의 가문’을 이뤘다는 사실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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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대화가 단절되기 쉬운 시대지만 우리 가족은 함께 모이면 성경 이야기, 교회 이야기, 말씀을 통해 받은 은혜 이야기로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모일 때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믿음을 북돋아 준다. 누군가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온 가족이 손을 잡고 둘러앉아 함께 기도한다.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자녀들이 내가 사는 집에서 차로 15분 안팎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도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3년여를 보낸 뒤 막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던 고양 일산으로 교회의 터를 옮겼다. 교인 요청에 따라 교회 이름도 순례자교회에서 행복교회로 바꿨다. 나는 교회를 새로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목회철학도 다시 가다듬었다. 그때 세운 신앙생활의 세 가지 우선순위가 ‘JOY’였다.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last.’ 예수님을 첫째로, 이웃을 둘째로, 자신을 마지막에 두자는 뜻이었다. 하나님 다음에는 이웃이 있다. 내 뜻과 생각보다 먼저 예수를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한다면 삶도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신앙의 기쁨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순서, 곧 ‘JOY’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예수님의 별명 중 하나는 ‘영원한 기쁨(Eternal Joy)’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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