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미의 이야기 속 여자들은 걷는다. 방콕 북쪽 맨 위에서 남쪽 맨 아래까지. 여기가 어딘지 알지 못한 채로 밤새도록. 웨지 샌들을 신고 서울 석관동에서 한남동까지 걷느라 발목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그냥, 어찌할 수 없어서 걷고 또 걷는다. 다만 걷는다. 걷는 여자들에게는 어딘가 필사적인 구석이 있다. 누구의 인정도 없이 스스로 인간답고자 하는 존엄이 걸음마다 깃든다.
〈내 모든 것〉의 작가 이름과 소개는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문장들을 특히 주의 깊게 읽어야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저자를 대표 이력으로 소개하고 싶지 않아졌고, 무언가를 너무 깊이 사랑할 때 느끼는 수치심과 절망을 아는 사람이라고만 말하고 싶어졌다. 오정미는 영화를 제 삶에 빈틈없이 겹쳐놓은 사람이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모으고, 쓸 수밖에 없었다고.
책에 실린 글 13편에서 오정미는 인터뷰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것은 ‘인생 영화’가 무어냐는 질문과는 다르다. 그는 영화를 통해 삶을 해명하고 싶어 했다. 그냥 듣지 않고 제 생을 깎아내며 절박하게 들었다. 삶을 걸고 쓴 이야기를 따라 읽으며 나는 자주 책장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결국엔 흐느끼는 것도 귀찮아졌다.” 사람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 삶은 왜 이렇게까지 경이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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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사람이 그러했듯 읽는 사람도 속수무책이 된다.
오정미가 용기 내어 쓴 이야기 덕분에 독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덜 외롭잖아.” 그에게 기꺼이 말과 품과 시간을 내어준 인터뷰이들 역시 ‘덕분에’ 그랬을 것이다. 듣는 사람은 때로 자신이 그런 놀라운 일을 하는 줄도 모르고 해낸다. 책장을 덮고 한참 붙박여 있었다. “맨발로 땅을 디디고 서 있게” 만들어준 ‘나의 영화’는 무엇이었는지 기억의 고랑들을 살뜰히 헤아려보았다. 그의 질문이 나에게도 질문으로 도착했다.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올해의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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