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이의현지석(14364,2), 경기도박물관 제공
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혼자 보긴 아까워서’에 전시된 유물 중에는 후세에 남긴 ‘마지막 자기소개서’가 있다.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의 청화백자 지석(誌石)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석이란 무덤 속에 죽은 이의 이름과 행적, 가계 등을 적어 묻는 돌이나 도자기 판을 말한다. 대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 가까운 친지나 지인이 그의 삶을 칭송하며 글을 짓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이의현의 지석은 달랐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이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는지, 어떤 벼슬을 거쳤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어려움과 고초를 겪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일생을 살아왔는지를 세세하게 글로 남겼다. 그와 동시에 “기록할 만한 선함이 한 조각도 없으니, 남들이 헛되이 칭찬하게 한다면 혼이 되어서라도 부끄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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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旣無片善可紀借人?贊魂亦負愧)”라고 자신이 직접 묘지(墓誌)를 쓰게 된 이유를 함께 기록하고 있다. 이의현이 자신의 묘지를 직접 쓴 것은 타인의 평가에 자신의 삶을 오롯이 맡기기보다, 지석이라는 영원의 매체를 빌려 자신의 일생을 단정하게 정돈하고 겸손하게 고백한 셈이다.
‘이의현 초상’(8453), 경기도박물관 제공
‘이이명 초상’(14128), 경기도박물관 제공
이의현은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에 맞춰 관직에 입문해 이조정랑·대사간·경기도관찰사 등 요직을 거치며 노론 정국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으며, 연잉군(훗날 영조)의 세제 책봉과 관련, 노론이 크게 숙청당한 사건인 신임사화(辛壬士禍, 1721~1722)가 발생하자 그 역시 운산군(雲山郡)으로 유배됐다. 하지만 1725년 영조의 즉위와 함께 정계로 돌아와 정승에 올랐고, 특히 노론 사대신(김창집·이이명·조태채·이건명)의 신원(伸?)에 앞장서 1741년 ‘신유대훈(辛酉大訓)’을 이끌어냄으로써 노론의 정통성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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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이의현의 생애는 단순히 개인의 삶일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격동했던 정치사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이의현의 삶과 깊이 연관된 또 다른 유물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바로 ‘이이명 초상’으로, 이를 포함해 사충서원에서 보존해 오던 사대신 초상 4。이 2023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됐다. 이 초상화들은 이의현의 노력으로 사대신이 복권되자 그들을 기리기 위해 사충서원을 세우고 영정을 제작해 봉안한 유물이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이번 전시에 출품된 두 .의 유물은 이의현의 삶이 지석과 초상이라는 실체로 남아 우리와 만나는 셈이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직접 기록해 무덤 속에 품었던 이의현의 지석. 18세기 조선 선비가 스스로에게 남긴 마지막 고백은 21세기 박물관을 찾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과 역사를 성찰하게 하는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30년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기도박물관이 건네는 참으로 ‘혼자 보긴 아까운’ 유산이다. 김주안 경기도박물관 학예사
이 자신의 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