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 수요일
선생님, 저는 그새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일이 많아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데 이럴수록 시간을 좀 내야겠다 싶어서 약속한 일행과 주말 이틀을 부산에서 보냈어요. 날이 맑고 무더웠습니다. 해운대는 벌써 물놀이하는 사람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고요. 오랜만에 여름 바다를 보았습니다. 신경이 곤두서서인지 사람 많고 소리도 많은 바다가 저는 좀 버거웠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모든 게 괜찮아졌습니다. 지금 버거운 모든 것이 제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서서히 받아들일 수가 있었어요. 언제 가보아도 바다엔 분명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원과 찰나 사이에 내가 지금 서 있으며 그것 말고 중요한 것은 딱히 없다는 걸 말없이 알게 하는 힘 말입니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의 손톱을 엄마가 조심스럽게 자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부산에서 파주로 돌아오는 밤 기차 안에서 선생님의 편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나눠줘서 고마워요. 선생님의 책인 〈나의 초록 목록〉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저도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지요. 선생님께 깊은 영향을 준 어른으로요. 그 책의 내용을 온통 ‘할머니’로 기억할 정도로 제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분입니다. 그분을 잃고 2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슬픈 선생님의 마음을 짐작해보다가 그 슬픔이 제 마음에도 사무쳤습니다. 상실 이후로 이 슬픔이 얼마나 이어질까, 하는 의문은 막상 겪고 보니 아무런 의미도 쓸모도 없습니다. 끝나지 않고, 매 순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요. 선생님의 말처럼 “계속되는 일종의 ‘노력’”으로요. 그러므로 “떠난 존재가 다다를 곳”은 결국 “우리 마음”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요즘 제가 길에서 마주친 낯선 노인을 무심히 스쳐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보곤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저는 요즘 최초의 돌봄을 생각하는 날이 많습니다. 몇 년 전에 읽은 안미옥 시인의 산문집에서 시작된 생각입니다. 안미옥 시인이 갓난아기의 “종잇장 같은 손톱(〈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창비, 2024)”을 자르다가 언젠가 먼 옛날에 자신의 손톱을 잘라주었을 보호자를 생각했다는 글을 읽고 나서야 저도 깜짝 놀라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황금성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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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보호자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순간부터 사건과 사고가 이어졌고 가족 안에서도 불화가 일상이라서 어른의 돌봄이나 보호를 느낀 어린 날의 기억이 제게는 별로 없어요. 그래도, 그래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갓난아기 시기에 누군가는 제 손톱을 잘라주었겠지요. 스스로 눈이나 볼을 긁어 상처를 내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일이 제게는 좀 어렵습니다. 저의 보호자였던 사람은 아기였던 저를 바닥에 내던지곤 했습니다. 고모들과 아버지의 말로 제가 여러 차례 그것을 들어 알고 어린 날에 제 보호자가 다른 아기를 그렇게 던지는 광경을 본 적도 있지요.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무슨 증명서인가를 떼고 보니 제 출생신고를 한 날짜가 1979년 6월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도 3년이나 지나서였어요. 당시엔 출생신고를 나중에 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고는 하지만 저는 이유를 달리 짐작합니다. 경험과 직감으로 이유를 추측하며 제 어린 날의 어른들을 새삼 생각하곤 하지요. 그리고 그걸 생각하는 일이 요즘의 제 병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돌봄을 생각합니다. 작은 새의 발가락 같은 손가락을 일일이 잡아 종잇장같이 예리하게 살을 벨 수 있는 손톱을 잘라내는 어른의 손을 말입니다. 제가 그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건 없건, 그것이 틀림없이 그때, 꾸준히 있었으니까요.
매일의 완주가 이야깃거리
덕분에 저는 오늘도 원고를 썼습니다. 하지만 잘 쓰지는 못했어요. 가장 어려운 부분에 다다라 한 단어를 쓰고 멈추고 다시 한 단어를 쓰고 멈추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어요. 달아나고 싶습니다. 이 부분 이후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고여 있는가를 생각하면 어서 이 부분을 글로, 문장으로 풀어내야 하는데, 그래야 이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아무 말도 잇고 싶지 않아요. 너무 큰 고함이라서 차라리 침묵하고 싶습니다.
릴게임신천지여신
하루하루 일정한 분량의 아름다운 것을 쓰자고 마음먹었고 그간 나름으로 즐거워하며 이 원고를 채워왔는데 오늘과 어제, 그제, 벌써 보름 넘게 이러고 있습니다. 쓰기가 이렇게 막막할 때에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무엇도 마음에 들일 수가 없습니다. 뭘 입에 넣어도 맛을 모르고 무엇을 봐도 재미가 없어요. 달리러 나가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때를 더 어렵게 버텼겠구나, 생각합니다.
요즘 물가 근처엔 날벌레가 많아서 호수에서 멀리 떨어진 길을 택해 5㎞가 조금 넘는 거리를 달리곤 합니다. 6년 전만 해도 200 m를 연달아 달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한 번도 쉬지 않고 5㎞를 달릴 수 있어요. 마음먹으면 제법 빠르게 달릴 수도 있어서 속이 답답할 때에는 얼굴을 부웅, 하고 쓸어가는 바람을 느낄 정도로 속력을 내 달립니다. 으하하, 웃으면서요. 전에는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이라서 매일의 완주가 제게는 대단한 이야깃거리입니다. 그날그날 몸 상태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며 마음껏 숨을 쉬고 돌아옵니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 습관을 들였다면 어땠을까, 그러지 못해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을 저는 종종 합니다.
장마가 시작되면 지금처럼 자주 달리지는 못하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저뿐은 아닌지, 요즘은 늦은 밤에도 저처럼 달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보고 오는 일이 또 여름밤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7월4일 토요일
제가 폴란드에 있는 동안 한라산에서 죽고 있는 구상나무들을 보고 왔다는 선생님의 편지를 다시 읽습니다. 선생님의 말대로입니다. 기후재난의 과정은 여기서 먼 극지방 어디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요. 파주에서 일곱 번째 여름을 맞는 동안 저는 제 베란다 텃밭에서 해마다 일어나는 일을 통해 그 과정을 보고 속도를 보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우리를 둘러싼 기후 자체가 재난이 되고 있는 상황을 사실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름이 이렇게 뜨거운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어제 저는 반바지 천 벌을 재포장하는 일을 열두 시간 동안 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 시작한 일을 새벽 3시에야 끝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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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들 손이 없어서 비닐 포장을 뜯어 바지를 꺼내고 태그를 새로 달고 도로 포장하는 일을 저까지 단둘이 했습니다. 만원에 파는 반바지에 태그를 달고 도로 접어 포장에 넣고 봉하는 모든 일을 사람 손으로 합니다. 인건비가 더 저렴한 동남아시아로 이 산업이 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반바지 백 벌씩이 들어 있는 상자 열 개를 열고 닫으며 저는 인건비며 물건값이 이렇게 쌀 일이냐, 반바지가 이렇게 많을 일이냐, 이만큼이나 옷이 많을 일이냐, 인간은 천벌을 받을 거야, 천벌을, 하면서 반바지 천 벌을 시장에 내보낼 준비를 거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탄소 발자국을 슬쩍 외면하고 폴란드에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이나 파리나 런던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는 드문 것, 이미 사라진 것이 제가 이번에 겪은 바르샤바와 크라쿠프에 있었습니다. 수줍어하고 삼가면서도 친절하려고 애쓰는 시민들, 먼저 멈춰 서서 낯선 이에게 양해를 구하는 보행자들이요.
폴란드에는 주폴란드 한국문화원의 초청으로 갔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 참석해 몇 가지 행사를 치렀어요.
저는 2014년에 유럽에 처음 가보았고 그때 폴란드에도 처음 가보았습니다. 베를린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포즈난에 잠시 들렀다가 바르샤바로 들어갔지요.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목적지는 오시비엥침이었기 때문에 그때엔 바르샤바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중앙역 인근에 있는 노보텔에서 저렴하게 내놓은 방에서 하루를 숙박하고 이튿날 밤에 크라쿠프로 이동했어요. 그때 바르샤바는 좀 황량해 보인다는 인상 말고는 제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는데, 이번에 구석구석을 걸어보니 아주 매력적인 도시였습니다. 단과대학들이 흩어진 채로 모인 거리엔 지난 시대를 느끼게 하면서도 활달한 분위기가 있었고 구시가지와 옛 성곽 근처도 걷기에 좋았지요. 5월 하늘이 매우 청명했고 오래된 정원에 우거진 나무들과 가로수들의 잎색이 진하고도 부드러워서, 한국의 수도권 대기에 먼지가 많다는 것을 거기서 새삼 알기도 했습니다.
‘국가 폭력을 시민이 막을 수 있나’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도서전에서 관람객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바다이야기 공략법
ⓒXinhua
바르샤바 국제도서전이 있는 시기에 제 책인 〈百의 그림자〉가 폴란드어로 출간되었어요. 이 책을 출간한 타이푸니(Tajfuny) 출판사 대표와 바르샤바 시내를 걸으며 엉망인(저만) 영어로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올해, 해외에서 성립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이 판결로 바르샤바에서 최초로 동성 부부의 결혼증명서가 행정기관에 등록되는 ‘사건’이 있었지요. 한국에서 출국하기 직전에 우연히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제가 폴란드를 처음 방문한 2014년엔 성소수자가 거리에서 집단 폭행을 당해 잔인하게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당시 저와 제 일행이 폴란드에 머무르는 내내 그 사건을 중요한 정보로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12년 사이에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출판사 대표에게 묻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폴란드 안에서의 이스라엘을 향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오래 하느라고 그것을 묻지 못했습니다.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은 대성황이었어요.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현장에서 다정한 인터뷰어를 만나 재미있는 인터뷰를 했고 폴란드 독자를 만나 일일이 눈을 바라보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사인을 하는 동안 목덜미에 비를 맞기도 했지요. 진보 성향이 강해 정부의 압박을 받곤 한다는 라디오 방송국에 들렀다가 방송국 잔디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성소수자 정치인을 보기도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제가 만난 디제이는 한국에서 작가나 시민으로 사는 일보다는 한국 사회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을 향한 깊은 관심이 느껴지는 인터뷰였어요. 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제게 ‘국가 폭력을 시민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습니다. 얼마 전에 해보았다, 라는 대답을 하고 돌아와서 그 즉답에 관해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 대답이 가능했다는 게 뒤늦게 몹시 놀랍기도 했지요.
크라쿠프에서 제가 겪은 나무들이 너도밤나무와 가문비나무였군요. 제 얼굴 위로 꽃가루를 날린 나무들 잎이 침엽 아닌 활엽이었던 。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너도밤나무였을 것 같습니다. 매우 크고 높아서 오래 그 자리를 지킨 나무들 같았어요. 가문비나무는 바르샤바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길에 몇 그루 보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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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루트 사스키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오래된 정원에서도 은청가문비나무를 보았습니다. 바르샤바에서든 크라쿠프에서든 나무들이 아주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어요. 단풍 들 무렵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사진을 찍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인천공항에 핸드폰을 두고 출국하는 바람에 폴란드 체류 내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독일 에브라흐 인근 숲에 있는 오래된 너도밤나무들. ⓒEPA
항공기 탑승 직전에야 핸드폰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어요. 그 뒤로 5분 동안, 제 삶에 몇 번 없을 정도로 맹렬하게 우왕좌왕한 끝에 핸드폰을 포기하고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열 시간 비행을 마치고 노트북으로 핸드폰의 위치를 확인하니 새벽 2시의 인천공항 안내 데스크였어요. 도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괴로웠는데 그 순간부터는 모든 게 기쁘고 모든 이에게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나의 멍청한 실수를 탓하는 마음보다 타인을 의심하는 마음이 내게 더 해롭다는 걸 새삼 알았지요. 제 일행은 이번에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을 좀 했는데 저는 핸드폰이 곁에 없어서인지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면서 열흘 동안 잠을 푹 잤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폴란드는 쇼팽의 나라입니다(자국어로는 ‘호핀’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출판사 대표에게 들었습니다). 쇼팽을 듣지 않고 돌아올 수는 없어서 바르샤바를 출국하기 전날에 구시가지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에 다녀왔어요. 바르샤바 성벽 근처에 있는 오래된 주택의 반지하 공간에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쇼팽을 한 시간가량 들었습니다. 피아노와 창을 마주한 자리라서 연주자의 얼굴과 창밖 거리를 보며 음악을 들었어요. 제게는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휴식 시간에 접수처에 앉아 있던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가 자기는 내 헤어스타일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든다, 하고 수줍게 건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달릴 때 바짝 묶어야 해 성가시고 머리카락 빠짐도 심해 출국 전에 들쭉날쭉 잘라냈는데 그가 보기에 꽤 독특하고 좋았던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요즘 제 반백 머리카락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만나 다행이라고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 먼 데서 행복했습니다.
파주에서, 정은
황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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