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던 당신들이 계셨기에, 우리는 상처를 딛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부디 가족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2022년 11월 15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열린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식'. 독립운동가 이한호(1895~1960) 지사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외증손녀 황소영씨의 담담했던 목소리가 마지막 대목에선 가늘게 떨렸다. 이윽고 이 지사의 유해가 국방부 의장대대의 가슴에 안겨 식장으로 들어섰다. 고국을 떠난 지 107년 만의 귀환이었다.
이한호 지사는 1915년 중국 북간도로 이주해 항일운동 단체 '맹호단'에서 활동했다. 1919년 3월 만세 시위에 참가한 뒤 일제 경찰에 쫓겨 러시아로, 중국 상하이로 피신했다. 다시 스위스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 갔고, 1960년 9월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이로부터 62년이 흘러 마침내 이 지사가 조국의 품에 안겼던 그날, 그 모습을 누구보다 마음 졸이며 지켜본 이가 있었다. 안준범(50) 국가보훈부 전문관이다. 유족과 협의해 스위스에 안장된 이 지사의 유해를 대한민국 국립묘지로 모셔 오는 실무를 담당했다.
안 전문관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립 유공자의 유해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이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혼이 실재한다면 '내가 이국 땅에서 그렇게 피땀 흘리며 독립운동을 한 보람이 있구나'라고 느끼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는 11월에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미국에 각각 안장된 애국지사 3명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할 예정이다. 22일 안 전문관과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15년째 국외 안장 독립 유공자 유해 봉환 및 묘소 실태 조사 업무를 맡고 있는 안준범 국가보훈부 전문관이 202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해외 출장 중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안 전문관은 "결국 내가 하는 일은 독립운동가들이 생애 마지막에 머문 장소를 찾아내고, 그분들의 삶과 흔적을 다시 대한민국의 역사 속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 전문관 제공
-2012년부터 보훈부에서 '국외 안장 독립 유공자 유해 봉환 및 묘소 실태 조사' 업무를 맡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해외에 있는 독립 유공자의 묘소를 관리하고, 훼손된 묘소는 보수를 지원하며,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유해를 대한민국 국립묘지로 모셔 오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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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어디에 묻혀 계시는지 확인되지 않은 독립 유공자의 묘소를 찾는 일도 맡고 있다."
※최초의 유해 봉환은 해방 이후인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에 암매장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으로 모셔 오면서 시작됐다. 정부 차원의 봉환은 1975년부터다.
2019년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봉환된 계봉우·황운정 지사의 유해가 공군 2호기의 정부 주요 인사 좌석에 고이 모셔져 있다. 청와대 제공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한국근대사를 전공하고 들어간 첫 직장이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였다. 조사관으로 2006~2009년 일한 뒤 보훈부에 오게 됐다. 정부로부터 훈·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8,000여 명이다.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윤봉길 의사처럼 누구나 익히 잘 아는 몇 분을 제외하곤, 다른 (독립 유공자) 대부분의 삶은 한두 줄로밖에 남아 있지 않더라. 이분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많이 궁금했다."
※올해 2월 4일 이하전(1921~2026) 지사가 미국 자택에서 10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국외에 거주하는 마지막 독립 유공자였다. 생존 애국지사는 국내에 4명만 남았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들을 기억하고, 사라진 역사의 한 장면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은 이제 묘소뿐이다.
-해외에 있는 묘소를 찾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을 텐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인섭(1888~1982) 지사의 서한을 살펴보던 중, 편지 한 통 상단에서 작성자 이름(유학관)과 우즈베키스탄의 주소를 발견했다. 드문 일이었다. 먼저 '유학관'이라는 인물을 조사해 보니 2012년 건국포장을 받은 독립 유공자였지만, 묘소의 정확한 소재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유 지사는 1892년생, 편지가 오간 시。은 1958년. 단서를 놓고 잠시 생각했다. 편지를 보냈을 당시 유 지사는 60대 중반이었고, (그때 우즈베키스탄은 사회주의 체제였던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었으므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된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사망할 때까지 그 지역 어딘가에 생활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유학관(1892~1986) 지사의 묘소가 있는 우즈베키스탄 시르다리야 지역의 스타라야 공동묘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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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범 국가보훈부 전문관은 '고려인이 많이 묻혀 있다'는 단서 하나만 들고 이곳으로 향했고, 기온 40도를 육박하는 7월의 무더위 속에서도 드넓은 묘지를 누비면서 묘비 하나하나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안 전문관 제공
-생전 주소 하나만 들고 우즈베키스탄에 유 지사 묘소를 찾으러 간 건가.
"유 지사가 말년을 보낸 시르다리야 지역의 고려인 단체를 찾아갔다. 유 지사를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1960·70년대 돌아가신 고려인이 많이 묻힌 공동묘지가 외곽에 있다고만 했다. 직접 가서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스타라야 묘지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다. 혼자 조사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국민 세금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봐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슬슬 조사를 끝내려던 순간,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 있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유 지사의 묘비가. 신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우즈베키스탄 시르다리야 지역의 스타라야 공동묘지에서 안준범 국가보훈부 전문관이 기적처럼 찾아낸 유학관(1892~1986) 지사의 묘소. 안 전문관 제공
※안 전문관은 1년에 평균 5, 6회, 길게는 회당 열흘 이상 국외 출장을 떠난다. 출장 전 준비에만 3~5개월을 들인다. 항공권과 숙소 예약 같은 기본적인 여정 준비부터 각종 신문 자료와 논문, 회고록 등을 낱낱이 살피고, 현지에서 만날 유족 및 관련 단체 관계자와의 면담 일정을 잡는 것도 그의 일이다.
-고생 끝에 묘소를 찾아도 모든 유해를 국내로 모셔올 수는 없다던데.
"유족과 현지 공동체의 의사도 중요하다. 가급적 모든 분이 기쁘게 '한국으로 모셔 가자'고 할 때까지 천천히 기다린다."
※안 전문관이 지난 14년간 찾은 해외의 독립 유공자 묘소는 총 161위다. 이 중 8명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했다.
-유해 봉환이 이뤄지지 않은 유공자의 묘소는 해외 현지에서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현지 공관과 연계해서 때마다 참배를 진행하고, 보훈부도 매년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 현지에 갈 때마다 유족을 꼭 찾아뵙고 관계를 이어 간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갑자기 중국 관리가 찾아와 '당신의 할아버지는 중국의 항일 열사였으니 유해를 모셔가겠다'고 하면 우리도 당황스럽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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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 안장된 김남극(1868~1920) 지사 묘소. 인적이 드문 산속에 위치했던 김 지사의 묘소(왼쪽 사진)가 국가보훈부의 지원으로 단장을 마쳤다(오른쪽). 김 지사는 훈춘 대황구촌에 세워진 동창학교 초대 교장을 지내며 항일운동에 나섰던 인물이다. 봉오동 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이 보복 차원에서 김 지사를 살해했다. 안준범 국가보훈부 전문관 제공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미인 건가.
"국가가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낯선 땅에서 고생한 독립 유공자들을 이제는 자유롭고 국격 높은 대한민국 땅으로 모시는 것이야말로, 그분들이 꿈꿨던 조국을 보여 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낯선 나라 산골짜기에 묻히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으셨을 것이다. 그분들의 희생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이다."
-2021년 이뤄진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유해 봉환은 감동적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감동 깊었다. 국가의 모든 자산과 역량이 총투입된 특별한 사례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과 카자흐스탄 양국 정상이 전격 합의하면서 유해를 모시기로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기약 없이 연기되기도 했다. 실무자로서는 막상 묘역을 팠는데 유해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부디 이곳에 계시기를…' 생각을 했다."
-홍 장군의 유골을 수습했을 때 감회가 남달랐겠다.
"생각보다 덤덤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질 줄 알았는데. 감회에 젖어 있을 겨를도 없이 '이제 다음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홍 장군 유해를 모시기 위해 활주로에 주기돼 있던 공군 특별 수송기를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더라. 비행기 동체에 적힌 '대한민국' 네 글자가 그렇게 반가올 수 없었다."
안준범 국가보훈부 전문관이 국외에 산재한 독립 유공자 묘소들을 찾아 그들의 유해를 마침내 조국의 품으로 모셔 왔던 지난 14년간의 기록을 담아 지난달 펴낸 '무덤 찾는 남자'. 안 전문관은 "이 책이 한국 독립운동사의 마지막 장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틈새책방 제공
-꼭 찾아서 모셔 오고 싶은 독립운동가의 묘소가 있다면.
"봉오동과 청산리, 연해주 등에서 직접 총을 들고 싸웠던 분들의 묘소를 찾고 싶다. 이름도 없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어느 산야에 봉분이라도 제대로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어딘가에 묻혀 계신 분들은 진짜 기를 쓰고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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