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선사박물관의 상설전시실. 고인류 골격 모형과 여러 동물 박제가 전시돼 있다. 사진=전곡선사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여정을 보여주는 고인류 복원모형 사이로 사자와 하이에나, 얼룩말을 비롯한 여러 동물이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서 있다. 벨기에 마사이갤러리의 뛰어난 기술로 제작된 동물 박제들이다.
이 박제들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인류의 진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과 기후에 적응해 온 과정'이라는 박물관의 전시철학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박물관은 개관 때부터 인류의 진화를 석기와 화석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동물의 세계까지 함께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박제 전시는 동굴벽화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말과 들소, 사슴과 매머드 등 당시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했던 동물들이 동굴 깊숙한 벽면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사냥의 대상이면서 때로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동물은 선사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동굴벽화를 지나 박제 동물들과 마주하다 보면, 수만 년 전 벽에 그려졌던 동물들이 걸어 나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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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선사박물관의 상설전시실. 고인류 골격 모형과 여러 동물 박제가 전시돼 있다. 사진=전곡선사박물관
개관을 준비할 당시 정교하고 값비싼 박제를 열린 공간에 설치하자 많은 자문위원들이 유리벽 설치를 권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벽을 세우지 않았다. 박물관은 가까이에서 느끼고 교감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큰 훼손 없이 전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관람객들의 성숙한 관람문화가 만들어 낸 자랑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동물 박제는 어느덧 박물관의 중요한 자산이 됐다. 제대로 된 자연사박물관을 만나기 쉽지 않은 우리나라, 특히 문화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기북부를 생각하면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주먹도끼와 고인류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을 만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함께 배운다.
이제 개관을 준비하며 품었던 꿈을 한 단계 더 확장할 가능성이 바로 DMZ에 있다. DMZ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이 지역의 동·식물과 생태환경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표본과 사진, 영상, 디지털 기록을 축적해 가칭 'DMZ 생태관'을 조성한다면 박물관의 정체성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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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선사문화와 동떨어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주먹도끼를 만들며 환경에 적응했던 인류와 빙하기를 살아낸 동물들, 그리고 오늘날 DMZ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모두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선사문화와 자연사, 생태가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는 것이다.
2029년 4월, 전곡리 유적 일원에서 세계 구석기 엑스포가 열린다. 그때 세계의 관람객들이 연천에서 만나야 할 것은 주먹도끼만이 아니다. 한탄강의 지질과 전곡리의 선사문화, 인류 진화의 긴 여정과 DMZ의 생태환경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펼쳐져야 한다.
15년 전 우리는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살아 있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 그 꿈을 넘어 주먹도끼에서 인류의 진화로, 동굴벽화와 자연사에서 DMZ 생태로 이어지는 박물관의 다음 도약을 위해 경기도의 지속적·장기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2029년, 개관을 준비하며 심었던 작은 씨앗이 세계인이 찾는 무대에서 더욱 크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한용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진화의 긴 여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