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했지?” “남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진 것 같아.” “쉬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피곤할까?”
중년이 되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직장과 가정에서 큰 문제가 없어도 웬지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처지가 아쉽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과거의 실패나 선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몸은 쉬어도 머릿속은 쉬지 못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의 역사학자 출신 번아웃 전문가인 안나 샤프너 박사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샤프너 박사 역시 번아웃을 경험했다. 2023년까지 켄트대 역사학 교수로 일했지만, 자신이 애초부터 교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학계를 떠났고, 지금은 번아웃과 기력 고갈을 전문으로 하는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에 대해 배우는 것은 좋아했지만, 박사학위에 도전했던 이유에는 “나는 멍청하다”는 내면의 이야기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그는 돌아봤다. 강의하고 논문을 제출할 때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지나치게 준비했고, 타인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애썼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번아웃을 피하지 못했다. 샤프너 박사는 번아웃을 “휴식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극심한 피로”라고 정의한다.
그가 현재 만나는 고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40~60대 여성이다. 교수와 CEO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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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이 많은 돈을 벌거나 명망 있는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후 자신이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며 “결국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샤프너 박사가 영국 텔레그래프지를 통해 제시한 ‘중년 번아웃을 피하는 방법 4가지’를 정리했다.
① 내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차린다
샤프너 박사를 찾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반복되는 생각은 의외로 비슷했다고 한다.
“나는 멍청해.” “나는 못생겼어.” “나는 나쁜 사람이야.”
이렇게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면 모든 에너지가 실제 삶이 아니라 내면의 심리적 전쟁에 쓰여 관심사를 외부로 돌리기 어려워진다고 샤프너 박사는 말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세상이 나쁜 곳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수록 나쁜 것만을 자꾸 보게 되고, 중년까지 그러한 태도를 유지하면 무력감과 과부하, 번아웃에 갇히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첫 번째 단계는 머릿속 나쁜 생각, 부정적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샤프너 박사는 이를 ‘마음의 관찰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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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자신이 평소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직접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샤프너 박사는 “이처럼 내면 이야기를 외부로 끌어내 기록해 보면, 자신이 현실에서 어떤 증거만 골라보고 있었는지,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한 해석을 내려 삶을 악화시키고 있었는지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②그 이야기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찾아본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발견했다면, 그다음 단계는 그 생각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부모나 선생님이 한 말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의 경험이나 직장에서 받은 평가, 아니면 배우자나 친구의 말 때문일 수도 있다. 샤프너 박사는 “이러한 생각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는 행동 자체가 생각을 풀어내는 출발.”이라고 설명한다.
샤프너 박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쁜 기억이나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부정 편향(Negative Cognitive Bias)’을 갖고 있어 긍정적인 요소에 동일한 비중과 중요성을 두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번아웃과 그에 따른 감정적 혼란이 이런 과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③잘했던 순간을 일부러 떠올린다
우리 뇌는 부정적인 경험을 쉽게 기억하면서도 잘했던 일, 행복했던 순간은 무심코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샤프너 박사는 “과거에 자신이 성공적이고, 행복했으며, 자신감 가득 찼던 순간을 구체적으로 다시 떠올려 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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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꼭 최면 치료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자신이 가장 잘 나갔던 순간은 언제였고,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기분이었는지 가능한 한 자세히 떠올려 보면 과거 좋았던 시절을 기억해 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실패한 기억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④과거에 머물지 말고 앞으로 원하는 것을 생각한다
마지막 단계는 과거에서 미래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이나 실패를 없었던 일처럼 생각하라는 뜻이 아니라 “잘못된 일에 대해 좀 더 자비로운 설명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어떤 말을 해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무조건 자책하기보다는 ‘당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거나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게 됐다’는 식의 균형 잡힌 설명을 찾아보는 것이다.
샤프너 박사는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만 아는 것보다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갖는 것이 훨씬 강력한 동기가 된다”고 말한다. 즉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면 퇴사 자체를 목표로 두지 말고 그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혼자가 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와 삶을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번아웃을 피하는 과정은 단순히 더 많이 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계속 살펴보고, 그것이 얼마나 공정하고 사실에 가까운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샤프너 박사는 이를 “메타인지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라며 “매번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항상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내면의 이야기를 포착하려고 노력하고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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