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변형을 통해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여성의 이야기 ‘티탄’. 왓챠·영화특별시SMC 제공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추석 연휴가 다가왔어요. 이럴 땐 이런 영화를 보며 나흘을 보내면 어떨까요? 상황별로 보면 딱 좋을 영화를 문답 형식으로 알려드려요.
① 애인 없는 1인 가구 30대 청년입니다. 고향에 가지 않고 8평 원룸에서 편의。 도시락에 감자칩 먹으면서 홀로 지낼 거예요. 긴 시간 보내는 데 도움 될 영화를 알려주세요.
―최근 개봉 영화론 헝가리 터르 벨러 감독의 ‘사탄탱고’(1994년)를 단연 추천해요. 러닝타임이 7시간 19분이라 해가 뜰 때 극장에 들어가면 해가 질 때 나올 수 있어 하루가 순삭이죠. 제목만 보고 사탄이 탱고 추는 오컬트-액션 영화로 오해하시면 아니 되어요. 앞으로 6보, 뒤로 6보인 탱고의 스텝을 모방해 12개의 섹션 구조를 가졌다는 뜻이거든요.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황량한 헝가리의 한 집단농장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인간의 탐욕과 허기, 원죄적 배신과 기만, 거짓된 구원을 그렸어요.
너무 길어서 지루하지 않느냐고요? 심지어 흑백영화라 관객의 절반은 부지불식간 램 수면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해요. 하지만 인터미션도 있고 여러 인물이 차례로 등장해 일련의 사건들을 견인해 가므로 439분을 올 타임 주무시긴 힘들 거예요. 잠에 저항하려 하지 마시고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하는 초현실적 모먼트를 경험하겠다는 생태 친화적 태도가 필요해요. 수십 마리의 소들이 축사에서 나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7분 30초짜리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게 첫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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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에 받은 물로 여성이 뒷물하는 장면을 장장 1분간 보여주는 이 관찰적 영화는 시간을 압축하거나 쪼개는 상업영화들과 달리 영화 안과 밖의 시간을 일치시키거나 오히려 영화 속 시간을 실시간보다 길게 늘리는 ‘의식의 시간’을 꾀하죠.
극장에 가기 귀찮다고요? 집에서 보실 만한 긴 영화론 대만 뉴웨이브의 선구자 에드워드 양 감독의 3시간 57분짜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년)이나 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5시간 28분짜리 ‘해피 아워’(2015년)도 볼만해요. 이들 영화는 오줌 참고 완주할 만큼 제법 흥미진진. 참,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모인 47인의 자객’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고전 ‘주신구라’를 거장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영화로 옮긴 222분짜리 흑백영화 ‘겐로쿠 주신구라’(1941년)도 있어요. 다만 액션이 없고 말로 죄다 때우기 때문에 의지력이 밭 가는 황소 수준인 분들께만 추천해요.
영화에 적극 개입해 조목조목 분석하는 능동적 인간으로 연휴를 보내고 싶다고요? 그러면 옥에 티를 발견하는 재미가 삼삼한 영화들을 추천해요. 배우 정우가 주연과 공동 감독을 겸한 ‘짱구’(2026년)를 뜯어보세요. 사랑에 배신당한 주인공이 한밤중 귀가해 전등 스위치를 켰는데 정전으로 불이 들어오지 않고 주인공의 심정은 가일층 어두워지죠. 놀랍게도 어항의 전등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는 놀라운 부조리! 아, 미국의 문제적 감독 아벨 페라라의 전설적 복수극 ‘복수의 립스틱’(1981년)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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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남성성에 유린당한 여인이 수녀복 입고 새빨간 립스틱 바른 채 나쁜 놈들 다 쏴 죽인다는 설정의 이 소수 취향 저예산 영화에 등장하는 긴 수염에 까만 선글라스를 쓴 중동 부호는 누가 봐도 미국 백인이에요(예산 문제인 듯). 피의 축제를 앞두고 펼쳐지는 광란의 재즈 연주 장면은 더욱 압권. 분명 화면에선 트럼펫을 신나게 불어 재끼는데, 실제론 트럼펫 아닌 색소폰 소리라서 귀를 의심하게 되어요.
② 연휴엔 기름진 음식을 폭식해 몸무게 2∼3kg은 금방 늘어요. 살 빼는 데 도움 되는 영화도 있을까요?
―상상초월 수준으로 역겨워서 마운자로보다 다이어트에 100배 효과적인 영화가 있어요. 보고 나면 음식은 입에도 대기 싫어지니까요. ‘서스페리아’ ‘본즈 앤 올’의 루카 과다니노 감독을 넘어서는 구토 쏠림 영화계의 신성(新星)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초기작 ‘로우(Raw)’(2017년)를 단연 추천해요. 영화는 달걀도 못 먹는 완벽 채식주의자 소녀가 대학 수의학과에 진학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혹독한 신고식을 거치는 과정에서 토끼 콩팥을 날로 먹은 소녀가 자기 안에 숨은 식인 욕망을 깨닫게 된단 이야기. 급기야 언니 손가락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소녀의 모습과 더불어 자매가 서로를 뜯어먹는 순간을 눈 감지 않고 끝까지 보아낸다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다고 확신하시면 되어요. 완주하는 자체로 인간승리니까요. 의의로 웰 메이드인 이 영화를 시작으로 몸과 욕망, 사랑과 파괴라는 화두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끝에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두개골에 티타늄을 이식받은 뒤 자기 얼굴을 깨부수면서 신체 변형을 통해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여인을 담은 ‘티탄’(2021년)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요. ‘로우’와 ‘티탄’을 연달아 보시면 족히 3kg 감량은 보장!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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