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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쪽 구좌읍의 아름다운 마을 세화리. 이 근처에는 최근 '레트로 문방구'로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공간이 있다. '글씨 써주는 할아버지 사장님'으로 유명세를 탄 이 곳은 이 근처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모를 리 없는 역사가 오랜 공간이다. 바로 '삼영상회'.
오늘도 이 곳을 지키고 있는 서형래(81)씨를 만났다.
먹고살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1945년 전남 함평 출신인 그는 19살때 여행을 위해 들렀던 제주에 평생 머물게 됐다. 제주시내에서 정음사라는 이름의 서。을 운영하기도 했다. 스물 넷 되던 해에는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뛰어다니던 때다.
그가 삼영상회를 맡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누군가 내놓은 이 가게를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운영을 시작했다. 이미 1970년대부터 도장가게를 운영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생계 유지가 되지 않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가 둘인데, 학교도 보내야 되고, 또 우리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래도 모든 것이 다 시작을 하면 어떻게 되더라고요. 사실 저 명찰의 명자도 몰랐는데 하게 된 거고, 도장의 도자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1990년대는 문방구의 전성기였다. 신학기에는 아이들이 문방구 안부터 바깥 거리까지 줄을 설 정도였다. 세화 뿐 아니라 제주 동쪽 인근 지역의 학생과 부모, 주민들이 이 곳을 끊임없이 찾았다. 마주치는 사람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이들이 어른까지 자라는 과정과 마을의 변화를 지켜본 그의 눈은 기억의 타임캡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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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여기 다니다가 육지 나가서 있다가 결혼한다고 들어와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옛날에 여기 근청(하도리)에 전경대(전투경찰대)가 있었는데 대원들이 진급할 때마다 계급장 바꿔달라고 찾아왔는데, 그 사람들도 결혼해가지고 많이 찾아와요. 지금도 찾아와요."
만물상에는 정겨움이 흐른다
삼영상회는 대서소(代書所, 행정·법률 문서 작성을 대신해주던 곳)로서 기능했다.
그는 글을 모르거나 서식 작성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출생, 사망 신고서 등 각종 관공서 민원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기도 했다. 마을 가게 곳곳에 간판 글씨를 써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세화리의 생선가게, 식당 등지에는 그가 써준 손간판과 글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최근까지도 제사 지방(紙榜)을 써주기도 한다.
문제(?)는 그가 돈을 제대로 받지 않고 그냥 써준 탓에 큰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 그의 따스한 마음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론 요즘 들어 벌이는 녹록치 않다. 문방구를 열고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는 "이 가게 자체로 해서 생활하기는 힘들다"며 "전에 벌어놓은 거 쓰면서, 내 집이니까 내가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삼영상회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듯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작지만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갑자기 관광객들이 찾아와 '글씨 좀 써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한 것. 단 돈 몇 천원에 그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다.
손글씨 덕에 삼영상회는 최근 관광객들의 '레트로 명소'로 꼽히게 됐다. 지금도 손수 먹을 갈고, 손님들이 요청하는 문구를 종이 위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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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시간 단련한 그의 글씨에는 장인의 향기가 느껴진다. 어릴 적 학당을 다녔고, 수십년을 꾸준히 적어내려간 노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손글씨는 삼영상회가 다시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다. 사장님의 수십년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제주의소리
"올 봄에 한 분이 와서 우연히 제가 써놓은 것들을 보고 '저도 써주세요' 해서 써줬더만 그것이 계기가 되가지고... 뭐 어디에 올렸던 모양이에요. 그래가지고 요즘도 많이 찾아와요. 보통 둘이 오면 애정에 관한 덕담을 쓰기도 하고, 제일 많은 게 '인생은 기세다' 이걸 제일 많이 써달라고 하네요. 처음에 올려준 그 분이 고맙고, 또 나 심심치 않으니까 괜찮고 그래요."
지금도 코팅이나 복사, 인쇄를 맡기는 동네 주민, 무언가의 수리를 맡기는 이들까지 이 곳을 찾는다. 온 김에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바둑을 두기도 한다. 만물상이자 동네 사랑방이다.
지역주민과 관광객, 어린 학생들과 나이 지긋한 단골들은 이 곳에서 교차한다. 그들과 연결되며 형성된 마음 속 따스함은 그가 이 곳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날 잊지 않고 찾아준다는 거, 그게 제일 반가운 일이에요. 또 밭에 심은 것도 하나씩 갖다주고, 나눠먹자고 그렇게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참 보람을 느껴요.
제가 힘 닿는 데까지는 삼영상회를 계속 하려고 해요. 활동할 수 있을 때 까지는. 잊지 않고 찾아주는 게 제일 고맙고요. 사람들이 찾아온 만큼, 그 분들에게 잘해서 삼영상회가 있는 한 내가 이 곳을 지킬 거에요."
이전 주인이 운영하던 시기까지 합하면 삼영상회의 역사는 70년이나 된다. 2000년대 초반 원래 위치에서 바로 옆 건물로 옮겼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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