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리보이> 스틸
ⓒ 필름다빈
체육 교사 '세르지오'는 알프스 중턱 마을 '레미스'에서 3개월 대체근무를 맡았다. 구불구불한 산간도로를 뚫고 도착한 마을은 외부 접근이 힘든 산골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제일 행복한 동네로 명성이 자자하다.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그로선 안성맞춤 장소다. 주민들은 친절하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리 행복할 수 있을까?
감춰진 비밀은 15살 소년 '마테오'다. 사람들은 소년을 마치 성자처럼 받들며 밤마다 그를 만나려고 예배당에 모인다. 그 덕분에 과거 끔찍한 재난의 참화를 딛고 일상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외지인인 세르지오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느 밤 소년의 신통력을 체험한 그 역시 떨어지지 않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꺼림칙했던 마을이 ..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게 정상일까?
깊은 산골 숨겨진 현세의 유토피아를 발견하다
주인공이 도착한 산골 마을은 세상과 격리된 것만 빼면 동화 속 유토피아를 보는 듯하다. 사람들은 이웃에게 친절하고 타인의 일에도 기꺼이 관심을 보인다. 늘 환하게 웃으며 사니 공권력도 필요가 없어 뵌다. 그야말로 노장 사상이 꿈꾸던 목가적 이상 사회가 눈 앞에 펼쳐진 듯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심지어 15년 전 어느 집이나 가족 중 한 사람쯤 희생된 비극적 열차 사고를 겪은 동네에서 말이다. 마을이 해체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인데.
사회적 참사를 겪은 주민들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참이다. 그들의 위태로운 일상을 간신히 지탱하는 건 21세기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중세적인 성자 숭배다. 15살 소년이 포옹하면 뼛속 깊이 저미듯 스며든 고통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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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교회는 예배 대신 밤마다 잠들기 두려운 주민들이 고해성사 줄을 서듯 마테오를 기다리는 대기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신부가 이를 막기는커녕 마치 이교도 사제로 전직한 것처럼 성자 숭배에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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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다빈
물론 소년이 밤마다 헌신한 덕분에 주민들은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악몽도, 육친을 상실한 슬픔도 지우개로 슥 지운 듯 사라지니 가히 기적이라 할 만하다. 마테오는 학교에서도 신성한 존재로 모든 면에서 열외 처분이 당연시된다. 아버지인 '마우로'는 아들을 매니저처럼 실어나르며 일정을 관리한다. 엄격한 규칙에 따라 모든 마을 주민이 골고루 주기적으로 지상에 강림한 성자를 '알현'할 수 있기에 평화와 행복이 유지된다.
15년 동안 어느새 마테오는 마을에서 물이나 공기처럼 '필수 공공재'로 자리매김한다. 소년이 없다면 레미스의 존속은 상상할 수 없을 지경. 주민들도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마을은 보이지도 느낄 수도 없는 신이 아니라 그 현신인 아이의 얼굴을 한 존재가 수호하는 셈. 하지만 그 때문에 소년은 또래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이성에 눈을 뜨거나 장래 희망을 기대하는 것과는 판이한 삶 속에 그저 '존재'한다. 주민들의 고통과 슬픔이 씻기면 그 구정물은 과연 어디로 갈까?
누군가의 희생과 착취로 유지되는 낙원이란 허위
생각해보면 오싹한 일이다. 그 형용할 수 없는 고통, 몸부림치던 끔찍한 기억이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소년의 포옹 한 번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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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절대자의 권능이 아니라면 사라진 부정적 기운은 과연 어디로 흘러든 걸까?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왜 누구도 이걸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물론 주민들도 이 문제를 모를 리 없다. 다만 효능이 너무 탁월하기에 눈 감고 외면하는 것. 마우로는 세심히 자식의 상태를 살피며 웬만한 아이돌 매니저급으로 '보호'하느라 애를 쓴다.
세르지오는 외부 관찰자의 시선으로 제자가 된 마테오를 지켜본다. 어른들의 주장대로 마을을 구원한 성자라 칭송받던 소년은 마치 고립된 섬처럼 친구도 사귀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었다. 한창 호기심과 도파민으로 뛰어다닐 나이에 수도승처럼 금욕을 강요당하는 것 아닐까. 유도 선수로 명성을 떨쳤던 임시 교사는 마테오에게 격투기를 가르쳐 스트레스를 풀도록 돕고자 한다. 하지만 교장부터 부모까지 모두가 이구동성 반대한다. 심지어 수위마저 거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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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집엔 이유가 있다. 어차피 석 달 있다가 떠날 텐데 왜 무리수를 두는 걸까?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주변 설득에도 포기하지 않는 데엔 세르지오 역시 마테오로부터 오랜 세월 갈망하던 평온과 안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깊은 안갯속을 떠도는 듯 기이한 불안도 심화한다. '타락한 자'라 주민들이 비난하는 옆집 이웃은 뭔가를 아는 눈치다. 게다가 유도 수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소년의 아버지는 세르지오와 독대한 자리에서 마테오를 둘러싼 비밀에 관해 고백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지어낸 이야기인지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주민들이 애초부터 악의적으로 아이를 착취한 건 아니란 말은 거짓부렁이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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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외지인인 세르지오에게 마을의 현 상태를 깨지 말라는 일종의 협조 요청인 셈.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한 체육 교사는 혼란에 휩싸인다. 자신이 선이라 믿던 행동이 어쩌면 과한 오지랖이던 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통제할 수 없다는 당위
여기에서 어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발화한다. 수도사처럼 억제된 15살 소년이 자아를 갖고 욕망을 꿈꾸기 시작한 것. 초월적 능력을 지닌 마테오가 통제될 수 없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마우로가 걱정하던 상황이 실제 하나둘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세르지오의 판단은 조금 다르다. 한 명의 인간이 실험실의 쥐처럼 '사육'되다시피 강요된 삶을 사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냐는 질문이다. 팽팽한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은 。. 커져만 간다.
소년은 백치 상태라 해도 좋다. 물론 최소한의 교육은 제공했지만, 철저히 마우로의 통제 아래 '보호'되던 삶이다. 자기 능력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게 세르지오와의 만남으로 봉인이 풀렸다. 처음엔 마침내 제자가 인간성을 회복한다며 뿌듯하던 선생님으로선 예상하지 못한 폭주다. 15살 청소년이 얼마나 시한폭탄 같은 존재인지 간과한 결과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로부터 반세기가 지나도 딱히 변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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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처음 맛본 자유와 쾌락을 포기할 수 없다. 왜 마을 주민들의 온갖 어둠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고단한 나날만 보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살라고 태어난 삶인가. 세심한 연착륙 과정 없이 불쑥 솟구친 가공할 능력이 사방에서 파열음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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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도 마우로도 마을 주민 누구도 더는 억제할 수 없다. 그 나이 청소년이라면 당연한 과정이지만, 문제는 마테오가 신적 존재로 마을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것. 소년 없이 지속 불가능한 환경이 흔들린다.
사실 평화로운 유토피아처럼 보이던 마을 내부는 사상누각이라는 암시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외톨이지만 주민들의 질서에 저항하는 세르지오의 이웃 남자도, 모두가 수용하는 공평한 포옹 분배 체계에서 벗어나 '자유이용권'을 누리는 (세르지오와 은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술집 여사장도 있다. 누구나 마테오와 알현하는 지분을 남보다 먼저, 더 많이 차지하고 싶은 갈망을 감춘 채 살아간다. 마우로의 극단적 통제와 유력자들 협조로 간신히 버티는 데 불과했던 것.
사회적 재난의 치유를 고민하게 만드는 공포영화라니
이탈리아 공포 영화라면 끔찍하고 지저분한데,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비주얼을 떠올린다. 하지만 <홀리보이>는 그런 '제식화'와 궤가 다른 독창적 공포물로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질 만하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반세기가 지나도 10대의 위험한 욕망과 초능력을 결합한 청소년 공포물의 영향력은 <홀리보이>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엑스맨 유니버스'처럼 평범한 이들에 신 혹은 괴물로 취급받는 돌연변이들이 겪던 수난을 떠올리면 된다.
아울러 21세기 장르영화의 새로운 조류로 각광받는 '포크 호러'의 기운과도 자연스레 만난다. 이탈리아어 원제는 "La valle dei sorrisi(미소의 계곡)"인 바, 레미스 마을이 외지인이 다가가기 극도로 힘든,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을 고립된 환경이며 주민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거의 완벽한 포크 호러의 기준에 부합된다. '닫힌 사회', '폐쇄적 공동체'의 이상적 조건을 갖춘 마을이 이탈자를 허용하지 않는 강요로 유지된다면 그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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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보이> 포스터
ⓒ 필름다빈
말초적 충격 요법에 의존하는, 일명 '。프 컷' 효과로 깜짝 쇼를 남발하는 식상한 공포물과 격이 다른 사회적 주제를 두텁게 갖춘 영화의 미덕을 누누이 설파하다 보면, 문득 질문을 떠올릴 법하다. 의미 있고 복선 많고 해석 여지 다양하고 다 좋지만, 정작 장르물로서 무섭냐는 물음표다. 교육사회학 영상교재 보려고 극장 찾아야 하냐는 항변인 셈. 실제로 영화는 그저 화목한 이상향 풍경 이면에 숨은 추악한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한참 흐른다.
작품의 테마는 사회적 공포로 확연히 기운다. 사회적 참사를 겪은 이들의 고통을 누가 함부로 잊자고 말할 수 있으랴. 레미스의 열차 사고는 제대로 조명되거나 보상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 유무형의 피해는 온전히 살아남은 이들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그래도 산 사람이 계속 살려면 과거를 묻어두고 미래로 향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퇴행적으로 버틴다면? 이 영화는 그 극단적 사례를 '초현실적 능력자가 존재한다면?'이라는 물음표와 함께 제출하는 셈이다. 묵직하다.
그렇지만 명백히 <홀리보이>는 공포물이다. 요즘 상업영화가 너무 친절하다 보니 관객은 감독이 곳곳에 심어둔 퍼즐을 찾아 추리하는 수고를 잊곤 한다. 하지만 영화는 끈기 있는 예열 과정을 통해 후반 들어 한꺼번에 분출하는 히든 카드를 꼭꼭 숨긴다. 일단 화산 폭발하듯 공들인 공포가 오감을 옥죄기 시작하면, 왜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솔직히 '찍고 자르고 썰어대는' 고어 장르 백 편보다 <홀리보이>의 절제된 폭주가 몇 곱절은 더 무서웠다.
<작품정보>
홀리보이
The Holy Boy
2025 이탈리아 공포, 스릴러, 드라마
2026.10.07. 개봉 123분 15세 관람가
감독 파올로 스트리폴리
출연 미켈레 리온디노, 로마나 마조라 베르가노
수입/배급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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