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날’을 하루 앞둔 26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 저시력 시각장애인 최선호씨(44)가 영화표 구매를 위해 키오스크 앞에 멈춰 섰다. 이 키오스크에는 화면 터치 시 글자가 크게 보이는 ‘돋보기 기능’이 있긴해도 시각장애인인 선호씨가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메뉴가 작고 다양한 음료 주문란에선 일일이 돋보기 기능을 켜고 메뉴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
예매를 마친 뒤에도 영화 한편을 보려면 난관의 연속이다. 이날 처음 동행인 없이 영화관을 찾은 그에게는 상영관 내 좌석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최대한 자리 찾기가 쉽도록 가장 뒷줄의 제일 오른쪽 자리를 잡았지만 상영관 내 좌석번호에는 。자가 없어 이마저도 찾는데 한참 걸렸다. 선호씨는 “전맹 시각장애인은 .자 표기나 직원의 안내 없이는 자리를 찾아가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겨우 자리를 잡고 관람을 시작했다. 선호씨가 이날 고른 영화는 <호프>.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상영판이 아닌 일반판이다. 영화 초반 인물들이 각기 다른 장소로 흩어져 동시에 외계인을 쫓는 장면이 나왔다. 선호씨는 바로 혼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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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전환이 빠르게 진행될 때 화면에 대한 해설 없이는 저시력자인 그가 등장인물의 행동과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대사만으로는 현재 상황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며 “‘(배우) 황정민은 사람들을 찾고 총소리를 내는데, 왜 조인성은 조용한 곳에 있지’ ‘둘이 다른 곳에 있나’ 싶어서 영화 내내 맥락을 짚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시각·청각장애인에게 영화관의 문턱은 예매부터 입장, 관람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높기만 하다. 예매, 입장을 위한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건 둘째 문제다.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인물의 표정과 동작, 장면 전환 등을 설명하는 화면해설이 필요하다. 청각장애인에게는 대사와 소리 정보를 전달하는 자막이 필요하다.
이를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상영판 자체가 극히 드물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영화관 3사가 상영한 528만6565회 중 한글 자막과 화면 해설을 제공한 배리어프리 상영은 1115회(0.02%)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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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장애인 관객은 배리어프리가 아닌 영화를 보게 되고, 영화 일부를 이해하지 못한채 관람하거나 동행인 설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선호씨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재화와 용역을 구입하는 소비자이자 시민으로서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보고 싶은 영화를 온전히 관람하도록 보장하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영화관이 시각·청각장애인에게 화면해설·자막과 이를 수신할 수 있는 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판결했다. 장애인들이 영화 사업자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10여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배리어프리 상영 비중이 전체의 3%면 충분하다고 본 2심 판결도 파기환송했다. 이제 배리어프리 비중을 다시 정하는건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몫으로 남았다.
김재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교수는 “수신 기기는 영화관이 제공하고 자막·화면해설은 영화 제작·배급사가 맡는 구조가 이상적”이라며 “영화 산업에서 힘이 센 영화관이 수신기기를 제공하는 환경으로 바꾼다면, 이미 넷플릭스 등에 화면해설·자막을 제공하고 있는 제작·배급사들이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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