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에서 치즈 스틱을 주문하고 영수증을 받았는데 “치즈가 늘어날 때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 놀이공원 광고 영상에선 가족들이 햄버거를 먹는 레스토랑의 의자가 모두 뒤집혀있다. 여름 한 철 납량 특집으로 지나가고 마는 무섭고 이상한 이야기, ‘괴담(怪談)’이 일 년 내내 흥하는 콘텐트가 되고 있다. 단순히 즐기는 장르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마케팅 문법이 되고 있다는 .이 과거와 다르다.
괴담 한 줄, 이상한 사진 한 장이 만드는 기묘한 세계가 이목을 끄는 콘텐트가 되고 있다. 사진은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가을 시즌 축제 '기묘한 세계의 초대' 포스터. 사진 롯데월드 어드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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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언어 된 괴담
지난여름 메가MGC커피는 괴담 한 줄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여름 신메뉴 출시를 기념해 벌인 영수증 이벤트로, 키오스크에서 관련 메뉴를 주문하면 영수증 상단에 문구 한 줄이 더 인쇄되어 나오는 방식이다. “붉은 스무디의 흔적을 남기지 마십시오” “등 뒤가 서늘해도 음료에 집중하십시오” “노란빛에 홀려 컵을 놓지 마십시오” 등이다. 모호함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른바 ‘나폴리탄 괴담’류다.
어딘가 수상한 한 줄의 문구에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영수증 인증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X(구 트위터)의 한 게시물은 490만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메가MGC커피 측에 따르면 당시 신메뉴 6종은 2주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했다.
메가MGC커피는 영수증에 나폴리탄 괴담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를 출력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사진 메가MGC커피
이런 괴담 마케팅은 공공 기관 소셜 미디어로도 번졌다. 덕수궁은 지난 7월 공식 인스타그램에 ‘덕수궁 야간 관람객을 위한 필수 지침’이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존재하지 않는 흰색 유니폼의 궁궐 해설사를 따라가지 말라는 수칙이 포함된 나폴리탄 괴담 형식의 게시물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균열을 내는 방식의 공포 문법은 놀이 공원 광고 영상에도 이어졌다.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이달 초 공식 인스타그램에 ‘미공개 CM’이라는 영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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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부모 뒤편으로 길게 늘어진 형체가 서 있고, 한참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행복한 커플을 배경으로 창밖에 검은 손자국이 여러 개 찍히는 식이다. 롯데월드의 가을 시즌 축제인 ‘기묘한 세계의 초대’를 홍보하는 온라인 광고다. 대놓고 공포물이 아니라 현실감이 있으면서도 미묘한 불편감을 심어준다는 게 기존과 다르다. 해당 영상 댓글에는 “이번 롯데월드 광고 ‘감다살(감각이 살아있다)’이다” “이게 공식 영상이라고?” “이러니까 더 가고 싶네” 등 호평이 이어졌다.
평범한 일상의 장면에서 마치 화면 오류가 난 듯 기이한 장면으로 전환하는 롯데월드의 광고 영상. 사진 롯데월드 공식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롯데월드 측은 “밝고 신나는 이미지가 강한 테마파크에서 비현실적이고 기묘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설정이 신선한 재미와 반전을 줄 것이라 기대했다”며 “SNS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접목하면서도 롯데월드만의 차별화한 호러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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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부터 공연가까지 ‘괴담’ 흥행 중
최근 유튜브에서 주목받는 콘텐트에도 괴담이 빠지지 않는다. 구독자 123만명의 ‘돌비 공포라디오’ 채널의 괴담 영상 평균 조회 수는 약 50만회다. 시청자가 직접 목소리로 출연해 자신이 겪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누적 조회 수는 지난해 말 11억7000만 회에서 현재 14억5000만 회로 10개월 남짓 만에2억8000만회가량 늘었다.
서。가에선 괴담이 출판 IP(지식 재산권)가 됐다. 최인서 작가의 책 『한국사 이상 현상 연구원』으로, 나폴리탄 괴담의 형식에 한국사를 엮었다. 유적지에서 잇따라 실종 사건이 벌어지고, 이상 현상을 조사하는 국가 비밀기관이 사건에 뛰어든다는 설정이다. 지난 8월 출간 직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현재까지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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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가 겪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 돌비공포라디오(왼쪽)와 도시 괴담을 소재로 삼은 탈출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도시괴담' 포스터(오른쪽).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티빙
방송가도 괴담을 주요 소재로 꺼냈다. 티빙은 내달 2일 오리지널 예능 ‘대탈출:도시 괴담’을 공개할 예정이다. 여섯 번째 시즌으로 이번엔 기묘한 도시 괴담을 배경으로 공포와 추리 요소를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대학로에서는 극장 괴담을 소재로 한 공포 연극 ‘스위치’가 무대에 오르고 있다. 새 극장을 빌린 연출가와 배우들이 귀신을 보고 기이한 현상을 겪는다는 이야기다.
『한국 괴물 백과』의 저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괴담은 원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건데 요즘은 각종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로 확산력이 무척 강해졌다”며 괴담이 더 큰 파급력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에 수익화가 되는 콘텐트라는 .도 흥행 요인이다. 곽 교수는 “예전엔 커뮤니티에 재미 삼아 올리면 이야기가 돌다 끝났지만, 지금은 유튜브 영상 콘텐트로 만들어 돈을 버는 시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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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한 세계…? 배경엔 인공지능
기묘한 콘텐트가 퍼지는 배경엔 인공지능(AI)의 확산도 있다. AI가 만든 이미지와 영상은 그럴듯하지만, 어딘가 어긋나 있다. 이런 미묘한 위화감을 마주하다 보니, 그 불편한 감각 자체가 하나의 공감대가 됐다는 해석이다.
아예 AI가 만든 괴담 콘텐트도 인기다. 가상의 지자체인 ‘서담시’ 공식 SNS라는 콘셉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서담시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을 조사하는 특별 조직의 기록이라는 세계관을 갖는다. 실제 한국 풍경 같은 AI 영상으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각각 10만, 2만의 팔로워와 구독자를 모았다.
가상의 지자체인 '서담시' 계정. AI 생성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유튜브 화면 캡처
이런 괴담 콘텐트의 특징은 문장 하나, 장면 하나로 독자 혹은 시청자들을 단숨에 기묘한 세계로 끌어들인다는 。이다. 지난 5월 개봉해 흥행했던 공포 영화 ‘백룸’이 대표적이다. 규칙이나 설명 없이 입장한 세계에서 관객은 노란 벽지와 형광등이 끝없이 이어지는 텅 빈 방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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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사라진 공간이 주는 불안, 이른바 ‘리미널 스페이스(경계 공간)’의 공포다.
앞서 롯데월드의 가을 시즌 테마 ‘기묘한 세계의 초대’ 역시 같은 선상이다. 몇 년간 이어지던 좀비 소재 테마에서 올해 기묘한 세계를 테마로 잡은 이유에 대해 롯데월드 측은 “요즘 고객들은 평소 즐기던 세계관이 구현된 공간을 찾아 자신만의 해석으로 확장하기를 즐긴다”며 “무서운 정도보다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데 중。을 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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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비튼 일상….‘서브컬처’의 대중화
괴담의 흥행은 서브컬처(하위문화)의 대중화로도 읽힌다. 나폴리탄 괴담은 일본 인터넷 괴담에서 출발해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하나의 장르로 자랐다.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사 이상 현상 연구원』도 콘텐트 플랫폼 포스타입에서 1년 가까이 연재된 뒤 펀딩을 거쳐 서.에 나왔다. 영화 ‘백룸’도 미국의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장의 이상한 공간 사진에서 시작됐다. 온라인 서브컬처 안에서 자란 이야기의 씨앗이 대중 소비 장르로 확장한 셈이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이상한 공간을 통해 미묘한 공포감을 선사하는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 바이포엠 스튜디오
이런 괴담, 공포물은 가성비 좋은 콘텐트이기도 하다. 문구 한 줄로 490만 조회 수를 만들고, 목소리 출연만으로도 시선을 끈다. 곽재식 교수는 “굳이 특수 효과를 넣어 영화처럼 만들지 않아도, 친구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듯 1인 창작자가 그냥 들려주는 게 오히려 분위기를 살리는 장르”라며 “개인 창작자들이 이를 소재로 다양한 콘텐트를 만들어내면서 기성 대중 매체에서도 주목하게 된 것”이라고 봤다.
마니아의 장르였던 괴담이 이제 누구나 알아듣는 대중의 언어가 됐다. 짧은 문장이나 사진 한장으로 낯선 세계를 열고, 사람들은 기꺼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만의 해석을 붙이며 논다. 괴담이 지금 주목받는 이유다.
■ b.트렌드
「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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