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넷플릭스]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선 늘 ‘거리’가 긴장을 만들어낸다. ‘밀양’에서 신애와 종찬은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아들을 잃은 신애의 고통에 종찬은 끝내 참여할 수 없었다. ‘버닝’에서 그 거리는 계급의 형태로 벌어졌는데, 낡은 용달을 모는 종수에게 일하지 않고도 포르쉐를 타는 벤의 일상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가까이 있어도 닿을 수 없고, 바라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거리감.
이창동 신작 ‘가능한 사랑’도 거리가 만들어내는 긴장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살아가는 두 부부를 마주앉히고, 도무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두 세계가 뒤섞였을 때의 긴장감을 포착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나’(밀양), ‘타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나’(버닝)란 그의 질문은 이번 신작에서 ‘이해 불가능한 타인과 관계맺을 수 있는가’를 물으며 더 깊어졌다.
올해 제83회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 2등상) 수상작 ‘가능한 사랑’을 21일 국내 언론 시사회에서 살펴봤다. 영화는 23일 극장 개봉 후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해고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은 아들 철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호석의 직업이 용접공이었기에 아들 이름도 ‘철’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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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미옥(전도연)과 호석(설경구)이 아들 철이를 데리고 동민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호석의 직장 동료였던 동민은 총파업과 강제진압 후유증으로 삶을 등졌다. 사모펀드에 매각된 이들의 직장은 직원 40%를 해고하려다 노조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고, 이후 극단 선택이 속출했다. 호석은 파업의 기억과 실직 이후의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두 부부의 삶에 예지(조여정)이 끼어든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예지는 동민의 빈소를 찍다 미옥과 가까워졌다. ‘사라지는 노동자: 노동은 곧 삶이다’란 제목의 다큐 영화를 촬영중인 예지는 해고노동자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하지만 예지가 아무리 상대의 삶을 이해하려 해도, 둘의 사회적 ‘계급’은 너무 벌어져 있다.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는 부유해도 너무 부유한 자산가였고, “남편과 난 급이 다르다”고 농담하는 예지조차도 압구정 출신이다. 그럼에도 미옥과 예지는 고통과 절망을 분모 삼아 가까워진다. 예지는 상우의 허락을 받아 서해안 별장으로 미옥·호석 부부를 초대해 휴가를 보내기로 한다. 네 인물의 여행은 불편한 동거일까, 안온한 휴식일까. 예지의 영화는 완성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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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과 가까워진 다큐 영화 감독 예지는 호석의 고통까지도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이들은 빠르게 가까워지지만 두 부부 사이엔 ‘사회적 계급’이 분명히 존재한다. [넷플릭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문장을 첫머리에 인용하며 열리는 이 영화는, 상존하는 계급격차 속에서 네 사람의 욕망을 다룬다. 제목 ‘가능한 사랑’은, 영화를 보고 나면 ‘가능한 세계로의 사랑’으로 읽힌다. 미옥·호석·예지·상우는 모두 자신이 원하는 세계에 가닿길 꿈꾼다. 미옥은 10대 시절 첫사랑인 과거의 호석을 그리워하고, 호석은 땀흘려 일하던 이전의 자신을 그리워한다. 예지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영화로 옮기는 감독으로서의 자신을 꿈꾸며, 상우는 단지 돈을 넘어 “차원이 다른” 세계를 열어줄 자본을 확보하려 한다.
서로 다른 네 사람의 욕망은, 각자에게 전부 허락되지 않던 무엇이다. 그런데 네 사람이 별장에서 만나면서 긴장이 폭발한다. 미옥이 상우가 경험해온 세계, 즉 경제적 특권이 허락해줄 절대 자유를 부러워하고, 상우는 미옥의 육체에 유혹되는 식이다. 예지는 타인의 고통에 더는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며, 호석은 상우의 삶을 거울 삼아 결핍된 자신을 확인할 뿐이다.
미옥은 순수하고 당당했던 호석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고, 호석은 노동과 자아가 일치했던 옛 시간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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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이창동 영화가 그러했듯 ‘가능한 사랑’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늘 가까이 있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의 보름달, 세상을 이어 붙이는 숙련된 용접공이지만 이젠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세상과의 접속이 끊어진 호석의 처지가 그렇다. 또 상우의 별장 액자에 적힌 괄주작침(刮柱作針·기둥을 깎아 바늘을 만든다)이란 단어는 ‘마부작침(磨斧作針·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의 변주로 보인다. 바늘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기둥을 깎아 없애려면 엄청난 소모가 불가피하다. 깎여나간 기둥의 잔여는 호석의 실존과 같다. 상우의 와인병에 적힌 ‘GAZA’는 가자지구를 연상시킨다. 와인 라벨엔 그 땅의 삶이 세련되게 포장된다. 이것조차도 의도적 기호인지는 불분명하다.
‘가능한 사랑’에서 피사체는 세 개의 레이어에 각각 축적된다. 일반적인 영화 카메라가 담아내는 피사체, 작중 카메라(다큐 영화 제작용)가 담아내는 피사체, 유리창·CCTV·블랙박스 너머에서 관찰되는 피사체 말이다. 즉, ‘가능한 사랑’에선 이창동의 눈, 예지의 눈, 기계(들)의 눈이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다. 세 개의 눈은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보다 ‘이미지의 소유’ 행위에 가깝다. 영화는 이 거리감을 건조하게 배치하며, 이로써 영화라는 예술 장르의 한계를 동시에 질문한다. ‘영화에 대한 영화’로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예지는 호석의 절규와 미옥의 고통까지도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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