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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거두고 도전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온 마르타 아고스토니(Marta Agostoni)는 셀라의 이곳 호스텔에서 우리와 함께 있었다.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우리가 고산 등반이나 긴 항해 등, 새로운 도전을 구상하고 과연 청년도 아닌 우리가 그것이 가능할까, 의심하고 있으면 그녀가 단호히 말하곤 했다.
"할 수 있어요. 의심을 거두고 도전을 하는 것이 먼저예요."
긍정의 화신 그녀가 몇 주 전 이곳을 떠난다고 해서 서운해 하는 우리를 향해 말했다.
"아쉬워하지 마세요. 우에우에테낭고(Huehuetenango)에서 2주간 봉사하고 돌아올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돌아왔고, 오자마자 이 호스텔에서 리셉션 일을 시작했다. 하루에 몇 시간 업무를 맡으면 숙박비를 면제받을 수 있다.
▲ 마흔한 살, 인생의 다음 장을 막 시작한 마르타 아고스토니(41, 이탈리아 밀라노).?그녀는 경제적 자립과 결혼, 아이를 갖는 문제 등에서 결론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지만 그저 흐름을 따라가기로 했다.
ⓒ Marta Agostoni)
"첫 예약을 받았는데 아직 예약 프로그램에 익숙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요."
업무 인계를 교육받은 첫날 그녀는 프런트의 예약 프로그램을 숙달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당신이 실수하면 알지 못하는 손님과 같은 방을 써야 할 수도 있겠군요!"
그녀를 골려주는 농담을 이번에는 진지하게 받았다.
"그래서 내일 하비에르(매니저)에게 다시 확인해달라고 해야지요."
죽음이 축제인 날들
며칠이 지난 지금은 훨씬 여유로운 표정이다. 오늘은 무슨 스케줄이 있는지를 묻자 공동묘지를 방문해 볼 거란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근무 전 오전의 짧은 시간을 왜 공동묘지 방문에 할애하기로 했는지를 물었다.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정말 흥미로운 곳이라고. 유럽의 묘지는 다 슬퍼요. 아주 엄숙하고 고요한 곳이죠. 꽃 몇 송이 놓고, 기도하고, 그리고 떠나요."
그런데 그녀가 들었다는 과테말라의 공동묘지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묘지는 화려한 색으로 가득하고 가족들이 묘지에서 파티를 벌인다는 거예요. 죽은 이를 대하는 방식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곳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가고 싶었죠."
나와 공통 관심사가 있는 이를 만난 것에 나는 흥미가 폭발해 아침 인사를 대신한 스몰토크가 갑자기 딥 토크로 바뀌었다.
"제가 선호하는 방문지도 공동묘지예요. 그래서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의 날(Dia de los Muertos)' 3일 동안 묘지를 방문하고 오프렌다(ofrenda)가 차려진 가정을 방문하고 마리골드 꽃과 설탕 해골, 판 데 무에르토(죽은 자의 빵) 등 전통 음식을 먹으며 죽음을 축제로 승화한 날들을 보냈죠. 과테말라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에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메시지와 기도를 전달하는산티아고 사카테페케스의 공동묘를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녀도 공동묘지 방문 날에 열정적인 공동묘지 애호가를 만난 것을 반가워했다. 그녀는 멕시코에서 5년을 산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에도 해마다 죽은 자의 날 파티를 여는 친구라고 했다.
"죽음은 삶의 다른 방식의 연장이고 떠난 이들과 여전히 함께 산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했어요. 멕시코에서는 더욱. 그 친구는 죽음을 번역해 내는 사람 같아요."
나는 그것이 다른 문화를 탐험해야 하는 이유라고 맞장구를 쳤다.
▲ 케찰테낭고의 공동묘지.?색이 다양한 무덤들.
ⓒ Marta Agostoni
개인화된 영성의 레시피
이탈리아에서 묘지는 그녀에게 아주 무거운 장소였다.
"제 경험 속에서 묘지는 전부 종교와 연결돼 있어요. 어릴 때 가족이 저에게 강요했던 종교와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당시 교육이 매우 엄격했다고 회상했다. 좋은 메시지도 있었다고 인정하지만, 그 시절의 경험 때문에 지금도 종교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가톨릭이 절대적입니다. 미사 참석은 아주 저조하지만요. 한국의 주된 종교가 불교인가요?"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개신교 비율이 더 높습니다. 저희는 무종교인이지만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 철학과 삶의 방식으로 여기고 있어서 마음이 혼란할 때 경전에서 답을 구해요. 욕심 없이, 단순하게, 고요하게 사는 방식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기독교에는 인간적인 연민과 사랑에 관한 아주 의미 있는 메시지들이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그 조직의 구조는 좋아하지 않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정보에 열려 있고, 여행하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만나서 각자 좋아하는 내용과 메시지를 골라 삶에 적용하죠. 개인화된 영성의 레시피랄까요."
봉사란
대화는 공동묘지, 종교를 거쳐 그녀의 여정으로 옮겨갔다. 그녀에게 허락된 이번 여행 기간은 3개월. 멕시코 칸쿤으로 들어와 유카탄, 캄페체, 타바스코, 치아파스를 거쳐 버스로 과테말라로 들어왔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과테말라에서 합류해 두 주간 함께 여행하며 벨리즈까지 가서 다이빙을 했고, 그가 먼저 돌아간 뒤 그녀는 셀라로 왔고 그때 우리는 이 호스텔에서 조우했었다. 그녀가 우리를 떠나 있던 2주 동안은 우에우에테낭고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했다.
마을의 여성 협동조합을 도왔단다. 손으로 허리에 걸어 짜는 전통 직조법, 텔라르 데 신투라(telar de cintura)로 직물을 만드는 여성들의 조합이었다. 그녀는 여성들이 몇 개월씩 베틀에 앉아 짠 직물이 제값에, 좀 더 적절한 사람들에게 가닿도록 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어떻게 좀 더 효과적으로 고객을 만날 수 있고 상품의 가치를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마케팅과 소개 자료를 다듬는 일을 돕고 왔어요. 그게 제가 밀라노에서 했던 일이거든요. 인테리어 디자인 쪽에서 늘 하이엔드 시장을 상대해왔었죠. 봉사가 짧은 시간에 무언가를 획기적으로 바꿀 순 없어요. 하지만 어떤 동기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전할 수는 있죠. 의견을, 아이디어를, 콘텐츠를요. 문화적 교환이면서 동시에 작은 지식의 교환이에요. 그러므로 저도 얻어오는 것이 많죠. 제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돼요. 그 상황 안으로 들어가서 더 깊이 이해하게 되죠. NGO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어려움과 마주하는지도요."
▲ 과테말라 농촌 공동체 아이들과 함께.?영어 수업 직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그녀도 많은 것을 배운다.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것. 그녀에게 그들은 함께 일할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다.
ⓒ Marta Agostoni
보통의 여행자들처럼 몇 주 안에 유명한 장소만 스치고 지나가는 것보다 훨씬 보람 있는 일이지만 그녀는 그것이 다소 이기적인 동기도 있다고 말하고 선한 웃음을 웃었다.
"한 사람의 권력자나 재력가가 하는 일보다 당신 같은 사람이 1만 명, 10만 명이 함께 연결된 네트워크로 바꾸어 나가는 세상이 더 안전하고 완전한 세상에 가까울 것이라 믿어요."
나는 그 이기적인 동기조차도 어떻게 이타적인 결과를 내는지에 대해 말했다.
마흔이라는 나이
"서른과 마흔이라는 나이의 경계는 누구에게나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시기지 않나요?"
마흔한 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은 없는지 물었다.
"없을 리가요. 여성에게는 특히 가정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대한 미뤄둔 결론을 내려야 하는 마지막 시기죠. 가족과 아이를 원한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정을 해야 하고요. 하지만 저같이 파트너와의 관계에 더 믿음이 필요하거나 경제적 안정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죠. 제게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기에 그 조건이 갖춰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 상황을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제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와 자유를 써서, 저에게 맞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으면서 살려고요."
남자친구는 안정된 직장에 생각도 비슷하고 그녀를 최대한 배려해 주는 유연한 사람이지만 여러 환경이 그와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란다.
"일이 있다가 없어지고, 돈이 있다가 없어지고, 남자친구가 있다가 없어지고. 저는 그저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요."
그녀의 2막은
밀라노로 돌아간 뒤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몰라요, 몰라요."
그녀는 다시 웃었다. 회사를 사직하고 이번 여행을 떠나왔고 밀라노로 돌아가도 밀라노의 생활비를 감당할 만한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제게는 경제적 자립이 아주 중요해요. 하지만 아무 일이나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예요."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되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밀라노의 아파트를 세놓고 다른 곳으로 갈 생각도 있단다. 스페인어를 쓰는 도시, 혹은 아프리카 인근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같은 곳에서 시간의 절반은 봉사, 절반은 여행이나 공부로 채우겠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그녀가 그리는 일은 직조나 재활용 소재로 만든 옷과 액세서리를 만드는 수공예 여성 공동체와 관련된 일이었다. 인도와 아프리카와 남미 여러 곳에 존재하는 그런 공동체들을 연구하고, 그 일을 이어주는 일에 애정을 두고 있었다. 예술 갤러리나 하이엔드 브랜드와의 협업도 그려보고 있다고 했다.
▲ 탄자니아 아루샤의 젊은 여성들.?마르타가 수업을 마친 직후, 판매와 서비스, 홍보 역할극 활동을 위해 그룹 활동을 하는 모습.
ⓒ Marta Agostoni
"이번 세 달간의 여행이 당신 인생의 막이 바뀌는 전환. 같군요."
"맞아요. 말이 앞선 생각이지만 다음 장에서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사회적 대의를 위해, 좋은 품질과 예술성을 지닌 제품에 목소리를 실어줄 수 있다면 정말 하고 싶어요.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은 이탈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세계 어디서나 대개 급여가 매우 낮더군요. 그렇다면 지출과 수입 사이에서 제 홀로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이지만 봉사는 나의 영혼을, 누군가의 삶을 살찌우는 일이지 싶어요."
공동묘지 방문 소감
죽은 자를 기리는 방식에서 시작한 대화는, 산 자가 자기 삶을 세워가는 방식에 대한 대화로 끝났다. 마르타는 모든 것이 의문이라고 했지만 이미 자신의 답을 살고 있는 듯 했다. 밀라노 여성들은 독립적이고 실용적이며 회복력이 강하다고 들었다. 바로 마르타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공동묘지에 다녀온 그녀는 다시 오후의 호스텔 리셉션을 지키고 있었다. 공동묘지 방문은 어땠는지 물었다.
"친구의 말대로였어요. 아이들이 무덤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고 가족들은 음악을 틀어놓고 무덤을 정리하고 있기도 했어요. 그리고 무덤의 다양한 색채들에 놀랐어요. 저도 전통적인 이탈리아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내 장례식에 대한 지침을 주고 싶지만 그것에 대해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그 일로 어머니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가족들에게 빚을 남기지 않도록 제 장례식 비용을 충분히 남겨둘 수 있도록 돈은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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