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의 쇼스타코비치, 온다프레스 제공
올해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탄생 120주년이다. 독일과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이를 기념하는 음악회와 페스티벌이 열렸고 국내에서도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이끄는 고잉홈프로젝트가 쇼스타코비치 전곡 연주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고향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좀 색다른 기념 행사가 눈길을 끈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음악 기관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믹 필하모니아가 10월부터 내년 3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마련한 대중 강연이다. 주제는 ‘쇼스타코비치와 축구’. 강의 제목도 흥미롭다. ‘프로페셔널 팬’, ‘축구 기자 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 음악 속 스포츠‘ 등으로 그가 얼마나 축구를 좋아했고 축구에 정통했는지를 다룬다. 강연자는 쇼스타코비치와 축구의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음악학자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인 드미트리 브라긴스키다.
쇼스타코비치와 축구는 언뜻 쉽게 연결되지 않는 조합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은 대체로 어둡고 무겁다. 스탈린 시대의 검열과 압박은 그의 삶을 따라다녔다.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당시 소련 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공격을 받은 뒤 작곡한 교향곡 5번, 2차 세계대전 당시 포위된 도시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같은 작품들이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를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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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믹 필하모니아 홈페이지에 ‘쇼스타코비치와 축구’라는 주제의 강연 안내가 올라 있다.
그러나 축구장에 있는 쇼스타코비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영국 클래식 음악매체 클래시컬 뮤직이 브라긴스키의 연구를 소개한 기사를 보면 그는 가끔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정도가 아니라 ‘축구광’에 가까웠다. 그가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는 놀랄 만큼 축구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고 좋아하는 선수에게는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다. 자신의 노트에 경기 결과와 리그 순위, 팀별 득.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 노트는 156쪽에 이르며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기록이 이어진다.
그는 특히 레닌그라드 제니트의 열성 팬이었다. 당시의 제니트는 현재 러시아 프로축구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신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제니트 선수들과 직접 교류하기도 했다. 2016년 제니트는 쇼스타코비치 탄생 110주년을 맞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의 경기를 앞두고 관중석에 거대한 쇼스타코비치 초상을 펼쳤다. 경기장에는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가 라이브로 연주됐으며 이날 제니트는 4대2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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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타임스가 2019년 브라긴스키의 책 <쇼스타코비치와 축구 : 자유로의 탈출>을 소개한 기사에는 가족에게 ‘경기 보러 간다’고 남긴 메모, 경기 결과를 알리는 전보, 신문 스크랩과 통계 기록 등이 실려 있다. 공연 여행 중에도 일정에 맞춰 경기장에 들렀고 제니트 선수들을 집으로 초대해 。심을 함께하기도 했다. 유명 선수인 보리스 파이차제와 악수했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는 증언도 있다.
축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음악으로도 연결됐다. 1930년 초연된 발레 <황금시대>는 서유럽을 방문한 소련 축구팀이 주인공이다. 작품에는 실제 축구 경기를 묘사한 장면이 등장하며, 해당 장면은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로 시작한다. 전쟁중이던 1944년에는 소련 내무인민위원회(NKVD) 공연단의 작품을 위한 음악을 맡았는데 축구 경기를 무용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쇼스타코비치의 축구사랑은 말년에도 지속됐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을 직접 보기 위해 소련 작곡가 대표단과 영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해 심장마비를 겪으면서 계획은 무산됐다. 소련 대표팀은 그 대회에서 4강까지 진출했다.
소련 인민 예술가 칭호를 받았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왼쪽부터)가 1968년 한 자리에서 촬영한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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