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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근대 생활방식 교차하던 ‘항남1번가’ 위치
통영다방, 전통공예품 재해석한 카페로 재탄생
동진여인숙 ‘女전용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
“옛 흔적 위로 다음 세대 기억 이어주는 공간되길”
통영 항남1번가는 사람과 물건이 오가며 서로 다른 생활과 문화가 만났던 거리다. 통제영 선창을 중심으로 형성된 물자의 흐름은 상업과 일상의 풍경으로 이어졌고, 거리에는 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였다. 귀한 통영갓과 새로운 유행의 모자가 함께 놓였던 상.의 풍경처럼, 이곳은 전통과 근대의 생활방식이 교차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 거리의 기억 위에 두 채의 오래된 건물이 남아 있다. 근대기 주거의 흔적을 간직한 김양곤 가옥과,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떠난 동진여인숙이다. 오랫동안 닫힌 채 잊혀 가던 두 건물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문을 열었다. 김양곤 가옥은 카페로 쓰이게 되면서 ‘통영다방’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동진여인숙은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와 대여공간으로 다시 손님을 맞으며, 장소의 기억을 그대로 잇기 위해 본래의 이름을 지켰다. 두 건물은 옛 모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쓰임으로 다시 태어났다.
통영시 항남1번가에 자리한 ‘통영다방’ 전경. 근대기 주택인 김양곤 가옥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기와지붕과 붉은 벽돌 외벽, 나무 창호 등 옛 건축물의 모습을 살려 카페로 재탄생했다. /김은수 건축사/
◇시간의 퇴적을 존중하다= 김양곤 가옥과 동진여인숙은 근대기 주거의 흔적과 여인숙이라는 공간의 속성상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 감정이 켜켜이 쌓인 장소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출발.은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였다. 기존 구조와 재료의 결을 최대한 보존하고, 건축적 개입은 꼭 필요한 만큼으로 최소화했다. 낡은 흔적을 지우고 새것으로 덮는 대신, 세월이 남긴 층위를 그대로 드러내 시간의 퇴적을 존중하고 보존하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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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힌 채 잊히는 건물이 아니라, 다시 사람들의 기억과 발걸음을 모으는 공간으로의 재생을 목표로 했다.
경남 통영시 항남1번가에 자리한 ‘통영다방’ 전경. 근대기 주택인 김양곤 가옥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기와지붕과 붉은 벽돌 외벽, 나무 창호 등 옛 건축물의 모습을 살려 카페로 재탄생했다. /김은수 건축사/
◇근대의 얼굴을 지키다= 통영다방은 기와지붕 아래 붉은 벽돌과 석재 질감의 외벽, 마름모 문양의 장식, 나무 창호가 어우러진 근대기 주택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외관은 이 얼굴을 지우지 않는 데 집중했다. 벽돌과 외벽의 문양은 그대로 살리고, 창호는 나무로 다시 짜 넣어 옛 집의 표정을 되찾았다. 출입구는 옛 현관을 그대로 살려 골목을 지나는 이들에게 다방의 문을 열어두었다.
마당과 골목의 경계에는 근대기 주택에서 시멘트 블록 담장을 낮게 둘러, 시선은 열어두되 영역은 은근히 구분했다. 건물 측면을 따라 판석과 쇄석으로 길을 내고 야외 좌석을 두어, 벽돌담에 기대 차를 마시는 바깥의 자리를 만들었다. 측면 창에는 넓은 나무 선반을 덧대어 ‘PICK UP’ 창구로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창을 사이에 두고 주문과 대화가 오가는 이 작은 창은, 옛 골목 가게의 정겨운 풍경을 오늘의 방식으로 되살린 장치다.
경남 통영시 항남1번가에 자리한 ‘통영다방’ 전경. 근대기 주택인 김양곤 가옥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기와지붕과 붉은 벽돌 외벽, 나무 창호 등 옛 건축물의 모습을 살려 카페로 재탄생했다. /김은수 건축사/
통영다방은 기존 집의 공간 구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쓰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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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주방은 현재의 카페 주방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구획된 방들은 방 사이에 창을 내어 서로 연결했다. 각 방의 윤곽을 유지하면서도 시선이 인접한 방을 지나 외부 풍경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창은 공간을 여러 겹으로 경험하게 한다. 가까이 놓인 가구와 목재 창틀, 그 너머 방의 풍경, 마지막으로 창밖의 대나무가 하나의 시선 안에 중첩된다. 방문자가 앉는 자리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작은 집 안에서도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기존 벽장을 살린 메모 공간도 이러한 흐름 안에 놓인다. 바닥을 살짝 높인 좌식공간과 옛 창호 형태의 개방형 파티션은 머무는 자리의 경계를 만들면서 주변과의 시각적 연결을 이어 준다. 방과 방, 실내와 외부 사이에 여러 겹의 경계를 두어, 옛집의 공간감과 카페의 열린 분위기가 함께 드러나도록 계획했다.
통영다방 내부. 기존 목재 기둥과 천장 구조를 살리고, 방과 방 사이에 나무 창호를 설치해 옛 주택의 공간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방감을 더했다./김은수 건축사/
◇일상 속의 전통= 통영다방은 통영을 대표하는 전통 공예품인 통영갓, 통영발, 통영소반을 재해석해 카페의 디자인 소품으로 활용하고, 일상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구현했다.
통영갓은 ‘왕이 선택한 에르메스’라 할 만하다. 흥선대원군조차 갓은 무조건 통영 것이라 했다고 전해질 만큼 최고급 브랜드였으며,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대나무 살을 엮어 만든 압도적인 디테일로 ‘투명한 검은색’이라는 독보적인 미학을 지닌다. 통영다방에서는 홀 한편에 통영갓을 두어 방문객이 직접 써볼 수 있는 ‘갓 체험’을 마련했다. 백 년 전 쇼윈도 너머로 바라보던 귀한 갓을, 이제는 누구나 머리에 얹어보는 경험으로 바꾼 것이다.
통영발은 단순한 가림막이 아니라 시각적 투과성을 이용한 고도의 공간 분리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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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가느다란 대나무 살을 명주실로 엮어, 빛이 들어올 때 생기는 가로선의 그림자가 공간에 깊이감을 더한다. 통영다방에서는 이 통영발의 원리를 천 가림막으로 옮겨왔다. 공간과 공간 사이, 개구부 상부에 얇은 천을 드리워 시선은 부드럽게 걸러내되 빛과 공기는 통하게 했다. 벽으로 막지 않고 천 한 겹으로 영역을 나누는, 발의 공간 분리 방식을 오늘의 재료로 풀어낸 것이다. 이 가림막의 언어는 동진여인숙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어진다.
통영다방 내부. 기존 목재 기둥과 천장 구조를 살리고, 방과 방 사이에 나무 창호를 설치해 옛 주택의 공간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방감을 더했다./김은수 건축사/
통영소반은 조선 3대 명반 중 하나로, 상판과 다리를 연결하는 운각에 나비나 꽃무늬를 정교하게 조각하고, 다리가 견고하고 튼튼하다. 나무의 결을 살리는 생칠이나 화려한 나전 장식을 더해 품격을 높인다. 통영다방의 좌식 공간에 놓인 낮은 상은 이 통영소반을 재해석한 것이다. 장식적인 조각 대신 단순하고 견고한 형태로 다듬어 오늘의 공간에 어울리게 하되, 낮게 둘러앉는 소반의 쓰임은 그대로 이었다. 상의 옆면에는 모두 ‘통영다방’을 레이저로 각인해, 옛 공예의 형식 위에 이 공간만의 이름을 새겼다. 백 년 전 항남1번가의 쇼윈도를 장식하던 통영의 공예가, 이제 차 한 잔의 일상 속으로 돌아온 셈이다.
동진여인숙 전경.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옛 여인숙을 리모델링해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와 대여공간으로 새롭게 꾸몄다. 기존 건물의 형태와 이름을 유지해 장소에 깃든 기억을 이어가도록 했다./김은수 건축사/
◇ 머무름의 방식을 바꾸다= 동진여인숙은 기존 이름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머무름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과거의 여인숙이 낯선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는 장소였다면, 새롭게 활용하는 공간은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활동과 시간을 나누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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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는 목재 기둥의 흔적을 드러내고, 커튼과 발을 통해 영역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커튼을 걷으면 공간이 이어지고, 내리면 머무는 자리의 경계가 생긴다. 바닥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자리와 목재 가구는 여인숙이 지닌 생활의 감각을 이어 준다.
작은 식탁 공간에는 목재 천장과 발, 생활 소품이 어우러진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대화하는 경험을 통해 방문자가 공간에 자신의 시간을 더할 수 있도록 했다. 여인숙의 기억에 다가가는 과정에는 당시의 소리와 향, 물건 등 감각적인 매개도 함께 고려했다.
동진여인숙 계단. /김은수 건축사/
◇동진극장, 함께 보는 시간을 담다= 좁은 목재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여공간인 ‘동진극장’으로 이어진다.
동진극장에는 긴 테이블과 스크린을 두어 영화 감상과 모임 등 여러 활동을 수용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 같은 장면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여인숙의 작은 방들이 품었던 개인의 머무름은 이곳에서 함께하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기억을 담은 우물= 외부 계단 하부에 남아 있던 물 저장 공간은 동진여인숙의 재생 방향을 보여 주는 장소다. 계단 아래의 제한된 공간과 기존 타일을 살리고, ‘기억을 담은 우물’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물을 담던 자리는 이제 방문자의 기억과 소원을 받아들이는 장소가 된다. 유리 덮개를 통해 안쪽 공간을 들여다보고, 종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는 행동이 과거의 시설과 오늘의 방문자를 연결한다.
이 우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감성 아카이브다. 통영다방 좌식 공간의 메모 벽과 동진여인숙의 우물은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결국 통영다방과 동진여인숙은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는 공간이자 오늘의 기억이 새롭게 더해지는 공간이다. 건물에 남아 있던 기억 위에 새로운 기억이 쌓이면서 장소의 시간도 계속 이어진다.
통영다방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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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목재 기둥과 천장 구조를 살리고, 방과 방 사이에 나무 창호를 설치해 옛 주택의 공간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방감을 더했다./김은수 건축사/
◇현장에서 답을 찾다 = 리모델링은 뜯어보기 전까지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작업이다. 도면 위에서 계획한 것과 실제 건물의 상태가 다른 경우가 많았고, 천장과 벽을 하나씩 열 때마다 새로운 판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책상이 아니라 현장이었다. 셀 수 없을 만큼 현장을 오가며 드러난 부재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살릴 것과 보강할 것을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오래된 건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계획을 조금씩 고쳐 나간 그 시간이, 결국 두 건물에 남은 시간의 결을 지켜낸 힘이 되었다.
통영다방과 동진여인숙의 재생은 새것을 더하는 작업이 아니라, 오래된 것을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었다. 한 세기 가까이 이어진 사람들의 흔적 위에 오늘의 쓰임을 조심스럽게 얹은 이 두 건물은, 다시 문을 열고 다음 세대의 기억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사람을 맞이하는 건축= 통영다방과 동진여인숙의 리모델링은 오래된 건물이 오늘의 일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작업이었다. 기존의 구조와 재료를 존중하고, 그 안에 차를 마시고 공예를 경험하며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는 쓰임을 담았다.
누군가는 한 잔의 차를 위해 찾아오고, 누군가는 영화와 모임을 위해 머물 것이다. 그렇게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건물에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는다. 두 공간이 통영의 지난 시간을 전하면서, 앞으로의 일상을 담는 장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설계 : 소소재건축사사무소 주식회사 김은수
◇건축개요
위치 : 통영다방-통영시 항남1번가길 11-1
동진여인숙 -통영시 항남1번가길 11-2
기존 용도 : 김양곤가옥 - 주택·창고
동진여인숙 - 여인숙
활용계획 : 통영다방-카페 /동진여인숙-대여공간
구조 : 목조
설계 : 소소재건축사사무소 주식회사 김은수
건축주 : 통영시
사진 : 김은수 건축사
이어 준다. 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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