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역사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세종여성회 회원들이 평화의 소녀상 모형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담당교사 제공
"우리가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이미 목소리를 내고 계신 분들이 있으니까, 같이 힘이 되어 보면 어떨까 했어요."
23일 세종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6학년 이예원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주제로 정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누가 정해준 주제가 아니었다. 학교 자율시간에 5·6학년 학생들이 각자 해결하고 싶은 사회문제를 정해 활동하는 팀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선택했다. 팀 이름은 '바른 기억 저장소'.
학생들은 먼저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표와 부대표가 자료를 찾아 수업 자료를 만들고 다른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공부할수록 궁금한 것이 늘었다.
"저랑 부대표 친구가 자료 조사를 많이 하고 설명했는데도 부족한 。이 있었어요.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걸 다 해결해 주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인터넷에서 평화의 소녀상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찾아봤지만 학생들끼리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결국 학교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세종여성회 이혜선 대표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 얼굴도 모르는 어른에게 학생들이 먼저 연락했다.
"저희가 팀 프로젝트를 하는데 같이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어요. 초등학생이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게 조금 부담되니까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저는 정말 조력자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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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와 평화의 소녀상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 박지영
담당 교사는 학생들의 활동에서 자신의 역할을 "조력자 정도"라고 말했다. 이 학교 자율시간에는 5·6학년 학생들이 여러 팀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사회문제를 탐구한다. 해양 생태계, 남북통일, 채식, 제로웨이스트 등 주제도 다양하다. '바른 기억 저장소' 역시 6학년 학생들이 중심이 돼 팀을 꾸리고 활동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이 상의해서 이번에는 무엇을 알려줄지 정하고, 수업 자료도 직접 만들어 와요. 저는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주거나 방향을 조금 잡아주는 정도예요."
외부 강사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학생들이 다루는 주제가 쉽지 않았고 보다 정확한 설명을 듣고 싶어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 교사도 학생들이 외부에 연락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아이들이 연락했다는 거예요. 저는 모르는 일이었어요. 알아봤더니 흔쾌히 아이들을 위해 해주시겠다고 해서 감사했죠."
▲ ?학교 구조가 단순하지 않아 처음오는 사람들은 찾기가 어려울것 같다며 바른 기억 저장소 학생들이 주차장까지 직접 마중을 나왔다. 학생들의 안내를 받아 세종여성회 회원들이 교실로 향하고 있다.
ⓒ 박지영
학생들의 요청을 받은 세종여성회는 학교 수업에 맞춰 내용을 준비했다. 이혜선 대표를 비롯한 회원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나비 접기와 나비 모양 포스트잇 붙이기, 폴라로이드 사진 촬영 등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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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뒤 작은 소녀상들
▲ ?'바른 기억 저장소' 학생들이 직접 만든 평화의 소녀상. 학생들은 작품 앞에 노란 나비를 함께 만들어 두었다.
ⓒ 박지영
이날 교실 뒤편에는 학생들이 전날 만든 작은 평화의 소녀상들이 놓여 있었다.
세종호수공원 평화의 소녀상에도 직접 가보고 싶었지만 정해진 수업 시간 안에 다녀오기 어려워 학생들이 클레이로 만들어 둔 것이다. 이혜선 세종여성회 대표는 그 작품들을 먼저 바라봤다.
"여러분들이 만든 작품을 봤는데 너무 잘 만들어서 감동받았습니다."
수업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일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의미 등이 소개됐다. 학생들은 설명을 듣다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평화의 소녀상 뒤편 할머니의 그림자 속 나비에 대한 설명을 들은 학생은 "그림자에 나비가 있으면 소녀상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 대표가 나비가 실제 그림자가 아니라 상징으로 새겨 넣은 것이라고 설명하자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50분 가까운 수업이 이어졌지만 학생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 ?한 학생이 직접 접은 평화의 나비를 들고 평화의 소녀상 모형 앞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있다.
ⓒ 최송화
이 대표는 수업을 마친 뒤 "아이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더 나아가 이 일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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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라도 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한 명도 안 졸고 초롱초롱하게 들었어요."
수업 뒤에는 나비 접기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색종이로 나비를 접고 포스트잇에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말과 다짐을 적었다.
▲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색종이로 '평화의 나비'를 접고 있다
ⓒ 박지영
한 5학년 학생은 나비를 접으며 수업을 통해 궁금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세종여성회에도 이번 수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대표는 "아이들과 하는 수업은 처음이라 연령대에 맞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앞으로 여성회 회원들이 더 공부하고 훈련해서 학교에서도 이런 수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먼저 문을 두드렸고, 시민단체가 그 질문에 응답한 셈이다.
"1300명이 같이 들으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바른 기억 저장소'의 활동은 이날로 끝나지 않는다. 학생들은 9월에 탐구를 이어가고 10월 말 학교 학술제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예원 학생은 학술제 이야기가 나오자 학교 친구들을 떠올렸다.
"저희 학교 학생이 약 1300명 정도 되는데 다 듣거든요. 이런 주제를 탐구했고 이런 걸 알게 됐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우리 모두 같이 하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걸 발표할 것 같아요."
이예원 학생은 이날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말로 '용기의 파도'와 '평화의 해일'을 꼽았다. 교사는 "오늘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학술제에서 더 깊어진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고 했다.
수업이 모두 끝난 뒤 6학년 조경후 학생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길지 않은 답이 돌아왔다.
"8월 14일 꼭 기억해 주세요."
가 이 일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