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어 힐먼은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중심의 도시를 늘 강조했다. 그 자신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사진은 힐먼의 친구이자 영국의 교통계획 전문가이자 도로 안전 운동가인 로버트 데이비스가 SNS 블루스카이에 올린 생전 자전거를 탄 힐먼의 모습.
지난 9월 25일(현지 시간) 향년 94세로 별세한 메이어 힐먼은 기후위기와 자동차 중심 사회 문제를 일찌감치 경고한 “급진적인 녹색 사회과학자”였다. 주류 정책과 통념에 정면 도전하며 늘 신선하고 파격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당시에는 터무니없어 보였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해결책을 제시”(가디언 10월 20일 부고 기사)했다.
한 예가 도시 내 자동차 제한속도다. 한국에서도 어린이 보호구역 등에 적용된 아이디어다. 1980년대 도시 지역 제한속도를 시속 20마일(약 32㎞)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4년 힐먼은 교통정책 전문가 스티븐 플로든(1932~2018)과 함께 낸 <도로 위의 위험 - 불필요한 재앙>에서 구체적 안을 낸다. 두 사람은 1996년 출간한 <속도 통제와 교통정책>에서 제한속도를 강화한다. 이 보고서를 보면, 이들은 주거 지역은 10마일(약 16㎞), 학교 앞은 5마일(약 8㎞) 안을 냈다. 유럽 여러 지역에서 자동차가 보행 속도에 맞추도록 한 .을 예로 들며 이렇게 썼다. “운전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이곳은 당신 영역이 아니다. 당신은 이곳에 잠시 허용받고 들어온 것일 뿐이다. 들어오려면 이곳 주인인 보행자 속도에 맞춰야 한다’”.
1990년대 초 교차로의 차도 높이를 보도와 같게 만들고, 차량 통행로 쪽엔 방지턱을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시 보도 쪽이 높아 교차로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려면 보행자들은 차도로 내려가야 했다. 지금은 세계 여러 국가에 보급, 적용된 사례다.
힐먼은 평생 도로 체계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 경험도 한몫했다. 1931년 10월 30일 런던 북부 웨스트햄스테드에서 의사인 어머니 애니 힐먼, 스테인드글라스 예술가인 아버지 데이비드 힐먼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이곳저곳을 늘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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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오전 6시30분 일어나 먼 역까지 걸어가 통학했다. 걷기 경험은 훗날 힐먼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어린 시절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삶이라고 표현했다.
힐먼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건축학과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1954년 건축학 과정을 마치고 1956년 도시계획 자격을 취득했다. 1954년엔 건축 사무소에 들어간다. 1956년 영국 최초의 보행자 중심 신도시를 구상하는 공모전에 출품할 모형 설계 작업에 참여한다. 홈페이지(mayerhillman.co.uk)에 “자동차 소유가 갈수록 확산하는 현상이 장기적으로 사회와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에 건축 사무소를 1967년 그만뒀다”고 적었다. 이후 에든버러 도시설계부 산하 도시계획연구단 일하면서 보행자 중심 신도시 설계 작업에 참여했다. 에든버러대 박사과정 때 개인 이동수단의 사회·환경적 측면을 연구했다. 그는 그때부터 자동차 교통의 필요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 박사학위를 마친 뒤 런던으로 돌아가 독립 연구기관 정치경제계획(정책연구소 전신(전 정치경제계획)에 합류해 2017년까지 일했다.
어린이의 독립적인 이동권 연구를 시작한 것도 1970년부터다. 1991년 낸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에서 1971년과 1990년의 어린이의 독립적인 이동의 감소를 비교한다. 1971년 조사 땐 7~8세 어린이의 80%가 보호자 없이 학교에 갔지만, 20년 뒤에는 그 비율이 9%로 떨어졌다. 대부분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등교했다. 힐먼은 어머니들의 피로가 커지고, 집 밖에서 일할 기회가 줄어든 。도 지적했다.
영국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1971년 1000명에서 1990년 400명으로 줄었다. 힐먼은 도로가 더 안전해진 게 아니라 도로가 더 위험해져 부모들이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을 도로에 못 나가게 하면서 사망자가 줄었다고 봤다. 교통사고 어린이 사망자 감소가 교통안전이 성과를 낸 게 아니라 아이들의 자유가 사라진 결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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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어린이들이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좁은 우리’에서 커간다고 봤다. 어린이와 노인,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이동성 박탈’은 그의 오래된 연구 주제였다.
힐먼은 ‘낯선 사람의 위험’도 다시 정의했다. ‘낯선 사람’은 자동차나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이다. 어린이들이 걸어 다니는 흉악범보다 차를 모는 운전자에게 목숨을 더 많이 잃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가디언 인터뷰(11월 1일)에서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을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서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부주의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문제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어린이들의 삶은 감옥에 갇힌 범죄자들의 생활과 닮아가고 있다. 어린이들도 지붕 있는 곳에서 지내고, 정기적으로 식사하며, 오락을 제공받는다. 하지만 밖으로 나갈 자유는 없다. 어린이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메이어 힐먼. 출처: 에든버러대 홈페이지
1992년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 법안이 나왔을 때 힐먼은 비슷한 이유로 의무화를 반대했다. 그는 자전거 이용자의 사망이나 중상이 대부분 자동차와 충돌할 때 발생한다는 。을 확인했다. 헬멧 의무화가 자전거 이용을 위축시키고, 정작 사고를 일으키는 자동차 운전자의 책임과 도로 환경 문제를 가릴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자전거 이용자가 차를 들이받는 경우는 드물다”며 사고를 줄이려면 자동차 속도를 낮추고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는 등 위험한 도로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전거 이용자가 헬멧의 보호 효과를 실제보다 크게 생각하게 만들어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도 봤다.
힐먼은 1984년엔 유족이 동의할 경우 교통사고 사망자가 발생한 장소 옆에 사고와 사망자의 정보를 기록한 추모 명판을 설치하자는 제안도 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 실제로 정책에 반영되거나고려되는 힐먼의 제안 목록은 이어진다. 1972년엔 자동차 없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소규모 상。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교외 대형 쇼핑센터 건설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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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먼이 1990년 파국적 기후 변화를 막는 유일한 대안이자 사회적 통제 방안으로 제시한 탄소 배급제도 당시 터무니없어 보였다. 개인이나 가구에 일정한 탄소 배출량을 할당하고 그 범위 안에서 에너지를 소비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는 2002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 나라에서 식량이 부족했을 때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겠군’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 나누는 것이 유일하게 공정한 해결책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후 영국에선 힐먼의 제안에 영향을 받은 ‘탄소 할당제’ 등 정책 연구와 시민운동이 이어졌다. 2023년에 영국 리즈대학 연구팀이 휘발유 등을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는 내용의 탄소 배급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힐먼은 1990년대 후반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평생을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다른 이들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권하면서도 개인의 실천을 “헛수고나 다름없다”고 했다. 2018년 가디언 인터뷰(4월 26일)에선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비행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인구 대다수가 비건이 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대다수가 자녀 수를 제한하는 데 동의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오늘 당장 전 세계가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한다고 해도 우리를 구할 수는 없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부고 기사에서 “유대인이라는 배경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자신을 ‘전투적 무신론자’라고 불렀다. 종말론적 전망을 유쾌하게 이야기했고, 고집스러우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힐먼은 생전 “환경 문제를 공공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고 자평했다. 환경 정책이 단순히 오염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뒤처진 사람들의 삶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여겼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도움이 됐다고 느끼도록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2001년 힐먼의 70세 생일을 맞아 나온 헌정 문집 참여자들은 힐먼의 “왕성한 지적 생산성과 독창성, 자신이 선택한 주제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태도,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하려는 의지”를 평가했다. 이 문집 제목은 <시대를 앞서가다>이다.
르는 부주의가 비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