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고려대 하나과학관에서 건강한겨레와 만난 최홍조 재심위원장(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은 이번 피해 구제가 단순히 과거의 피해를 구제하는 것을 넘어, 미래에 다시 닥쳐올 수 있는 국가적 보건 위기에 대비하는 핵심적인 훈련이자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최승식 기획위원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이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파는 남아 있다. 국민은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위해 백신을 맞았고, 한국은 높은 접종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접종 뒤 건강 이상을 겪고도 백신과의 인과성을 인정받지 못해 보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10월23일 시행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예방접종 피해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은 이들의 피해를 다시 살피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22일 한겨레와 만난 최홍조 재심위원장(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은 이번 피해 구제가 단순히 과거 피해를 구제하는 것을 넘어, 미래에 다시 닥쳐올 수 있는 국가적 보건 위기에 대비하는 핵심적 훈련이자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취약계층의 결핵 정책을 연구해온 그는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에서도 활동하며 방역에 따른 권리 제한 문제를 살폈다.
그는 “의학적으로 확실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피해를 국가 제도가 어떻게 다루고, 판단이 엇갈리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지 경험을 쌓는 중”이라고 말했다.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한 예방접종 피해 보상 제도는 예전부터 운영돼왔다. 그러나 최 위원장이 주목한 지。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지닌 특수성이다. 짧은 기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등 새로운 방식의 백신이 대규모로 투여됐다. 무엇보다 ‘방역패스’ 제도를 통해 백신 접종 증명이나 음성 확인이 식당,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이용의 필수 조건으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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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국가가 전염병 확산 차단을 위해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했던 만큼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에 대한 피해 보상 역시 당시의 특수한 방역 상황과 확대된 국가의 책임 범위를 반영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의학적 근거가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다.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백신 이상반응의 경우, 질병의 발병 기전을 밝히는 연구 자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백신과의 연관성을 100% 증명할 수도, 반대로 아예 무관하다고 단정 지을 객관적 지표도 부족한 상태다.
최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짚었다. “우리는 ‘연구가 불충분하다는 사실’과 ‘원인과 결과 간의 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명확하게 분리해야 합니다. 당장 질병 발병 원인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백신과 무관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법은 이러한 의학적 한계를 고려해, 일정한 정황적 조건이 확인되면 백신 접종과 건강 피해 사이의 연관성을 폭넓게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기존에는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치료비 ‘지원’ 대상으로만 묶여 있던 13개 질환이 특별법 시행 이후 정식 ‘보상’ 대상으로 격상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해 11월5일 출범한 보상위원회와 재심위원회는 각각 ‘신규 보상 청구’와 ‘결정에 불복한 이의신청’을 심의한다. 법 시행 전에 기각됐던 사례도 재심 대상이다. 두 위원회는 각각 정부 위원 없이 의료인 6명과 비의료인 9명으로 구성됐다. 의학·법률·행정·사회학 등의 관。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심의에 앞서 일곱 차례 워크숍을 열어 판단 기준을 조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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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변화는 이른바 ‘법과 상식에 따른 연관성(규범적 인과관계)’의 적극적 적용이다. 과거에는 백신과 질병 간의 연관성을 통계적·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절대적 잣대였다. 하지만 특별법 체제 아래서는 발병 원리와 기전을 의학적으로 완벽히 규명하지 못했더라도, 접종 전후 환자의 건강 상태 변화와 증상 진행 과정 등 현재 확보 가능한 주변 정황 증거를 종합해 법적 요건을 충족하면 인과관계를 추정하고 있다 .
물론 접종 뒤 아팠다는 사실만으로 보상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접종과 증상 발생 사이에 시간적으로 설명 가능한 관계가 있는지, 다른 원인으로 생긴 질환은 아닌지 등을 살핀다. 다만 최 위원장은 “평소 앓던 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관성을 무조건 제외하지 않는다”며 접종 뒤 기존 질환이 급격히 악화했다면 백신의 영향도 함께 검토한다고 했다.
진료가 늦어진 사례도 살핀다. 가령 통상 접종 두 달 안에 나타나는 이상반응을 겪고도 석 달째에야 병원을 찾았다면, 첫 진료일만으로는 관련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최 위원장은 당시 의료 이용이 제한됐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병원 진료가 늦어진 것이지, 부작용이 일어난 시。 자체가 늦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원회는 진료 때 설명한 증상 경과와 이상반응 조사에서 남긴 진술 등으로 실제 증상 발생 시.을 확인한다. 질병관리청의 9월13일 기준 자료에 따르면 재심을 마친 73건 중 53건이 보상 대상으로 결정됐다.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묵직한 과제도 있다. 백신 접종 후 사망하기 전까지 병원 진료를 받지 못했거나, 명확한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발병부터 사망까지의 의학적 경과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사실상 전무한 사례에 대해 국가의 보상 범위를 어디까지 열어둘 것인지를 두고 위원들 간의 치열한 논의와 조율이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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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심사신청 건수에 비해 더딘 진행 속도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9 월 13 일 기준으로 재심사를 요청받은 2046 건 가운데 심사를 마친 비율은 3.6% 에 머물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개별 사건 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보기 위해 수백 쪽에 달하는 방대한 진료 기록과 참고 자료를 검토해야 하고, 두 시간 남짓 주어지는 회의에서 다룰 수 있는 안건이 10건 안팎에 그치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개별 사건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비슷한 쟁.을 가진 사례들에서 논의 시간을 단축하고, 향후 심사위원이 교체되더라도 일관되고 공정한 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간의 개별 사건 판단 결과를 다음 사건의 기준으로 삼기 위한 데이터베이스 정리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심사 속도를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 보상이 백신의 공중보건학적 이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동체를 위해 접종에 참여한 뒤 건강 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사정을 살피는 일도 국가의 역할이며, 방역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피해자 단체도 백신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 백신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특별법을 주장해왔다 .
위원회는 피해자 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심의 기준을 설명하고 개별 사건의 검토 방식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최 위원장은 “판단 근거를 설명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쌓여야 제도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있다”며 “피해자 단체가 위원회에 대한 건강한 감시자 역할을 계속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피해 구제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 의학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한계를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로 근거를 검토하고, 사회적 규범도 중요한 잣대로 세우며, 피해자 의견을 듣고 국가가 책임질 방식을 정해나가는 경험입니다. 이 과정이 일관된 심사 기준과 소통 절차로 제도화되면, 앞으로 새로운 국민 건강 위기가 닥쳤을 때 피해 보상 제도가 체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다. 심의에 앞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