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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누군가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하지만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봉투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관람객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편지마다 적힌 세 개의 키워드뿐이다.
스토리지북앤필름 로터리。에서 열린 기획전 〈여름의 편지 : 익명의 수신인에게〉는 지난 6월 20일부터 8월 28일까지 관람객을 만났다. 이번 전시는 18명의 작가가 익명의 수신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참여 작가들은 자신의 편지를 밀봉한 뒤, 편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세 개의 키워드를 함께 제시했다. 관람객은 봉투를 열기 전 키워드를 살펴보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상상한 뒤 자신이 읽고 싶은 편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참여 작가는 강규희, 곽다영, 김미현(사랑으로), 김신회, 김현경, 다섯지혜, 소운, 신재민, 안윤, 이소은, 이아로, 이이삼, 이제, 이진송(계간홀로), 이헤, 정선엽, 최지호, 홍승지 등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은 관람객이 작품을 '보는 사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전시에서는 작품의 제목과 작가, 작품 설명을 먼저 확인한 뒤 작품을 감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름의 편지 : 익명의 수신인에게〉에서는 그 순서가 뒤집힌다.
관람객에게 주어진 것은 완성된 작품의 이미지가 아니라 세 개의 키워드다. 그 짧은 단어를 단서 삼아 편지의 내용을 상상하고, 어떤 편지를 선택할지 결정한다. 봉투가 밀봉돼 있기 때문에 편지를 구매하기 전에는 내용을 알 수 없다.
이는 오래된 편지 한 통을 받아보는 경험과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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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이 무엇을 썼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봉투를 열기 직전의 기대와 긴장감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익명의 수신인'이라는 설정은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편지의 발신자는 작가지만 수신자는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누구나 그 편지의 수신인이 될 수 있다.
작가가 누군가에게 건넨 이야기가 이름을 정하지 않은 채 봉투 안에 담기고, 관람객은 자신에게 필요한 편지를 직접 선택한다. 같은 전시장을 찾았더라도 어떤 키워드에 끌렸는지에 따라 선택하는 편지는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관람객은 자신이 고른 편지를 통해 작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누군가는 즐거운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슬픔이 담긴 이야기를 마주했을 것이다.
전시는 이러한 선택의 과정을 통해 '편지를 읽는 일'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었다.
스마트폰과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말을 주고받는 일이 익숙해진 시대에 편지는 상대적으로 느린 매체다. 바로 답을 받을 수도 없고, 짧은 메시지처럼 몇 초 만에 내용을 확인할 수도 없다. 편지를 열고 글을 읽는 데에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느림이 오히려 이번 전시의 매력이 됐다.
봉투를 손에 들고 키워드를 살펴보고, 어떤 내용일지 상상한 뒤 편지를 선택하고, 밀봉된 봉투를 열어 글을 읽는 과정까지. 관람객은 단순히 전시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기까지의 기다림과 그것을 열어보는 순간의 설렘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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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18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익명의 수신인에게 말을 건넸다는 .에서 이번 전시는 하나의 거대한 편지함처럼 다가왔다.
작가가 누구인지 알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달리, 먼저 세 개의 키워드를 통해 이야기를 상상하고 편지를 선택하는 방식은 독자가 작품을 능동적으로 만나도록 했다. 키워드가 던지는 궁금증은 편지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고, 봉투를 열었을 때 비로소 작가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여름의 편지'라는 제목처럼 이번 전시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감각도 품었다. 무더운 여름날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과 다른 속도를 선물했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편지는 남는다. 한 번 읽고 지나가는 콘텐츠가 아니라, 손에 쥘 수 있는 물리적인 형태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한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편지를 고르기 전 세 개의 키워드를 바라보며 상상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다.
〈여름의 편지 : 익명의 수신인에게〉는 '편지'라는 익숙한 형식을 통해 작가와 독자 사이의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냈다.
정해진 수신인이 없는 편지는 결국 전시장을 찾은 누군가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그 봉투를 선택하고 열어본 순간, 관람객은 더 이상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익명의 수신인'이 됐다.
지난여름 스토리지북앤필름 로터리.에 놓였던 18통의 편지는 그렇게 각자의 수신인을 찾아갔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였지만, 어쩌면 그 편지는 그날 그곳에서 우연히 선택한 '나'를 위해 준비된 편지였을지도 모른다.
한 통의 편지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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