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과 건축 비평
“예술작품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 ‘생산의 장(field of production)’이다.”
-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2019년 국토부는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청년 건축가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최대 3천만 원의 연수비용을 지원해 해외의 선진 설계 기법을 배우게 함으로써 미래의 프리츠커 수상자를 키우겠다는 내용이다. 정작 건축계는 냉소적이었다. “단기 연수로 거장이 되라는 말이냐?”, “해외 경험 부족이 아니라 건축가에 대한 존중 부재, 공공건축 발주 방식 등이 원인이다.” 등등. 이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있다면서 국토부는 이 사업을 이름만 바꾸어 지속하고 있다.
대부분의 진지한 건축인들은 프리츠커상 수상이 그 나라 건축 수준의 지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 브라질, 포르투갈에 칠레까지 2명을 배출하고 일본이 9명을 낼 동안, 건설업 순위로는 일본에 앞선 세계 5위인 나라에 수상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기는 것 또한 아니다.
한국이 수상을 못하고 있는 이유는 대강 세 가지이다. 첫째는 건축주 문제다. 민간에서는 해외의 시그니처 건축가들을 수입하는 데 진심이고 공공건축은 절차적 공공성과 ‘싸고 빨리’ 트랩에 갇혀 있다. 둘째는 산업생태계 문제다. 건설과 마찬가지로 설계업 또한 극도로 양극화되어 있다. 기업형 사무소든 생계형 사무소든 프리츠커상 눈높이 작품이 나오기에는 모자람이 많다.
세 번째는 비평의 부재 문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부르디외의 언급대로 시대적 가치를 담은 건축을 만드는 것은 ‘건축가’만이 아니라 비평, 담론, 교육, 전시, 출판까지를 아우르는 ‘건축 생산의 장’이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다.
2026년 2월 26일에 열린 '한국 건축비평의 회복 Session 4'. 4명의 건축가와 비평가의 토론을 150여명의 청중이 듣고 있다. / 출처. C3코리아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필자 등은 2025년 서울건축포럼을 통해 ‘한국 건축비평의 회복’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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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획의 필진을 포함한 비평가들이 연 4회 한국 주요 건축가들에 대한 수준 높은 비평을 발표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이는 프리츠커 수상을 건축가 개인 역량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는 국토부를 포함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인 동시에 건축계 현 상황의 원인을 외부에서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결여에서도 찾아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왜 건축 비평의 ‘회복’인가?
“『미로』는 지금 건축이 처한 상황에 대한 비유이자 재현이다. 정확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어쩌면 출구 자체가 없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암중모색 중인 현실 속에서 담론을, 이론이나 비평을, 또 역사를 추출해내려 한다.”(『미로』 창간사 중)
- 박정현
한국에도 한때 활발한 건축 비평이 있었다. 『공간』은 1983년 이후 정기적으로 건축 평론을 게재했으며 ‘공간 건축평론 신인상’(1990)까지 만들었다. 1980년대에 『꾸밈』, 『건축과 환경』 같은 전문지가 본격적으로 정기적인 비평 코너를 운영했으며 이일훈 중심의 ‘건축평론동우회’, 김경수 중심의 ‘건축비평동인’ 등의 집단도 생겨 활발한 비평 활동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 흐름은 1990년에 들어 대부분 단절된다. 대신 90년대는 비평가 대신 건축가가 스스로를 비평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4·3그룹(1990~1994)은 크리틱-세미나-건축 기행-전시·출판을 반복하며 본격적으로 ‘이론이 있는 건축’을 추구했다. 또 ‘청년건축인협의회(1987~1991)’, ‘건축운동연구회(1989~1993)’,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1993~2000)’, ‘서울건축학교(1995~2002)’ 등의 운동이 있었고 김광현, 김봉렬, 임석재 등 학자들의 이론화 작업이 지속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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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1987년 민주화 운동부터 1997년 외환위기(IMF)까지 한국 현대건축의 전환기가 되었던 10년 동안 일어난 건축 운동과 집단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기획전시가 열렸다. /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페이스북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1987년 민주화 운동부터 1997년 외환위기(IMF)까지 한국 현대건축의 전환기가 되었던 10년 동안 일어난 건축 운동과 집단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기획전시가 열렸다. /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페이스북
건축가가 자기 건축을 이론화하고 동료들이 상호 비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엄격한 의미의 건축 비평은 아니다. 또한 비평의 대상 건물이 없어 애썼던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는 주목할 건축이 다량으로 생산되던 때였다. 그럼에도 이 풍요의 시기에 전문 비평가 배출 시스템은 오히려 멈추었고 담론의 장은 많았으되 지속되지 못했으며 번역·전시·출판하여 국제적으로 유통시키는 일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1990년 이후 20년은 한국 건축 비평의 동면기였다고 봄이 옳다.
다행히도 2008년 전진삼이 창간한 『WIDE』를 필두로 이종건의 『건축평단(2015)』, 박정현의 『미로(2024)』등 의미 있는 건축 비평의 움직임이 부활하고 있으며 ‘한국 건축비평의 회복(2025)’도 이에 가담하여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의 재생산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 매체가 제법 생겼음에도 국제적인 유통구조는 겨우 시작 단계라는 。 등을 고려한다면 한국 건축 비평은 아직도 ‘회복’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 아니할 수 없다.
2008년도를 기。으로 건축 비평과 담론을 활발하게 담아내는 건축 전문지가 다수 탄생하고 있다. 왼쪽부터 『WIDE』, 『건축평단』, 『미로』 표지. / 제공. 필자
일본의 건축 정전화 시스템
“궁극적으로 건축의 정전(canon)을 형성하는 것은 건축 비평, 혹은 역사가들의 비평적 판단의 합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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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맥아더 & 나오미 스테드(Macarthur & Stead)
일본 건축이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뛰어난 건축가들이 많고 건축가들이 사회적·경제적 대접을 제대로 받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평면적인 해석이다. 건축설계업 종사자 1인당 매출은 일본이 우리의 1.9배라는 통계(AURI, 2008)가 말하듯 저들의 상황이 나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건축이 그만한 국제적 성취와 인정을 얻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은가?
필자는 오히려 뛰어난 건축가를 역사적, 세계적으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건축가로 정전화(canonization)해내는 일본의 건축 담론 생산/유통 시스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건축적 정전화’는 뛰어난 작품은 물론이고 비평·출판·교육·전시·아카이브·국제교류와 같은 매개 제도가 건축가와 작품을 하나의 일관된 건축적 담론으로 구성하고 반복적으로 승인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 건축은 우리가 흉내 내기 어려운 두 가지 자산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단게 겐조로 시작되어 마키 후미히코, 이소자키 아라타, 구로카와 기쇼, 이토 토요, SANAA, 이시가미 준야 등으로 연결되는 작업 및 교육 계보가 국제 비평 담론 속에서 명확하게 서사화되고 있으며 세계주류 건축 헤게모니의 일부를 .하고 있다는 .이다.
두 번째는 일본 건축의 담론을 세계로 유통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 건축 전문지들의 역할이다. 이미 100년 전부터 일본 건축 논의의 중심이자 철저한 아카이브 역할을 한 『新建築(1925)』으로부터 시작하여 『JA-The Japan Architect(1956)』는 영어로 발행되어 작은 주택 설계 건축가들까지 구미에 소개되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a+u(1971)』는 처음부터 영·일 혼용으로 발행되어 100여 개국 네트워크에 건축가·비평가·역사가의 글을 유통해 왔다.
세계 건축계에서 일본 건축의 헤게모니는 일본 건축전문지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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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방향순으로, 『新建築』, 『JA-The Japan Architect』, 『a+u』, 『GA』 표지. / 제공. 필자
세계 건축계에서 일본 건축의 헤게모니는 일본 건축전문지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시계 방향순으로, 『新建築』, 『JA-The Japan Architect』, 『a+u』, 『GA』 표지. / 제공. 필자
세계 1위인 프리츠커 수상자 수 또한 이 상이 위대한 건축가를 단순히 ‘발견’하는 제도가 아니라, 비평·출판 등을 통해 축적되어 온 건축적 가치와 상징자본을 국제적으로 ‘승인, 성별화(consecration)’하는 제도임을 전제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일본의 이 같은 인프라를 가지지 못한 한국의 건축은 ‘미로’에 계속 갇혀있어야 하는가? 뛰어난 작품이 탄생할 수 없는 환경, 이로 인한 사회적 인정의 결여, 다시 열악한 환경, 이러한 악순환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필자는 탈출구를 ‘건축 비평의 회복’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잉의 정화 그리고 건축 비평
“비평은 과거를 채。할 때보다 미래에 영향을 줄 때 언제나 더 유용하다.”
- 웨인 애토(Wayne Attoe)
최근 한국 건축 담론의 장이 활발해지는 현상에 대해 “건축 비평은 일이 없어 배고플 때 나타난다”는 우스갯소리 같은 얘기를 듣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며 심지어 일본에도 보이는 하나의 현상 혹은 패턴이라는 .이다.
앞서 한국 건축 비평의 침체기라 했던 1990년대는 역설적으로 건축 생산의 양적 폭증기였다. 80년대 후반 '올림픽 등에 의한 고도성장과 부동산 급등 > 토지공개념·주택 200만호·1기 신도시 > 세계화·시장개방 > IMF 및 극복을 위한 분양가 자율화·2기 신도시 건설' 등의 과정을 통해 주택 재고는 1990~2000년 사이 56%가 증가했다. 상업, 업무, 문화, 공공청사 건축도 같은 비율로 증가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좋은 시절에 정작 건축 비평은 명맥이 끊어지고 있었다.
반면 건축 비평이 다시 부활하는 2008년 무렵부터는 한국 건축의 혹한기라 할 만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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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 PF 부실·뉴타운 해제 > 미분양 누적' 등으로 2013년에는 건축물량이 2002년 이후 최저.을 기록했다. 한편 설계업의 양극화는 가속화되었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의 1.4%에 불과한 50인 이상 대형사무소가 매출은 44.6%를 차지하고 있고 5인 미만 사무소가 전체의 75.5%인데 이 추세는 。. 더 가팔라지고 있다.
일본도 건축 비평의 대상이 될 만한 의미 있는 작업은 풍요가 아닌 반성과 성찰의 시기에 탄생했다. 1970~1980년대 고도 성장기에 건물들은 크고 화려해졌으며 렌조 피아노, 리차드 로저스, 알도 로시 등 해외 명망가들에 의한 건축물들도 넘쳐났다. 그러나 이 시기에 생산된 건축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1995년 안도 다다오 이후 15년간 프리츠커상이 일본을 비켜 간 사실이 말해준다.
1980년대 일본 건축은 크고 화려했지만 건축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90년대 버블붕괴 이후 생산된 소박하고 미니멀한 건축에 의해 일본 건축은 프리츠커상을 휩쓴다. 그중 다카마츠 신의 신택스 빌딩(Syntax Building, 1990). / 사진. ⓒ Takamatsu
SANAA의 뉴욕 뉴 뮤지엄(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07). / 사진. ⓒ Dean Kaufman
그러다가 1990년 버블 붕괴와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과잉 형태와 기념비적 건축은 줄고 극소·소형 주택과 검소한 공공건축이 건축적 실험장이 되는 현상이 생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생성된 작품들에 의해 2010년 SANAA 이후 5명의 수상자가 탄생하는 것이니 건축 비평과 그 대상이 됨직한 건축이 기름기 낀 건축 판에서 자라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2010년대 이후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한국 건축 비평의 재생은 물량과 속도의 시기를 지나면서 잃어버렸던 건축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시기 진정성과 깊이를 지닌 작품과 공부가 늘어 건축 비평의 거리가 늘고 있다는 징표가 아닐까? 이 물음이 다 참이라면 이것은 기어코 살아 돌아오고 있는 한국 건축을 미리 알리고 있는 신호가 아닐까?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일본의 건축 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