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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올라선 보적산 정상. 월간산 57주년 山 티셔츠에, 무릎을 거들어준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했다.
청산도는 바다, 하늘 그리고 그중에서도 산이 푸르러 '청산靑山'이라 이름 붙은 섬이다. 서울에서 땅끝 완도까지 428km, 여기서 배편으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하는 이곳으로 나는 직장 연수를 떠났다. 재작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한국관광의 별'에서 친환경 관광콘텐츠 분야로 선정된 섬이 바로 청산도이기 때문이다. 주민 주도 관광상품 운영,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관광 발전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데, 지금 서울관광재단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의 실마리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울관광재단의 가장 큰 현안은 '관광을 통한 지역상권 활성화'다. 이는 단순히 외국인이 많이 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상인들과 로컬 브랜드로 소비가 이어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에도 외래관광객 2,000만 명 시대의 수혜를 비교적 덜 받는 지역들이 있다.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이 동네들에서, 재단은 '산'을 주목하고 있다. 서울을 넓게 둘러싸고 있는 산악 자원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모을 수는 없을까? 오는 10월 말 열릴 '2026 서울하이킹위크: 가을'을 기획하며 이 고민을 안고 청산도로 향했다.
다도해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청산도 역시 산으로 가득하다. 남동쪽에는 최고봉 매봉산(387m)이 있고, 섬의 중심을 따라 보적산(331m)~대선산~대성산~대봉산(378m) 능선이 이어져 있다. 물론 청산도는 산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섬의 이곳저곳을 따라 11코스 17개 길로 이뤄진 '청산도 슬로길'은 산·들·바다 그리고 사람의 정취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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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슬로길만 따라 걷더라도 자잘한 오르막이 많아 즐거운 하이킹을 만끽할 수 있다.
보적산 정상과 청산도 앞바다.
다만 청산도 역시 대표적인 인구감소지역 중 하나이고,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 현재 인구는 2,00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정의 곳곳에 빈 。포들이 많았다. 가게가 있을 법한 곳에도 아무것도 없어 수 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많이 걷고 계속 언덕을 오르는 여정이다 보니 어디든 들러 뭐라도 좀 사 먹고 싶었지만 막상 돈을 쓸 곳이 없었다. 목마름조차 채울 곳 없는 이 섬은,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서울과는 참 다른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공백 때문일까. 섬의 길들, 등산로들은 그 순수함이 담백하게 유지되어 있었다. 마치 지역의 쇠퇴가 보존을 이끌어낸 것처럼 말이다. 간단한 슬로길 안내표지를 제외하고는 많은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청산도의 모습이었다. 서울이나 지방 유명 산들은 손님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우리를 환영한다. 그런 분위기도 퍽 괜찮지만 이날 청산도는 손님에게 무심히 대문을 열어주고 물러나는 것 같은 색다른 정취가 좋았다. 정돈되지 않은 언덕길에 엔진소리가 들리면 잠시 후 트랙터를 함께 탄 노부부께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였다. 빼곡한 숲 속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는 수십 마리 숲게들의 이동길이었다. 미소짓던 할머니도, 모험을 떠나던 게들도, 실로 자연스러운 자연이 참 좋았다.
때로는 너무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는 것이 어려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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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도의 7월 말 산길은 수풀이 허리 높이까지 우거지고, 꽃을 즈려밟으며 갈 수밖에 없는 길들이다. 보적산을 오르기로 한 나는 맨다리를 위협하는 엉겅퀴들과 등허리를 찌르는 가시덤불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펜션 어머님 말씀으로는 여름철 산길 예초가 여러 가지 한계로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혹은 누군가 열심히 작업을 해주었는데 순식간에 다시 자라나 인간의 길을 숨겨버린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인간을 멀리하는 여름의 청산은 다양한 동식물들과 벌레들의 무대가 된다. 메밀꽃, 자란, 수많은 이름 모를 꽃과 곤충들…. 그리고 똥만 잔뜩 남기고 어딘가로 가버린 염소들까지, 다양한 주인공들의 비밀 아지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산, 들, 바다 어디에 카메라를 대도 푸른색이 걸리는 여름의 청산도 슬로길.
하지만 이처럼 들풀에 가려져 있던 보적산도 정상에 오른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처음 섬을 밟은 항구부터, 힘들게 걸어온 슬로길, 때때로 멈추어 사진에 담곤 했던 풍경들이 발아래 펼쳐졌다. 남쪽 푸른 바다 멀리에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한라산의 색다른 얼굴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요소들이 보물 같은, 또 그러면서도 소박하기도 한, '청산도스러운' 절경이었다.
여기에 봄이면 섬을 뒤덮는 노오란 유채꽃이, 가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물든다는 짙붉은 단풍이 이 풍경 위에 얹힐 것이다. 그 상상 끝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계절에 이곳에 오르든 그 바탕색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섬을 두른 바다는 언제나 청록빛일 테고, 지나온 돌담길과 구들논, 해변들 역시 끝내 푸른빛을 놓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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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정상에 가장 먼저 올랐던 이도 같은 감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섬을 청산靑山이라 이름 지어주지 않았을까?
보적산을 오르는 길에도, 내려오는 길에도 다른 등산객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산을 통째로 빌린 듯한 기분에 좋기도 했지만, 서울 산의 왁자지껄함이 조금은 그리웠다. 긁히고 쓸려 성치 않은 다리를 위로하고자 우리는 마지막으로 횟집에 들렀다. 사장님은 은퇴 후 고향 청산도로 돌아오신 분이었다. 이 더운 날 산을 헤맸다는 우리를 가엾게 여기시면서도, 가을날엔 손님도 등산객도 많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조금 신나신 모습이셨다.
돌이켜보면 섬에서 만난 카페, 식당, 펜션의 주인분들이 대개 그랬다. 청산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광주에서, 부산에서 청춘을 보내고 이곳이 그리워 돌아온 이들이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섬이라지만 돌아오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한철 손님이었던 우리도 가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횟집 사장님께 약속드렸다. 등산 직후에 이렇게 신선한 농어를 먹는 경험은 여기서밖에 할 수 없어서다.
산은 정말 특별한 관광자원이다. 찾는 사람이 없어질수록 고유의 가치가 드러나고, 그 가치가 빛을 발하면 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쇠퇴가 보존으로 이어지고, 보존이 다시 지역에 활력을 주는 것이다. 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준다고 하지만, 이런 순환적인 지혜는 정말 유별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다. 이제는 이 배움을 서울로 가져와 특별한 경험을 설계하고자 한다. 10월 말, '서울하이킹위크'가 열린다. 유명한 등산로가 아니더라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안전감 속에서 웃으면서 체험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서울의 숨겨진 지역을 탐방하고 즐거운 소비를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폭염 속에서 엉겅퀴와 가시덤불과 염소똥을 헤치며 청산도를 오른 내가 행복했듯이 말이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안전감 속에서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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