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흐르는 여정’의 한 장면. “사후세계를 믿는다”는 김진유 감독은 카메라의 시선을 사별한 남편의 시선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한날한시에 함께 가자”던 남편이 떠났다.
홀로 남은 아내는 두 사람이 함께했던 흔적들을 하나씩 정리해 간다. 오래 살던 주택을 떠나 아파트로 터를 옮겼다. 남편이 남긴 피아노와 자동차 한 대, 그리고 같이 떠나기로 했던 스위스행 티켓만 간직한 채.
28일 개봉하는 영화 ‘흐르는 여정’은 남편과 사별한 춘희(김혜옥)가 이사한 아파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달라지는 일상을 그린다. 집 안으로 들이지 못한 피아노를 선뜻 맡아준 이웃 민준(저스틴 민)과 그의 제자 성찬(박대호) 등 뜻밖의 인연은 춘희의 삶에 조금씩 온기를 더한다.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김진유 감독(38·사진)을 만나 작품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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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에 드러나진 않지만 영화를 지탱하는 주요한 소재는 ‘존엄사’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끝내 놓지 못하는 춘희는 마지막 여행지 스위스로 가 생을 마감하기로 한다. 시나리오 집필 당시 존엄사에 대한 여러 뉴스와 친척의 죽음을 접한 김 감독은 당초 지휘자와 농인의 멜로물로 구상했던 각본을 바꾸었다. 그렇게 ‘춘희가 남편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란 한 줄의 로그라인이 마련됐다.
영화 ‘흐르는 여정’의 한 장면. “사후세계를 믿는다”는 김진유 감독은 카메라의 시선을 사별한 남편의 시선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그러나 굳은 결심을 망설이게 할 만큼 이들의 만남은 따뜻하다. 입양아 출신의 한국계 독일 청년 민준에게 춘희는 ‘엄마’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렵던 성찬에겐 ‘할머니’가 되어 간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춘희의 의도치 않은 선의에 잊었던 그들 안의 다정함을 마주해 가며 ‘이웃’이 되어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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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춘희가 스위스행을 포기하는 결말로 나아가지 않는다. 상실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닌, 그저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에도 계속되는 삶을 그린다. 남편을 잃은 춘희가 그랬듯이, 춘희가 떠난 뒤 민준도 성찬도 그리워하며 살아갈 뿐이다.
“저 또한 ‘춘희를 살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처음에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이유로 돌아왔죠. 춘희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그래서 끝내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도 존중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유사가족과 입양아, 존엄사, 세대 화합 등 다소 많은 소재가 섞여 있지만, 보고 나면 마음이 선해지는 영화다. 쿠키 영상이 하나 있다. 시나리오엔 없던 장면으로, 촬영 도중 김혜옥 배우가 쉬면서 무심결에 보인 순간을 담았다. “그 한 컷이 춘희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던 김 감독의 말처럼, 여운 짙은 장면이라 보고 나오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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