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자가 쏜 눈먼 총탄에 용감한 기사가 덧없이 쓰러지다니…”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제1권 38장, 이른바 ‘무기와 학문’에 관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성이라 믿는 여관의 만찬 자리에서 돈키호테는 평소의 망상과 달리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대포를 ‘악마의 발명품’이라 부르며 탄식한다. 좌중은 숙연해진다. 광인이라 여겼던 이가 시대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으니 말이다.
돈키호테가 탄식한 변화는 이러했다. 총포가 등장하면서 수십 년 갈고닦은 무예도 훈련받지 않은 자의 방아쇠 한 번 앞에서 소용이 없어졌다. 개인의 고결한 용맹함과 명예로운 결투가 빛나던 낭만의 시대가 저물고, 비인격적인 파괴력과 화력의 효율성만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사들은 ‘화약과 납’이 명성을 떨칠 기회마저 앗아간다며 불안해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 탄식한 지 400여 년,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다. 무대가 전장에서 사무실로 옮겨 왔을 뿐이다. 글쓰기, 프로그래밍, 디자인, 데이터 분석처럼 밤을 새우며 노하우를 쌓아 온 영역에 생성형 AI가 들어왔다. 수련이 없는 초보자도 프롬프트 몇 줄이면 그럴듯한 결과물을 몇 초 만에 받아 든다. 대포가 화약 한 줌으로 무예를 무력화했다면, AI는 ‘딸깍’ 한 번으로 숙련을 무력화한다. 시대만 다를 뿐 변화의 본질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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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수련 끝에야 얻던 결과를 이제는 누구나 손가락 하나로 얻는다. 이른바 ‘숙련의 평준화’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전문가와 초보자의 거리가 부쩍 좁혀진 듯 보인다. 문제는 고민의 과정보다 속도와 결과가 앞서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불안은 일자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정체성의 물음으로 번진다.
그렇다면 총포 이후 기사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갑옷 입은 기사는 전장에서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이은 이들은 총과 대포를 부리는 지휘관이 되었다. 칼 솜씨보다 화력을 운용하는 안목이 승패를 갈랐다. 1588년 영국 해군은 사거리가 긴 함포와 날렵한 함선을 앞세워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맞섰고, 무적함대는 끝내 무너졌다. 200여 년 뒤에는 포병 장교 출신 나폴레옹이 대포를 한곳에 모아 쏘는 전술로 유럽을 휩쓸었다. 새 무기를 거부한 쪽이 아니라 먼저 익힌 쪽이 이겼다.
AI 시대의 전문가는 어느 길을 가야 할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생산자’에서 ‘지휘자’로 옮겨 가야 한다. 만드는 일은 AI에게 맡기고 판을 짜고 방향을 정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프롬프트를 쥔 손보다 결과물의 맥락을 읽는 눈이 더 중요해진다. 둘째, 질문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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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을 내는 속도는 AI가 앞서지만,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가치 있는지 묻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공감과 윤리적 판단, 진정성 있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셋째, ‘증강지능’의 관.을 가져야 한다. AI를 사람의 대체물이 아니라, 쌓아 온 전문성 위에 얹어 능력을 키우는 도구로 보는 시각이다. 초보자에게 AI는 흉내 내기에 그치지만 전문가에게는 몇 배의 힘을 내는 증폭기가 된다. AI가 모두를 같은 출발선에 세운다면, 얼마나 멀리 가느냐는 각자의 전문성이 정한다. 같은 대포라도 나폴레옹의 손에서는 전세를 바꾸었듯 말이다.
다시 그 만찬 자리로 돌아가 보자. 돈키호테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길을 떠났다. 기사의 시대가 끝났다는 현실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붙들고 행동에 나섰다. 한탄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 자신이 기획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돈키호테의 진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돈키호테가 AI 시대에 산다면 어떻게 했을까? 처음에는 ‘악마의 발명품’이라며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노트북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서지 않았을까. 풍차를 거인으로 보던 그 상상력이라면 AI도 기꺼이 자기 무기로 삼았을 것이다. 도구는 바뀌어도, 시대의 주역은 언제나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병우
대의 정곡을 찌르는